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자장면 약속’ 10년만에 지킨 사고뭉치 꼬마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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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 홀엄마 “아들 도벽 좀…”, 박종규 경위 사랑의 가르침 3년
첫 월급타면 찾아뵙겠다던 문제아… 군대 첫 휴가받아 ‘보은 방문’

어릴 적 방황하던 자신을 올바른 길로 인도한 경찰에게 “나중에 새사람이 되면 자장면을 사겠다”던 어린이가 청년이 돼 경찰 아저씨를
 찾아왔다. 5일 도봉1파출소에서 만난 성모 씨(왼쪽)와 박종규 서울 도봉경찰서 경위. 서울 도봉경찰서 제공
어릴 적 방황하던 자신을 올바른 길로 인도한 경찰에게 “나중에 새사람이 되면 자장면을 사겠다”던 어린이가 청년이 돼 경찰 아저씨를 찾아왔다. 5일 도봉1파출소에서 만난 성모 씨(왼쪽)와 박종규 서울 도봉경찰서 경위. 서울 도봉경찰서 제공
“머리가 하얘지셨네요. 건강히 잘 계셨어요?”

5일 오후 4시경 서울 도봉경찰서 도봉1파출소. 군복무 중인 성모 씨(19)가 어머니와 함께 박종규 경위(55)를 찾아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손에는 귤 한 박스를 들고 있었다. 앳된 소년이었던 성 씨는 어느새 늠름한 청년으로 자라 있었다. 박 경위는 가슴이 먹먹해지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처음 인연을 맺은 건 성 씨가 초등학교 3학년 때인 2004년이었다. 박 경위는 노원경찰서 하계2파출소에서 근무하다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남편과 헤어지고 혼자 아들을 키운다는 시각장애 1급 여성, 바로 성 씨의 어머니였다. “아들이 도벽(盜癖)이 있는데, 제가 수차례 나무라도 반성의 기미도 없고 가출을 해요. 제 힘으로는 도저히 안 돼서 경찰의 도움을 청합니다.”

박 경위는 휴일에 모자가 사는 임대아파트를 방문했다. 아이는 동네 놀이터에서 혼자 배회하고 있었다. 이름을 불렀더니 “아저씨 누구냐”며 거부감을 보였다. 평소엔 동네 형들과 어울리며 물건을 훔치기 일쑤였고, 절도에 대한 죄책감도 없었다. 가출도 자주 했다.

곰곰이 생각한 끝에 어머니에게 “아이의 일상생활에 대한 관리권을 위임해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어머니는 흔쾌히 승낙했다. 이때부터 특별한 인연이 시작됐다. 박 경위는 아이에게 매일 하루 일과를 일지에 작성하게 했다. 오후 4, 5시면 아이를 만나 일지를 확인하고 생활을 점검했다. “물건을 훔치는 건 죄야. 진로에도 방해가 될 수 있어”라고 조언도 했다.

어린이날에는 인근 아웃렛에 데려갔다. 점심을 사주고, 봄 옷 한 벌과 책도 사줬다. 아이는 눈을 휘둥그레 뜨며 “아저씨가 왜 나한테 선물을 사주냐”고 물었다. 박 경위는 “오늘은 너의 날이잖아”라고 대답했다. 7개월쯤 지났을까. 아이의 도벽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진심이 통하자 아이는 마음을 열었다. 그리고 약속했다. 나중에 훌륭한 사람이 돼서 첫 월급을 타면 아저씨에게 자장면을 한 그릇 사주고, 더 잘되면 탕수육을 사주겠다고….

박 경위가 아이 얼굴을 본 건 중학생 때가 마지막이었다. 어머니가 생활고 때문에 아이를 할머니집에 보냈기 때문이다. 성 씨는 아저씨와의 약속을 마음속에 간직한 채 성인이 됐다. 군에 입대해 ‘그때 그 경찰 아저씨’를 생각하며 월급을 모았다. 마침내 첫 휴가 때 어머니와 함께 파출소를 찾았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박 경위는 근무 중이라 자장면을 먹진 못했지만, 30분간 대화를 나눴다. 성 씨는 청소년 상담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박 경위는 웃으며 말했다.

“너 상담사 잘할 거야. 왜인 줄 알아? 꼴통 짓을 해봤으니 애들 속마음을 잘 알 거 아냐.”

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자장면#약속#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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