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낳으면 승진 가산점 주자”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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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새해 특집]
[탈출! 인구절벽/1부]<3>두자녀 부부에 출산 인센티브
“하나 키우기도 버거운데”… 일자리 사라질까봐 아이 또 낳기 꺼려

《 “팀원한테 일 시킨 후 퇴근하려면 늘 뒤통수가 따갑죠. ‘칼퇴(정시 퇴근)’하려면 상사보다 팀원 눈치가 더 보여요. 팀장이 애 낳은 후로 늘 일찍 들어간다고 수군덕거리는 것도 같고요.” 무역회사 팀장 최민정 씨(38)는 지난해 2월 딸을 낳은 후 출산휴가 3개월만 마치고 바로 복귀했다. 회사는 “팀장이 오랫동안 자리를 비우면 일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읍소하는 듯했지만, 최 씨에게는 “육아휴직이라도 하면 자리를 빼겠다”는 소리로 들렸다. 아직 첫돌이 되지 않은 아이는 출퇴근하는 도우미 아주머니가 봐준다. 하루 일당은 9만 원. 하지만 오후 7시 이후부터는 시간당 1만 원씩 추가 비용을 내야 한다. 그래서 오후엔 화장실 갈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쁘게 일하고 팀원들에게 지시를 한 후 오후 6시가 되면 퇴근하려고 노력한다. 최 씨는 “둘째 낳으면 회사를 그만둬야 할 상황”이라며 “젊다면 직장을 옮길 수도 있겠지만 지금 내 나이와 직위에선 옮길 엄두도 못 낸다”고 말했다. 》

‘엄마’의 나이가 매년 올라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산모의 평균 출산 연령이 2009년 30.79세에서 2014년 32.04세로 올라갔다. 첫째 아이를 낳는 연령도 같은 기간 29.85세에서 30.97세로 높아졌다. 35세 이상 고령 산모의 비율도 2014년 기준 21.6%로, 전년보다 1.4%포인트 늘었다.

문제는 늦게 결혼하고 늦게 출산한 나이 많은 엄마 상당수가 아이를 낳아도 첫째에서 멈추고 둘째를 낳지 않는다는 것. 이 같은 현상은 우리 사회 저출산의 주된 원인이 되고 있다. 왜 둘째를 피하는 걸까.

늦은 나이에 아이를 낳은 엄마의 경우 상대적으로 고학력의 ‘워킹맘’이 많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13년 발행한 연구보고서 ‘저출산 고령화 대응 인구 자질 향상 방안: 고령 임산부의 출산 실태와 정책 과제’에 따르면 고령 산모(35세 이상)가 비고령 산모에 비해 대학교 재학 이상의 비율은 2.6%포인트, 취업 비율은 3.4%포인트 정도 높게 나타났다. 게다가 출산 당시 직장 내에서 관리자급인 경우가 많고 따라서 업무량과 책임감이 높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 보니 ‘워킹맘’ 고령 엄마들은 임신 및 출산, 이후 육아 과정에서 일과 병행하는 데 신체적 정서적으로 더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

변호사 김모 씨(40)는 39세가 된 지난해 첫아이를 가졌지만 ‘시니어 변호사’로서 임신 후 일을 제대로 못한다는 평가가 듣기 싫어 평소보다 열심히 일했다가 조산 위험으로 임신 30주에 병원에 입원했다. 김 씨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몸이 따라주지 않으니 너무 속상하고 아기한테 미안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문제는 출산 후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과정에서 더 도드라지게 나타난다. 대기업 차장이면서 딸 하나를 출산했던 강모 씨(38)도 “승진을 앞두고 있어 성과에 대한 압박이 크다”며 “야근이 많다 보니 두 살 난 딸과도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하는데 둘째를 낳는 건 언감생심”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2012년 전국 출산력 및 가족보건·복지실태조사’에 따르면 관리자 및 전문직 종사자가 다른 직종에 비해 일·가정 양립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자녀와 보내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답변이 많았다.

고령 엄마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친정 부모와 시부모가 고령화됐다는 점도 문제다. 광고대행사 팀장 이모 씨(39)는 야근과 주말 근무가 많아 친정어머니가 세 살 난 딸을 주로 돌본다. 이 씨가 어머니에게 “둘째 생각이 있다”고 했더니 어머니는 “얘, 나도 일흔이 넘었는데…”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 씨는 “나만 나이가 많은 게 아니라 친정 엄마도 연세가 많다는 걸 새삼 알게 됐다”며 “부쩍 늙으신 엄마한테 차마 둘째를 낳을 테니 봐달라고는 못하겠더라”고 말했다.

고용 유지에 대한 불안도 중요한 문제다.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실제로 출산력을 연구해 보면 가장 중요한 변수는 고용”이라고 강조했다. 즉, 안정적인 미래에 대한 소득 보장이 없다면 둘째 출산이 어려운 게 현실인데, 부모의 나이가 고령일 경우 더욱 그 부분이 부각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자녀를 둘 이상 낳으면 부모 모두에게 직장 내 승진에 가점을 주는 등 파격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상림 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고령 워킹맘의 경우 보육료 등 경제적 지원이나 보육시설 확보보다 고용 유지에 대한 믿음을 주는 게 더 중요하다”고 밝혔다. 김헌주 복지부 인구아동정책관도 “50세 전후면 찾아오는 은퇴 크레바스(은퇴 후 연금수령까지의 공백 기간)를 없애야 고령 부모도 마음 편하게 아이를 둘 이상 낳을 수 있다”며 “이는 전 사회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덧붙였다.

▼ “산모 나이와 아이의 건강은 전혀 상관 없어” ▼

고령산모, 출산 합병증은 주의해야… 조산 가능성엔 전문가 의견 엇갈려


“엄마 나이가 많아 애가 약한 것 아니니?”

지난해 3월 딸을 낳은 김모 씨(39)는 집안 어른으로부터 이 말을 듣고 큰 상처를 받았다. 아이에게 황달 증상이 있다는 진단이 나오자 산모의 나이가 원인 아니냐는 핀잔을 들은 것이다. 신생아 황달은 전체 신생아의 60%에서 나타나고 대부분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하지만 김 씨는 “이후 아이가 조금만 아파도 내가 나이 들어 낳아서 애가 약한 게 아닌지 걱정된다”고 털어놓았다.

산부인과, 소아과 전문의들은 “출생 당시 산모의 나이와 아이의 건강은 전혀 상관이 없다”고 한목소리로 말한다. 실제로 단국대 의대 제일병원의 2014년 통계에 따르면 신생아의 황달과 발작, 고열, 패혈증, 호흡곤란, 중환자실 입원율, 인공호흡기 착용 여부와 같은 신생아 합병증 발생률은 고령 초산모(처음 아이를 낳은 산모)와 고령이 아닌 초산모 간에 큰 차이가 없었다. 고령 산모 여부는 35세를 기준으로 한다.

다만 신생아 합병증의 주된 원인인 미숙아(이른둥이) 출산의 경우 산모의 나이가 중요한 변수인지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린다. 37주 이전에 태어난 이른둥이는 달수를 채우고(37∼41주) 나온 아이에 비해 폐렴이나 모세기관지염, 호흡곤란증후군 등 각종 질환에 시달리기 쉽다. 곽동욱 단국대 의대 제일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2014년 제일병원 통계에 따르면 산모 나이와 조산 비율이 의미 있게 높아지지 않았다”고 밝힌 반면 김병일 경기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초산모의 나이가 고령, 특히 40세 이상일 경우 이른둥이 출산 위험성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임신성 고혈압이나 당뇨병, 자궁수축부전(출산 후 과다 출혈로 자궁이 제대로 수축되지 않는 현상) 등의 합병증 발생률은 고령 초산모가 1.3∼2.5배 높게 나타났다.

곽 교수는 “고령일수록 혈압 및 체중 관리를 더욱 철저히 해야 합병증 발생을 줄일 수 있다”며 “나이와 상관없이 산모가 건강하면 아이도 건강하다”고 강조했다.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인구#출산#가산점#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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