“9남매 키워준 마을 어르신들 감사합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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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대두라도의 특별한 어버이날
작은 섬마을 할아버지-할머니들 7남매-두 조카 둔 집배원 부부 대신 14년 전부터 경로당서 아이들 키워
“도시 사는 친손주보다 더 예뻐”… 네살 막내 카네이션 선물에 웃음꽃

어버이날을 하루 앞둔 7일 전남 여수시 대두라도 봉통마을 교회 쉼터에 모인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 섬마을 집배원 김재연 씨의 막내딸에게서 카네이션을 받으며 기뻐하고 있다. 대두라도=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어버이날을 하루 앞둔 7일 전남 여수시 대두라도 봉통마을 교회 쉼터에 모인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 섬마을 집배원 김재연 씨의 막내딸에게서 카네이션을 받으며 기뻐하고 있다. 대두라도=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7일 남해안 끝자락 전남 여수시 남면 대두라도. 이 섬은 여수 군내항에서 배를 타고 30분을 가야 도착하는 낙도다. 배에서 내려 다시 차량으로 좁은 산길을 1km 넘게 가자 봉통마을이 나왔다. 마을 이름 봉통은 꽃과 꿀벌이 많아 붙여졌다.

봉통마을 교회 쉼터에 이날 낮 김봉심 씨(88·여)를 비롯한 동네 노인 13명이 모였다. 노인들에게 주민 김재연 씨(48)의 아홉째 막내딸 아헬 양(4)이 “고맙습니다”라며 카네이션을 건넸다. 어버이날 하루 전 감사의 마음이 담긴 꽃을 받자 노인들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꽃 선물에 박수를 치던 황영자 씨(77·여)는 “도시에 사는 친손주보다 더 예쁘다. 키운 정이 더 진하다”고 했다. 다른 노인들은 순간 이구동성으로 “김 씨네 아홉 남매가 예쁜 짓을 해서 그렇제”라고 외쳤다.

장용업 씨(80·여)는 “막내는 기저귀에 실례한 것조차도 예쁘다”며 손을 치켜세웠다. 마을에서 두 번째로 젊은 윤신옥 씨(59)는 “사탕 한 개가 생겨도 애들부터 챙긴다”고 했다. 노인들은 “동네에서 가장 젊은 김 씨는 가스·기름 배달 등 궂은일을 도맡는 손과 발”이라며 고마워했다.

봉통마을에는 이웃을 서로 보살피는 옛 시골의 정이 그대로 남아있다. 섬 모양이 콩을 닮았다는 대두라도의 전체 주민은 153명이다. 두라분교, 보건지소가 유일한 문화시설이다. 봉통마을은 특히 주민이 20여 명에 불과했다. 김 씨의 아홉 남매를 제외한 어른들 평균 연령은 70세다. 예전에는 산등성이에 농작물을 일구는 다랑논과 어업으로 생계를 꾸렸다. 현재는 2월에 방풍나물을 수확해 생계를 챙기는 전형적인 어촌이다.

고향이 봉통마을인 김 씨는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과 부산 공장에서 돈을 벌었다. 1990년대 초반 고향에 가두리 양식장 열풍이 불자 도시로 떠난 청년들이 귀어했다. 김 씨도 1992년 귀어해 가두리 양식을 시작했지만 3년 만에 태풍으로 꿈이 사라졌다. 귀어한 다른 청년들은 가두리 양식에 실패하자 다시 고향을 떠났다. 하지만 김 씨는 1995년부터 대두라도 우편물을 배달하는 집배원이 됐다. 그의 부인(41)도 8년 전부터 집배원을 맡았다.

김 씨 부부는 낮에는 대두라도와 조발도, 소두라도에 사는 노인들에게 우편물과 생필품을 전한다. 이들 부부가 아홉 남매를 돌본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부부가 낮에 일을 나가면 동네 노인들은 14년 전부터 아홉 남매 양육을 도왔다. 유치원 등 육아시설이 없는 섬에서 마을 경로당은 남매들의 놀이터이자 양육공간이었다.

김 씨의 실제 자녀는 2남 5녀다. 2003년 동생이 암으로 사망하자 조카 형제를 양육했다. 이들 부부는 이웃 정이 버팀목이 돼 아홉 남매를 열악한 여건의 섬에서 키웠다. 아홉 남매는 김 씨 부부와 이웃들 사랑 덕분에 잘 자랐다.

큰조카(24)는 현재 직장에 다니고 둘째 조카(22)는 입대했다. 큰딸 혜원 씨(22)도 회사원이 됐고 둘째 딸(20)은 서울 대학에 입학했다. 그 밑으로 다섯째(17·고1), 여섯째(14·여·중1), 일곱째(9·여·초교2), 여덟째(8·초교1), 아홉째 아헬 양이 자란다.

김 씨 부부는 4t짜리 어선으로 화태우체국에서 우편물을 받아 전한다. 이들 부부는 한 달에 10∼20일 일하지만 수입은 200만 원 수준이다. 빠듯한 수입에 애들에게 제대로 교육을 시켜주지 못한 것 같아 늘 미안하다. 김 씨는 “봉통마을은 콩 한 조각도 나눠 먹는 정이 남아있다”며 “생활이 힘들지만 이웃들에게 필요한 생필품을 사서 전해주는 집배원 일을 포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대두라도=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여수#대두라도#어버이날#카네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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