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브레이크 안풀린 푸드트럭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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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개혁 지시 1년… 장벽 여전, “수도권 10곳 문의해도 영업불가”

한국판 ‘로이 최’를 꿈꿨다. 최근 개봉한 영화 ‘아메리칸 셰프’의 실제 모델인 로이 최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푸드트럭으로 성공 신화를 쓴 한국계 미국인이다.

미국엔 제2, 제3의 로이 최가 수두룩했다. 시카고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채명진 씨(25)에게 푸드트럭은 매력적인 창업 아이템이었다. 때마침 지난해 3월 박근혜 대통령 지시로 한국에서 푸드트럭이 합법화될 거라는 소식이 들렸다. 한시라도 빨리 실행에 옮기기 위해 귀국을 서둘렀다. 스위스에서 요리를 배운 김소망 씨(28)와 의기투합해 지난해 8월 서울 마포구 일대에서 파스타 전문 푸드트럭 ‘밀라노 익스프레스’를 열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구청의 단속에 올 1월 초 영업을 중단했다. 그러고는 합법적인 영업장소를 찾아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 “공문이 안와서…” “상인 반발” 공무원 벽에 막힌 규제완화 ▼

브레이크 안풀린 푸드트럭

○ “우리 공원은 안 돼.”

“푸드트럭 허용 지역과 시간, 업종 등을 반영해 공원조성계획을 변경해야 합니다.”(서울시 서부공원녹지사업소 공무원 A 씨)

“그럼 변경 계획은 있으신가요?”(채 씨)

“검토된 적 없습니다. 공원조성계획을 변경하려면 서울시 도시공원위원회가 승인을 해야 하는데 그것도 상당히 오래 걸리거든요. 기존 공원보다는 새로 조성하는 공원에 가는 게 쉬울 겁니다.”(A 씨)

공무원의 시계는 멈춰있는 듯했다. 사실 공원조성계획 변경이 어려워 검토조차 하지 않았다는 건 중부공원녹지사업소에서도 들었던 말이다. 녹음기를 틀어놓은 듯 똑같은 공무원들의 답변에 말문이 막혔다. 그래도 A 씨 조언에 따라 새롭게 조성되는 공원을 찾아봤다.

서울시는 홍제천부터 용산문화체육센터까지 총길이 6.3km인 경의선 폐선 부지를 공원으로 탈바꿈시키는 ‘경의선 숲길’ 사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1단계 구간(760m)은 2013년 완료됐다. 2단계 구간(3.5km) 공사는 올해 말까지 진행된다고 했다.

“공사 중이라 푸드트럭 영업 허가를 검토할 단계가 아닙니다.”(서울시 공원조성과 공무원 B 씨)

“검토할 계획도 없는 겁니까?”(채 씨)

“법적으로 푸드트럭을 양성화한 것은 알고 있습니다. 다른 공원은 모르겠지만 이 공원은 주변 상가들이 많아 곤란합니다.”(B 씨)

또 한 번 좌절했다. 기존 공원은 새로 조성하는 공원을 알아보라 하고, 신규 공원은 또 공사 중이라 안 된다는 말만 반복했다.

○ 안 되는 이유도 가지가지


“국토교통부 발표는 전국 도시공원 목록 안내만 해놓은 것이고 허가권은 저희에게 있습니다. 그리고 관련된 공문도 받은 게 없어요.”(서울시 한강사업본부 선유도공원관리사무소 공무원 C 씨)

기가 막혔다. 치미는 화를 참으면서 허가할 수 없는 이유를 물었다. “생태공원이라 취사를 일절 하지 못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렇다면 도대체 국토부는 왜 푸드트럭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도시공원을 떡하니 올려둔 것이란 말인가.

국토부는 올 1월 ‘푸드트럭 영업 관련 전국 도시공원(3222곳) 목록’을 발표했다. 실제 영업 가능 여부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오자 국토부는 “지방자치단체와 협의할 수 있는 공원 목록을 안내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공무원들과의 전화 통화가 이어질수록 채 씨는 지쳐갔다. 서울 한강공원, 여의도공원, 뚝섬공원 측은 기존 매점의 반발을 ‘불허’ 이유로 들었다. 채 씨는 푸드트럭에 대한 미련을 버렸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11일 서울시, 경기 고양시 성남시 등 수도권 지역 도시공원 담당 부서 및 사업소 10곳에 재확인한 결과도 채 씨의 말과 다르지 않았다. 고양시와 서울시 중부공원녹지사업소만이 각각 올 5월과 10월 푸드트럭 영업장소를 지정한다는 계획을 밝혔을 뿐 대부분은 복잡한 행정절차를 들어 난색을 표했다. 하지만 국토부 관계자는 “푸드트럭 허가는 별도 심의를 거칠 필요 없이 담당 부서의 결정만으로도 바꿀 수 있다”며 “아직 일선 지자체 담당자들이 잘 모르는 것 같다”면서 답답해했다.

○ 현실을 모르는 ‘탁상 정책’이라는 지적도

일각에서는 대통령 발언에 너무 성급하게 규제 개혁을 추진한 정부 부처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대통령이 규제를 풀라고 지시한 취지는 이해하지만 중앙정부가 각 지자체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성급하게 법부터 바꾼 것은 잘못”이라고 말했다.

공원 관리주체 측이 가장 우려하는 점은 기존 매점들의 거센 반발이다. 도시공원 내 매점들은 각 지자체와 계약을 맺고 연간 수억 원대 사용료를 내고 있다. 비싼 사용료를 내고 있는 만큼 푸드트럭 영업을 가만히 보고 있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김호경 기자 whalefisher@donga.com
#푸드트럭#규제개혁#로이 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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