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행학습 안해도 초등 교실 ‘수포자’ 없게 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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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 2학년 수학 교과서 개선

 
2017년 새 학기가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자녀가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예비 학부모의 마음이 기대와 걱정으로 가득 차는 시기다. 이들이 가장 크게 우려하는 부분은 한글과 숫자 선행학습 여부다. ‘한글을 안 떼고 가면 첫날 알림장도 못 받아 적어 바보 취급을 당한다’ ‘숫자를 안 배우고 가면 교사에게 핀잔 듣는다’ 등의 소문이 난무해 학부모의 불안감은 커지기 마련이다.


 지난해 교육부는 “새해부터 아이들의 한글교육은 학교가 책임지겠다”며 한글 학습을 위한 수업을 크게 늘리는 정책을 발표해 큰 호응을 얻었다. 그러나 지난해 8월 공개된 새 수학교과서 현장검토본이 사실상 선행학습을 전제로 했고 이전 세대 교과서와 비교해 지나치게 어렵고 복잡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 비판 수용, “초1 수준에 맞게 대폭 수정”

 이후 수학 교과서 집필진은 문제로 지적된 부분을 모두 재검토하고 현장검토본을 대폭 수정해 최종 심의본을 완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행 교과서와 가장 크게 달라진 부분은 ‘스토리텔링 수학’의 대폭적인 축소다. 본래 스토리텔링 수학은 수학적 개념을 일상생활에 접목해 아이들의 수학적 감각 향상과 활용력 증대를 위해 도입된 것이다. 예컨대 ‘3+4=?’를 묻는 게 아니라 ‘다람쥐가 도토리 3개를 먹고 다시 4개를 먹었으면 총 몇 개를 먹은 것일까요?’란 식으로 수학적 사고를 유도하는 것. 하지만 한글과 문장을 이해하지 못한 아이는 수학적 사고 자체가 차단되기 때문에 ‘스토리텔링 전문수학학원’ 등 신종 사교육 장르까지 만들어졌다.

 현장검토본의 문제점으로 지적된 부분도 다수 수정됐다. 기초 수 개념 강화를 위해 반쪽에 그쳤던 숫자 ‘0’에 대한 설명을 2쪽으로 늘려 1시간 수업을 확보했고, 이전에 없던 ‘숫자 써보기’ 활동을 4쪽 분량으로 추가했다.

 초등 1, 2년생이 이해하기 어려웠던, 어른 눈높이에서 쓰인 교과서 문장과 어휘들도 수정됐다. 예컨대 1학년 1학기 수학익힘책 현장검토본의 ‘그림을 보고 보기와 같은 수만큼 ○를 그리고 수를 써 넣으세요’라는 문장은 ‘보기와 같이 해 보세요’로 간결해졌다. 초등 1, 2년 교과서에 공통적으로 나오는 ‘연결큐브’ 같은 외래어는 ‘모형’으로 대체됐다. 너무 작고 복잡하다는 지적을 받은 삽화의 크기도 커지고 디자인도 간결하게 개선됐다.

 수학익힘책의 난이도도 대거 조정됐다. 집필 관계자는 “전국 1600명의 초등 1, 2년생에게 수학익힘책을 풀게 해 정답률 60% 이하인 문항은 모두 교체했다”며 “학교 수업을 통해 수학 개념을 확실히 익히고 수학에 대한 흥미와 자신감을 갖도록 조정했다”고 전했다.

○ 서울시교육청 “교사, 학부모도 함께 변해야”

 교과서가 쉬워졌다고 유아 사교육과 선행학습이 곧바로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지금처럼 학생들이 사교육을 받고 왔다는 전제하에 수업을 하는 교사가 존재하고, 내 아이가 앞서기 바라는 욕심에 사교육을 시키는 부모가 있다면 공교육은 정상화될 수 없다.

 박춘란 서울시교육청 부교육감은 “학교 교육이 제대로 되려면 교실에서의 평가와 교사의 태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학부모는 자녀가 글을 못 읽고 수를 못 셀까 봐 선행을 하는 게 아니라 선행을 하지 않고 학교에 갔다가 주눅 들고 자존감을 다칠까 걱정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런 교실 문화를 바꾸기 위해 시교육청은 올해 2월 말부터 연말까지 3, 4차례에 걸쳐 초등 1, 2학년 교사들을 대상으로 전체 연수를 진행할 계획이다. 연수의 목표는 △선행학습을 하지 않고 온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치고 △그 아이들을 칭찬하며 △수업의 주인공으로 더욱 잘할 수 있게 격려하기 위한 방안이라고 시교육청 관계자는 전했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이런 교실에서는 선행학습을 하고 온 아이는 오히려 흥미 저하 등 손해를 볼 수 있다”며 “학부모들이 불안해하지 않고 학교 수업을 믿고 아이를 맡길 수 있도록 홍보자료도 배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교과서#초등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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