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배관-저장탱크 녹물 줄줄… 기적의 산단이 ‘화약고’로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3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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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화학물질 잇단 유출… 노후 산업단지 가보니

불산, 염소 등 유독가스 누출 사고가 잇따랐던 경북 구미시에서 7일에는 대형 기름탱크 폭발 사고가 터졌다. 노후한 구미산업단지의 ‘이상’을 알리는 신호라는 지적이 나오면서 주민들은 불안에 떨고 있다. 구미산단은 1973년 1단지를 시작으로 1980년대 중반에 조성이 완료됐다.

이곳뿐만 아니라 전국 곳곳에 있는 오래된 산업단지에서 크고 작은 유독물 누출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30∼40년 된 공장 설비와 건물은 낡을 대로 낡았지만 관리 소홀과 안전의식 부족으로 안전사고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한강의 기적’을 이끌었던 산단들이 국민 안전을 위협하는 화약고가 되지 않도록 정부, 지방자치단체, 사업주들이 안전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 ‘공포의 구미’

6일 오후 구미시 공단동 국가산업단지 1단지. 곳곳에서 낡았거나 철거 중인 건물이 눈에 띄었다. 5일 염소가스 누출 사고가 난 ㈜구미케미칼 주변에는 텅 빈 공장 용지와 철골구조만 남은 빌딩이 흉물스럽게 서 있다. 이곳 주민 박모 씨(46·공단1동)는 “수십 년 된 낡은 공단이라 흐린 날에는 화학물질 냄새가 진동해 창문을 항상 닫고 산다”며 “최근에 잇달아 사고가 나면서 이제는 여기 살기 겁난다”고 말했다.

200m쯤 떨어진 영세 섬유업체들의 상황은 더 열악했다. 철제 담장은 휘어져 있거나 문이 떨어져 나간 곳도 있었다. 공장 내 대형 저장탱크 표면에는 녹슨 화학물질이 흘러내렸다. 한 공장에서는 악취가 코를 찔렀다. 한 주민은 “섬유 염색원료 냄새다. 오래 맡으면 머리가 지끈거려 생활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경북도와 구미시는 1∼2월 구미산단 내 유해화학물질 취급업체를 대상으로 합동 점검을 벌였다. 상당수 공장 시설이 노후화로 인해 사고 위험성이 높았다. 한 공장에서는 화학물질 수송파이프 보호덮개의 내구연한이 지났음에도 교체하지 않았다. 보호덮개가 파손되면 화학물질이 그대로 외부에 유출되지만 사람이 통행하는 곳 외에는 그대로 방치한 경우가 많았다. 처리비용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유독물 취급시설을 신고하지 않은 채 마구잡이로 철거한 곳도 적발됐다.

구미산단은 1973년 1단지(1022만 m²·약 309만 평)를 시작으로 2∼4단지가 단계적으로 조성됐다. 입주기업은 1700여 곳이며 이 중 유해화학물질을 취급하는 업체는 160여 곳이다. 이 가운데 조성된 지 40년 된 1단지는 아파트와 상가, 학교시설이 섞여 있어 화학물질 누출 사고가 발생할 경우 대형 인명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경북도 녹색환경과 관계자는 “화학물질을 운반하거나 시설을 보수하는 과정에서 사고가 잦은 편”이라며 “유사시 외부 누출을 막는 배수로조차 갖추지 않은 공장도 있다”고 말했다.

○ ‘화약고’로 전락한 노후 산단

전국에는 구미산단처럼 노후한 산단이 적지 않다. 1962년 조성된 여수산단은 석유화학업종 기업이 많다. 이곳에 입주한 190여 기업 대부분이 유해화학물질 등록업체다. 해당 기업들이 설비 보수작업을 하고 있지만 ‘땜질’식에 그쳐 보완책 마련이 시급하다. 영세업체들은 수익 악화를 이유로 이마저도 외면해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나 마찬가지다. 지난해 6월 한국실리콘에서 화학물질을 이송하는 과정에서 구토와 두통을 유발하는 유독성 가스인 트리클로로실란(TSC)이 누출돼 근로자 40여 명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1970년 조성된 울산석유화학공단의 경우 유독물 취급 업체가 470여 곳에 이르는 데다 화학물질 누출 사고가 빈번한 곳이다. 특히 배관과 유독물 저장시설이 노후화되면서 2010년 33건, 2011년 42건 등 해마다 누출 사고가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산단 업체의 안전불감증은 심각한 수준이다. 2일 LG실트론 구미2공장에서 발생한 화학물질 누출 사고는 발생 16시간이 지난 뒤에야 외부에 알려졌다. 구미케미칼도 근처 공장 직원이 119에 신고한 뒤에야 유독물질 누출 사실이 확인됐다.

최영상 대구보건대 소방안전관리과 교수는 “유독물질을 다루는 업체들은 안전 분야에 대한 투자가 인색하다”며 “유독물과 폐수·대기배출 업체를 집중 관리할 정부기구를 신설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미=장영훈·울산=정재락·여수=이형주 기자 jang@donga.com
#구미산업단지#기름탱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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