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황창규 교수 임용 철회… 학교 안팎서 비판 잇달아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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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 20세기 프레임 갇혀 미래 놓쳤다”

서울대가 황창규 지식경제부 지식경제연구개발 전략기획단장(60·전 삼성전자 사장·사진)을 사회학과 초빙교수로 임용하겠다는 계획을 21일 철회했다. 일부 학생이 황 단장을 ‘삼성 백혈병 사건’의 책임자로 지목해 임용 반대 운동을 벌이자 학교 측이 끝내 임용을 포기한 것이다. 낡은 이분법적 논리의 굴레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 우리 대학 사회의 단면을 드러냈다는 비판이 학교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 교수진 “20세기의 낡은 패러다임” 개탄

이 대학 사회학과는 이날 황 단장의 임용에 필요한 행정절차 중단을 대학 본부에 요청했다. 서울대 학칙에 따르면 임용 절차 중단 요청은 임용을 사실상 백지화한 것과 동일한 효력을 갖는다. 학교 관계자는 “과학기술 발전에 따른 사회 변화를 가르치는 데 적격인 분을 임용했다고 생각했지만, 일부 학생의 반대를 잠재우기 힘들었다”면서 “안팎에서 논란이 증폭돼 임용을 취소했다”고 설명했다.

사회학과 교수진은 학과 홈페이지에 교수 일동 명의의 글을 올려 “황 박사의 순수한 뜻과 사회학과 교수진의 의지가 왜곡되는 과정을 방치할 수 있다는 (학교 측의) 우려와 이에 동감한 황 박사가 결단을 내린 결과”라고 밝혔다. 이어 교수들은 학생들이 황 단장 임용을 반대하며 성명서 등을 통해 펼친 주장에 대해 “편협한 시각에 우려를 표명한다”라는 뜻을 밝혔다. 또 교수들은 “황 단장 임용을 ‘노동을 버리고 자본의 편에 서는 것’이라고 규정한 일부 학생의 해석은 지나치게 왜곡된 접근”이라며 “이런 시선으로는 결코 사회학을 20세기의 낡은 패러다임으로부터 구제할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사회학과 측은 황 단장이 삼성전자 사장으로 일하면서 ‘황의 법칙’을 발표하는 등 반도체 혁명을 성공시킨 경험을 높이 사 황 단장의 식견을 학생들과 나눌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의 오랜 현장 경험이 이론 중심인 사회학 교육에 신선한 활력을 불어넣어 줄 것이란 판단이었다.

하지만 일부 사회학과 학생과 이 대학 법학전문대학원의 인권법학회 ‘산소통’ 회원들은 “황 박사가 삼성전자에 재직하던 시절 제조 공장에서 노동자 140명이 난치병에 걸렸기 때문에 해당 사건의 책임자를 학문의 전당에 들일 수 없다”라는 논리를 고집했다. 양승목 사회과학대학장은 “임용 취지가 왜곡된 채 임용이 취소돼 아쉽다”라며 “일부 닫힌 사고를 가진 학생들 때문에 다양한 교육을 원하는 다른 학생들이 피해를 보게 됐다”라고 말했다.

○ “황 단장 경험 수혈 기회 놓쳤다”

황 단장의 임용을 반대했던 학생들로 구성된 공동대책위원회는 이날 “삼성전자의 살인 경영을 책임졌던 인물을 대학의 협력자로 인정하려는 시도는 철회되는 게 마땅하다”라며 당연한 귀결이라는 시각을 보였다. 또 사회학과 교수들 명의의 글에 대해 “사회학과가 학생들에게 선보이겠다고 하는 혁신의 에너지와 지혜는 산업재해를 덮는 기술인가”라고 비판했다.

서울대 학생들의 온라인 사이트인 ‘스누라이프’에는 황 단장의 임용 취소에 대한 찬반 의견이 올라왔다. 한 학생은 “자신이 책임자로 있는 공장에서 죽어나간 노동자에 대해 최소한의 언급도 하지 않은 인물이 초빙이든 정교수건 대한민국 최고 지성의 강단에 서야만 하는가”라며 임명 취소를 반겼다. 하지만 다른 학생은 “첨단 과학기술을 빼놓고는 현대사회의 특징을 논할 수 없다. 자본과 노동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20세기적 프레임에 빠져 있다”라는 내용의 게시물을 올렸다.

류석춘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기술 개발을 통해 사회 문화를 바꾸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인프라를 마련한 기업인이 자신이 한 일에 대해 강의하면 교육적으로 긍정적인 파장을 불러올 수 있었을 것”이라며 “교수 임용이 학생들의 의견에 따라 인기투표처럼 이뤄진 게 아쉽다”라고 말했다. 김원섭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도 기업의 역할이기 때문에 반대하는 학생들의 입장을 이해할 수는 있다”면서도 “사회학은 사회 전체를 균형적으로 보아야 한다. 자본과 노동 중 어느 한쪽만 보면서 임용을 비난한 행위는 사회학도가 추구해야 할 학문의 목적에 맞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수연 기자 sykim@donga.com  
신사임 인턴기자 이화여대 철학과 4학년  
#서울대#황창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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