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아픈 천사들이 당신을 기다립니다

  • 동아일보

자원봉사로 만날수 있는 서울시 어린이병원 ‘폐쇄병동’

21일 서울 서초구 헌릉로 ‘서울시 어린이병원’에서 자원봉사에 나선 본보 이철호 기자가 한 아이에게 간식을 먹이고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21일 서울 서초구 헌릉로 ‘서울시 어린이병원’에서 자원봉사에 나선 본보 이철호 기자가 한 아이에게 간식을 먹이고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생후 9개월 ‘강희’의 고개가 휘청거렸다. 가슴이 철렁했다. 처음 해본 아기 분유 먹이기는 보던 것과 천지 차이였다. 게다가 품에 안긴 아기는 몸과 마음이 모두 아팠다. ‘조심해야지’라는 생각에 5분 넘게 진땀을 흘렸다. 다행히 아기는 젖병 한 통을 모두 비우고 천사 같은 모습으로 단잠에 빠졌다.

21일 오후 서울 서초구 헌릉로 ‘서울시 어린이병원’을 찾았다. 국내 유일의 어린이 대상 ‘공공병원’인 이곳에는 현재 240여 명의 어린이가 입원 치료를 받고 있다. 대부분 다운증후군, 뇌성마비, 온몸에 기형이 있는 ‘다발성 기형’ 등 중증장애 환자들이다. 남자아이인 강희도 근이영양증(근육이 점점 약해지는 증상) 환자다. 더 심각한 건 어린이 환자의 70%가량이 태어나면서 곧장 부모로부터 버림받거나 복지시설에 맡겨졌다는 것. 질병이나 장애 상태도 심각해 병원 안 모든 병동은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는 ‘폐쇄병동’으로 운영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병원에서는 늘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이날 기자는 병원 6층에 위치한 ‘재활병동’에서 봉사활동을 했다. 이곳에는 그나마 스스로 거동이 가능한 29명의 어린이 환자가 있다. 기자에게 주어진 일은 갓난아기에게 분유와 간식 먹이기, 놀아주기. 어린이병원은 자원봉사자가 가진 기술과 흥미에 따라 단순 놀이, 식사, 목욕부터 아로마 마사지, 음악, 미술 봉사 등 다양한 활동을 주문한다.

이날 기자가 한 것은 가장 쉬운 수준의 봉사였지만 처음 해보는 것이라 쉽지 않았다. 특히 놀이시간을 함께한 뇌성마비 환자 A 양(15)은 1시간 내내 기자의 손을 꼭 붙잡고 놓지 않았다. “아이들이 사람들 정을 늘 그리워해서 그래요.” 가만히 기자와 A 양의 모습을 지켜보던 병원 관계자가 말했다.

폐쇄병동인 탓에 부모나 다른 보호자가 없는 환자에겐 자원봉사자들이 외부와의 유일한 ‘소통’ 창구다. 그래서 최근 어린이병원은 자원봉사자 유치에 정성을 쏟고 있다. 이들이 어린이 환자들의 사회성 발달에 큰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물론 공공병원이라는 특성상 인력 확충이 쉽지 않은 탓도 있다. 2014년 이곳을 찾은 자원봉사자는 9142명으로 재작년(8391명)보다 9%가량 증가했다. 재활병동 구양득 간호사(58·여)는 “간호사 7명이 교대로 근무하며 중증 어린이 환자 29명을 세세히 살피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며 “다행히 자원봉사자가 조금씩 늘면서 그만큼 아이들에게 쏟는 정성도 커져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와 함께 일한 4명의 자원봉사자 모두 “흔치 않은 경험을 했다”며 크게 만족해했다. 지난해 자원봉사자가 늘어난 것도 이런 긍정적 평가 덕택이다. 지난해 1월부터 2주에 한 번씩 식사봉사를 하는 김양화 씨(67·여)는 “부모를 잃고 몸도 아픈 아이들이지만 내가 주는 분유와 밥을 먹은 뒤 미소 짓는 모습을 보면 오히려 에너지를 얻고 돌아간다”며 “다양한 봉사 프로그램이 있는 만큼 누구라도 어린이병원에서 봉사활동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자원봉사는 홈페이지(childhosp.seoul.go.kr)나 전화(02-570-8032)로 신청할 수 있다.

이철호 기자 irontiger@donga.com
#자원봉사#서울시 어린이병원#폐쇄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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