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azine D/Opinion]‘경찰 내 저격수’ 황운하 “백남기 농민 부검하는 게 옳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6일 15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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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검 통해 물대포 안전기준 강화된다면 고인 희생 헛되지 않을 것”

황운하 경무관·경찰대 교수부장
황운하 경무관·경찰대 교수부장
시위 중 경찰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 300일 만에 숨진 백남기 농민에 대한 부검 논란이 뜨거운 가운데 경찰대 교수부장인 황운하 경무관이 페이스북을 통해 부검 찬성 의견을 밝혀 눈길을 끈다.

평소 경찰권의 합리적 행사를 강조해온 황 경무관은 그간 지휘부에 대한 쓴소리는 물론 정치사회적 현안에 대해 독자적 목소리를 내왔다. 2007년 김승연 한화 회장 보복폭행 사건 당시 경찰의 축소수사와 관련해 경찰총장 사퇴를 주장했다가 징계를 받기도 했다. 당시 경찰 지휘부는 애초 중징계 방침을 정했다가 전․현직 경찰관들의 집단 항의가 쇄도하자 감봉 3개월로 징계수위를 낮췄다. 이명박 정부 때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검경 수사권 조정에 앞장서온 그의 승진에 제동을 건 바 있다. 그는 지난 6월 강신명 당시 경찰총장에 대해 “권력에 굴종적”이라며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황 경무관은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의 집회시위와 관련된 브록도르프 판결(1985년)을 인용, “경찰은 집회시위대의 행동에 대한 과도한 반작용적 대응을 피하며 예기치 못한 대립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신뢰감 있는 협력을 할 것을 요구한다”며 경찰의 ‘열린 자세’를 강조했다. “집회참여자를 민주사회의 대등한 당사자로 인식하고, 집회시위대를 잠재적 폭도로 성급하게 도식화하여 집단행동의 폭력성과 위험성만을 강조함으로써 오해를 불러일으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반면 집회시위자들에 대해선 “‘집합적인 폭력행위의 마술’, 즉 폭력의 첨예화를 통해 세간의 주목을 끈 것을 성공으로 인식하려는 성향을 보여서는 안 될 것”이라고 충고했다. 그러면서 “물론 사인이 이미 명백하지 않느냐는 반대의견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분쟁이 있을 때는 법원의 판단이 존중되는 것이 맞다”며 백남기 농민 부검에 찬성하는 논리를 폈다. 그는 “부검을 통해 물대포 사용의 안전기준이 강화되는 효과를 가져온다면 고인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는 결과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며 “이제는 브록도르프 판결의 정신이 지켜지는 새로운 집회시위 모델을 마련하기 위한 논의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황 경무관의 글 전문이다.

우리나라 헌법재판소는 “헌법상 집회시위 자유의 보장은 관용과 다양한 견해가 공존하는 다원적인 ‘열린 사회’에 대한 헌법적 결단”으로 보아야 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 집회시위의 이 같은 긍정적인 기능에도 일부 집회시위는 경찰과 격한 물리적 충돌을 빚게 되어 심각한 후유증을 남기게 된다. 이러한 양상에 대하여 경찰이 집회시위를 지나치게 통제와 진압의 대상으로 인식한 나머지 집회참여자로 하여금 경찰에 대한 폭력성을 유발한다는 주장도 있고, 집회참여자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하여 과격한 폭력을 마다하지 않는 등 법질서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누구에 의하여 폭력이 시작되었는지를 논하기 전에 경찰과 집회참여자 간의 폭력적 충돌상황은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은 명백하다. 지난해 11월 14일 민중총궐기대회는 애초 노동개혁 중단, 국정역사교과서 도입철회, 농산물 적정가격 보장 등 11대 요구안을 내걸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은 폭력적 충돌 상황 속에 파묻혀 버렸고, 330여 일이 지난 지금은 집회에 참여했던 백남기 농민 사망이라는 안타까운 일만 남아 있다. 결과적으로 경찰과 집회참여자 모두에게 돌이킬 수 없는 심대한 피해를 남겼다.

백남기 농민 사망의 책임소재를 두고 경찰과 집회참여자 중 어느 한쪽은 정당했고 다른 한쪽은 잘못이라는 경직된 인식으로는 좋은 해법을 찾을 수 없다. “가자 청와대로” “세상을 뒤집자”라는 구호를 외치며 폭력적 방법으로 경찰저지선을 뚫으려는 시위대를 상대로 한 경찰의 차벽 설치와 물대포 사용은 비례의 원칙을 벗어나지 않은 정당한 공권력 행사일 수 있다. 한편 경찰의 물대포 직사로 인해 집회참여자가 최종적으로 사망의 결과에 이르렀다면 공권력의 행사가 절제되고도 신중하였느냐 여부, 즉 과잉진압 여부가 논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가 가져야 할 마땅한 의문은 ‘이 같은 극심한 폭력적 충돌양상은 과연 피할 수 없는 것인가?’일 것이다. 이런 질문에 답하기 위하여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의 집회시위와 관련된 기념비적인 판결인 1985년 브록도르프 판결을 참고해 보는 것이 도움이 될 듯하다.

이 판결의 핵심은 “경찰은 집회의 자유에 친화적으로 임하여야 하고 경찰과 집회참여자 양당사자가 대등한 시민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공동의 가치, 즉 집회시위의 자유 및 공공의 안녕, 질서의 보호를 위하여 상호 대화, 협력하고 그 신뢰의 끈이 훼손되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판결은 경찰과 집회참여자 상호간의 도발, 공격행위 자극은 금지되어야 하며 집회시위 주최자는 평화로운 집회시위를 달성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하며 폭력행위자를 집회시위 행렬로부터 격리하도록 노력할 것을 제시한다. 또한 경찰은 집회시위대의 행동에 대한 과도한 반작용적 대응을 피하며 예기치 못한 대립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신뢰감 있는 협력을 할 것을 요구한다. 이와 같이 브록도르프 판결은 집회시위에서의 경찰과 집회시위대의 사전협의, 폭력적 집회시위자 분리 등의 노력을 통하여 폭력의 완화 내지는 예방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지난해 11월 14일 집회에서 경찰과 집회시위대 어느 누구도 브록도르프 판결에서 제시한 내용을 지키지 않았다. 결국 폭력적 충돌 상황이 벌어졌고, 불행하고도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어느 한쪽의 잘못으로만 몰아갈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경찰은 열린 자세로 집회참여자를 민주사회의 대등한 당사자로 인식하여야 하고, 집회시위대를 잠재적 폭도로 성급하게 도식화하여 집단행동의 폭력성과 위험성만을 강조함으로써 오해를 불러일으켜서는 안 된다. 한편 집회시위 주최자들은 집회의 자유가 아무리 중요한 기본권이라 하더라도 타인의 자유 및 권리와 충돌하는 지점에서 집회시위의 외적 영향에 대한 공동원인책임을 고려하여야 하며, 특히 “집합적인 폭력행위의 마술”, 즉 폭력의 첨예화를 통해 세간의 주목을 끈 것을 성공으로 인식하려는 성향을 보여서는 안 될 것이다.

이제 우리는 백남기 농민의 죽음 앞에 안타까움과 함께 경건한 마음으로 교훈을 생각해야 한다. 집회시위 시 경찰과 집회참여자들은 물리력 행사를 우선하기보다는 대화, 협의, 정보교환, 폭력완화전략에 기반한 상호존중형 집회시위 모델을 통해 다시는 불필요한 희생이 발생하지 않도록 머리를 맞대야 할 것이다.

이에 앞서 철저한 진상규명이 전제되어야 한다면 법치주의 국가의 틀 안에서 해법이 모색되어야 한다. 법원이 발부한 영장의 효력은 존중되어야 마땅하다. 32년 경찰 생활 중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오랜 형사부서 경험을 통해 얻어진 직업적 윤리를 기초로 개인적 의견을 말한다면 부검을 통해 사인이 명명백백하게 밝혀지는 게 우선이라고 본다. 물론 사인이 이미 명백하지 않느냐는 반대의견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분쟁이 있을 때는 법원의 판단이 존중되는 것이 맞다. 부검을 통해 물대포 사용의 안전기준이 강화되는 효과를 가져온다면 고인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는 결과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는 다음 단계, 즉 브록도르프 판결의 정신이 지켜지는 새로운 집회시위 모델을 마련하기 위한 논의로 나아갈 시점이 되었다.

조성식 기자 mairso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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