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선물 못드리고… 내년엔 첫 월급으로 보답할게요”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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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8일이 가슴 아픈 취업 장수생들
“엄마가 준 용돈 아껴 선물사는 형편… 언제 제대로 자식노릇 할지…” 한숨

“2년 전과 지난해에 ‘내년 어버이날에 취업 기념 선물을 드려야지’ 다짐했는데, 올해도 똑같네요.”

‘취업 삼수생’ 김모 씨(26·여)는 며칠 전 인터넷 쇼핑몰에서 1만4900원짜리 ‘어버이날 효도 카네이션 바구니’를 주문했다. 부모님이 보내준 한 달 용돈 50만 원에서 생활비를 절약해 산 것이다. 그나마 조금이라도 아끼겠다며 ‘특가’로 싸게 나온 것을 골랐다. 생활비가 떨어져 지난달 부모님의 결혼기념일을 챙기지 못했기에 어버이날만큼은 꼭 챙기겠다고 다짐했었다. 취업하면 첫 월급으로 사드리려고 점찍어 놓은 안마기가 눈에 밟혔지만 올해도 내년 어버이날을 기약하는 데 그쳤다.

김 씨는 “면목이 없어 카네이션도 직접 달아드리지 못하고 택배로 보냈다”며 “엄마가 보내준 용돈으로 엄마 선물을 사는 내 모습을 보니 씁쓸하다”고 말했다.

김 씨의 모습은 ‘취업 장수생’ 사이에서 흔한 일이다. 2년 넘게 구직 활동 중인 최모 씨(26·여)는 3월 말부터 두 달간 서울 광진구의 한 중학교에서 단기 기간제 교사로 근무하고 있다. 최 씨는 2년간 임용고시를 준비했다. 아르바이트도 하지 않고 용돈을 받아 생활해 왔지만 매번 불합격했다. 그는 올해 초 어머니의 건강이 나빠진 모습을 보고 결국 임용고시 준비를 잠시 접었다. 그리고 단기 기간제 교사 자리를 찾아 나섰다. 중고교 30곳에 지원서를 넣고 떨어지기를 반복한 끝에 갑자기 2개월 병가를 낸 교사 자리를 겨우 구했다.

최 씨는 두 달 동안 돈을 벌어 어버이날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고 연극 공연도 보여드렸다. 최 씨는 “직접 번 돈으로 용돈을 드리자 부모님도 뿌듯해하셨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시 취업준비생으로 돌아가 부모님께 손 벌릴 생각을 하니 막막하다”며 “다음 어버이날엔 꼭 취업에 성공해서 효도 여행을 보내드리고 싶다”고 덧붙였다.

어버이날 선물을 위해 청년들의 고민이 깊어지는 것은 예측할 수 없는 구직 기간에 대한 공포 때문이다. “취업이 가장 큰 선물인 것은 알지만 기약이 없으니 당장 작은 선물이라도 하고 싶어서”라는 것이다. 취업 포털 잡코리아와 알바몬이 어버이날을 맞아 대학생 972명에게 ‘부모님께 할 수 있는 최고의 효도’에 대해 물어본 결과 ‘취업’이라는 응답이 65.5%로 1위를 차지했다. 취업이 최고의 효도라는 응답은 9년 연속 1위였다. 2위는 ‘부모님과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61.5%), 3위는 ‘내 몸이 건강한 것’(38.2%) 순이었다.

현실이 나아질 기미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청년들의 좌절감을 높이는 요인 중 하나다. 통계청이 6일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1분기(1∼3월) 한 번도 취업해 본 적이 없는 청년(20∼39세)은 9만5000명으로 집계됐다. 1999년 관련 통계 작성을 시작한 뒤 가장 높은 수치다. 취업 재수생, 삼수생이 늘어나고 있다는 의미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청년 세대가 경제적으로 자립하는 시기가 점점 늦어지고 있고, 이 때문에 부모 세대의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며 “청년들도 이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작은 선물’이라도 부모에게 돌려주고 싶은 것”이라고 해석했다.

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어버이날#취준생#용돈#청년실업#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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