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리 무시 민폐시민 속출… “정부탓 전에 지킬건 지켜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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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확산 고리를 끊자/시민-감염자]
시민 비협조가 불안 키운다

“메르스는 절대 아니에요.”

요즘 병원을 찾은 환자들이 자주 하는 말이다. 질병 탓에 어쩔 수 없이 병원에 오긴 했지만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감염 의심자로 분류되거나 아예 진료 자체를 거부당할까 봐 정확한 증세나 거쳐 온 병원을 숨기려는 것이다. 그러나 지나친 걱정과 불신으로 인한 거짓말이나 소극적인 태도는 자칫 더 큰 화를 부를 수 있다. 정부나 의료기관의 투명성 못지않게 시민들의 정확한 정보 공개와 협조가 이뤄져야 더이상의 메르스 확산을 막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환자는 속이고 병원은 피하고


“열 조금밖에 안 나요. 기침은 기관지염이 있어서 나는 겁니다.”

7일 오후 4시경 서울의 한 대학병원 응급실에 들어선 50대 남성은 마스크를 쓴 채 기침을 심하게 했다. 또 의료진에게 “열이 난다”고 설명했다. 체온은 37.5도. 의료진은 메르스를 의심한 듯 “최근에 다른 병원 방문하신 적 있느냐”라는 질문을 비롯해 발열 시기와 해외 여행 유무 등을 묻기 시작했다. 남성이 전부 아니라고 하자 응급실 의사는 “혹시 사람을 많이 만나는 직업을 갖고 있느냐”고 재차 물었다. 그러자 이 남성은 갑자기 “그런 거(메르스) 아니다. 단순 감기이고 기침은 원래 있는 것”이라고 강하게 주장했다. 그제야 치료가 시작될 수 있었다.

8일 찾아간 서울 노원구의 한 이비인후과에서는 발열 등 메르스 증상을 보이는 환자가 의료진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이 환자는 “알레르기 비염 증상이라 그렇다”며 한사코 메르스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간호사는 “비염 때문에 열이 나는 경우는 없으니 다시 검사받고 오시라”며 결국 환자를 돌려보냈다.

시민들은 병원 측이 진료를 거부할까 봐 메르스 의심 증세는 가급적 말하기 싫다고 입을 모았다. 회사원 손모 씨(32)는 “메르스 증상이 있다고 병원에서 안 받아준 76번째 확진자 사례 알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의료계에서는 환자가 모든 정보를 밝혀야 제대로 된 의료 행위를 할 수 있다고 호소했다. 최명재 상계백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환자들이 거짓말하면 세계 어느 병원도 전염병을 막아 낼 재간이 없다”며 “문진 때 자신의 정보를 숨기면 많은 사람이 더 위험해진다”고 지적했다.

○ 원칙 지켜야 메르스 차단

전문가들은 설령 메르스 증상을 보이더라도 제대로 진찰받고, 자가 격리 등을 통해 병이 전염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게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메르스 의심 증세를 보인 환자들의 격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자유롭게 돌아다닌 사례들이 알려지면서 사회적 불안감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경기 부천시에서 7일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은 A 씨(36)가 3일 자가 격리 조치를 받고도 출퇴근하는 등 곳곳을 돌아다닌 사실이 알려졌다. 이 남성이 접촉한 사람은 최소 300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A 씨를 진찰한 부천성모병원 측은 3일 보건소에 통보하는 등 할 수 있는 역할을 다했다는 입장인 반면, 부천시는 병원 담당 전문의가 격리 치료를 책임졌어야 한다며 책임 공방을 벌이고 있다.

전남 순창군에서는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은 B 씨(72·여)를 진료한 40대 의사가 자가 격리 기간 중 필리핀 여행을 한 사실이 알려졌다. 이 의사는 “격리 대상이 아니었고 순창군이 격리 통보를 늦게 했다”고 주장했다. 전북 김제시에 사는 C 씨(59) 역시 3일 고열로 병원을 찾았지만 8일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을 때까지 지역주민 수백 명과 접촉했다. C 씨는 이 기간 동안 지역 병원에 이틀간 입원까지 한 것으로 밝혀졌다.

시민들은 불안감을 호소했다. 자가 격리 조치를 받은 사람들이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천시 주민 김모 씨(31)는 “정부가 모든 걸 감시할 수 없는 상황인 만큼 증세가 있으면 환자 스스로 조심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의료계에서는 자가 격리 관리 인력이 부족하고 모니터링 체계가 허술하지만, 시민들의 참여가 있다면 확산을 막을 수 있다고 조언한다. 이재갑 한림대 감염내과 교수는 “현 시점에서는 환자 개인의 양심에 맡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자가 격리 중인 환자는 전염성 등을 고려해 주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건혁 gun@donga.com·임보미·박희제 기자
#격리#시민#메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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