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모은 전재산 12억원 기부한 할머니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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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학생에 장학금 혜택 주자”… 6·25때 전사한 남편 기려 사회환원
대구 범어도서관 시청각실 현판… 4일 ‘김만용 박수년 홀’로 바꿔

3일 대구 수성구 범어도서관 지하 1층 시청각실 입구에서 주민들이 김만용 박수년 홀 안내문을 읽고 있다. 수성구 제공
3일 대구 수성구 범어도서관 지하 1층 시청각실 입구에서 주민들이 김만용 박수년 홀 안내문을 읽고 있다. 수성구 제공
대구 수성구는 4일 범어도서관 지하 1층 시청각실 이름을 ‘김만용 박수년 홀’로 바꾸는 행사를 연다.

올해 3월 수성인재육성재단에 평생 모은 재산 12억 원을 기부한 박수년 씨(85)의 뜻을 기리기 위해서다. 김만용 씨는 6·25전쟁 때 28세 나이로 입대해 1952년 전사한 남편이다. 재산을 기부할 때 박 씨는 “생전에 남편을 기리는 일을 하고 싶어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키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시청각실(140석)은 강연과 영화 상영 등으로 주민들이 자주 이용한다. 수성인재육성재단 이사회는 주민들이 박 씨의 사연을 공유했으면 하는 마음에 이곳을 기념 공간으로 정했다. 재단은 한글 서예가의 글씨로 가로 180cm, 세로 32cm의 현판을 제작했다. 부부의 뜻을 영원히 기억하겠다는 의미를 담아 색이 변치 않는 황금색으로 꾸몄다.

이진훈 수성구청장은 현판식 때 어버이날을 앞둔 박 씨에게 카네이션을 달아준다. 수성구는 장학금 기탁 때 찍은 사진 등을 엮은 앨범을 선물한다. 이성로 수성인재육성재단 이사장은 한복을, 재단 직원들은 고마운 마음을 담은 선물을 전한다. 이 구청장은 “부부의 숭고한 삶은 수성구 브랜드 인자수성(깨어 있는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따뜻한 쉼터)의 참모습을 일깨워준다”고 말했다.

박 씨는 은행 계좌에 있던 재산을 재단에 이체하는 방식으로 장학금을 기탁했다. 남편의 이름으로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고민에 이 구청장이 장학금을 남편 이름으로 지급하자고 제안했고 박 씨와 외아들이 동의했다.

경북 경산 출신인 박 씨는 17세 때인 1948년 결혼했다. 젊은 시절 남편을 떠나보내고 힘들고 가난했지만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보따리 장사를 하며 생계를 이어갔고 30세 무렵 수성동에 작은 집을 마련해 정착했다. 농사부터 양말공장 일까지 60세가 될 때까지 쉬지 않고 일을 했다. 번 돈은 대부분 저축하며 근검절약을 실천했다.

박 씨는 처음에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지만 이 구청장의 권유에 사연을 공개했다. 하지만 얼굴 공개와 인터뷰는 끝내 사양했다.

수성구보건소는 박 씨의 건강이 좋지 않아 방문 간호를 하고 있다. 이 구청장은 자주 안부 전화를 드리고 재단 직원들은 집에 찾아가 말벗이 되어 드린다. 박 씨는 최근 예전에 농사짓던 경산에 외출을 다녀올 만큼 건강도 회복했다.

‘김만용 박수년 장학금’을 만든 수성인재육성재단은 연말에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 10여 명을 선정해 1000여만 원을 나눠줄 예정이다. 해외 탐방 프로그램도 구상하고 있다. 이 재단 이사장은 “박 씨 부부의 뜻을 이어 많은 학생들이 혜택을 보도록 장학사업 확대에 힘을 쏟겠다”고 말했다.
 
장영훈 기자 j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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