짓밟히는 兵, 외면하는 軍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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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윤일병을 구하라]
구타 사망 윤일병 사건은 빙산 일각… 전역날 자살한 관심병사 이모 상병
상습구타로 정신질환까지 시달려… 간부들 모른척… 진상조사도 안해

조국을 지키기 위해 가족의 품을 떠난 아들들이 얻어맞고, 학대당하고, 아파도 치료받지 못하고, 심지어 목숨을 끊는 일을 언제까지 지켜봐야 할까.

선임병들의 잔혹한 구타와 가혹행위로 숨진 28사단 윤모 일병 사건이 온 국민의 공분을 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지난달 전역한 당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A급 관심병사’ 이모 상병(22) 역시 복무 중 선임병들에게 상습 폭행을 당하고 이로 인해 정신질환에 시달려 온 것으로 확인됐다.

본보가 이 상병의 부모, 친구, 동료 사병들을 인터뷰하고 군 병원 정신과 진료기록을 입수해 분석한 결과 그는 2012년 10월 제2탄약창 경비중대 자대 배치 직후부터 선임병들로부터 얼굴과 배 등을 지속적으로 구타당했다. 이등병, 일병 시절에는 일주일에 3회 이상 구타가 반복됐다.

이 상병은 군 병원 진료 당시 “선임들이 저를 패고, 때리고, (…) 웃으면서 ‘인간 샌드백’이라고 했다”고 진술했다. 이 상병의 동기 A 씨는 “부대 내 구타 문제가 심각했지만 간부들은 이를 모르는 척했다”고 말했다.

이 상병의 영혼은 철저히 짓밟혔다. 구타뿐 아니라 ‘계급 열외’ 등으로 고통받던 이 상병이 자살 충동과 폭력 성향을 보이다 끝내 “내 아버지가 할아버지를 죽였다”는 등의 망상에 시달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부대 측은 이 상병을 방치했다. 이 상병의 부친과 동기 병사 등은 “2014년 2월 이 상병이 소대장 모욕 사건을 일으키기 전까지 부대 측은 단 한 번도 병원 진료를 받게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육군본부 공보팀 관계자는 “이 상병이 전역한 다음 목숨을 끊었기 때문에 해당 부대에 대해 군 차원의 사고 경위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긴 터널의 끝에는 빛이 없었다. 정신이 온전하지 않았던 이 상병은 전역을 일주일 앞둔 6월 5일 중대장의 코를 머리로 들이받았다. 이 상병은 이 사건으로 전역 당일인 지난달 10일 군사 법정에서 징역 2년(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은 뒤 풀려나 경기 의정부시 집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해묵은 군내 구타와 가혹행위 문제가 개선되지 않는 배경에는 “군기를 잡아야 부대가 돌아간다”는 인식 아래 사고가 터질 때까지 이를 묵인하는 일부 간부들의 무책임한 인식이 깔려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백연상 기자 baek@donga.com
#윤일병 사건#군 가혹행위#구타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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