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쌈짓돈 등친 ‘윷놀이 도박단’

  • 동아일보

망 봐주고 판돈 10% 뜯고… 길이 2cm 윷으로 단속 피해

서울 종로구 종묘공원 일대에서 노인들을 상대로 윷놀이 도박판을 벌이다 경찰에 붙잡힌 일당이 사용한 윷. 단속에 걸려도 쉽게 물증을 없애기 위해 길이 2cm의 초미니 윷을 사용했다. 서울 혜화경찰서 제공
서울 종로구 종묘공원 일대에서 노인들을 상대로 윷놀이 도박판을 벌이다 경찰에 붙잡힌 일당이 사용한 윷. 단속에 걸려도 쉽게 물증을 없애기 위해 길이 2cm의 초미니 윷을 사용했다. 서울 혜화경찰서 제공
서울 시내 공원에서 윷놀이 도박판을 벌여 노인들의 쌈짓돈을 뜯어낸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의 범행은 노인들을 더 끌어오려는 경쟁 조직의 신고로 드러났다.

서울 혜화경찰서에 “종묘와 창덕궁 일대에서 노인들을 상대로 윷놀이 도박판을 벌이는 일당이 있으니 단속해 달라”는 신고 전화가 지난해 1월부터 최근까지 한 달에 40여 통씩 걸려왔다. 1인당 한 판에 1만∼10만 원씩 거는 도박판을 마련하고 망을 봐주는 대가로 판돈의 10%를 챙긴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경찰은 허탕만 쳤다. 도박단은 단속을 피하려고 자체적으로 만든 길이 2cm의 작은 윷을 썼고 3, 4명이 망을 봤다. 경찰이 나타나면 “개똥아 이리와”라고 신호를 했고 바로 판을 엎어버려 물증을 찾지 못하게 만들었다. 경찰이 현장에 있던 사람을 추궁해도 다들 “나는 구경만 했다”고 잡아뗐다.

하지만 단속에 실패할 때마다 익명의 신고자는 경찰 청문감사실에 전화를 걸어 “도박단과 경찰이 연계돼 단속정보를 주는 것 아니냐”고 따졌다. 경찰은 서울 시내에 ‘종묘파’, ‘남산파’, ‘청량리파’ 등 지역마다 비슷한 윷놀이 도박단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상대 조직을 와해시켜 손님들을 뺏어오려고 서로 신고한다는 정보도 얻었다.

경찰은 현장 동영상을 확보하고 수차례의 잠복과 탐문 수사를 통해 이들을 현행범으로 붙잡았다. 경찰은 도박장 개장 혐의로 ‘종묘파’ 행동대장 김모 씨(61)를 구속하고 4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또 달아난 총책 김모 씨(54)를 쫓고 있다. 도박을 한 60∼80대 노인 16명도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은 구속된 김 씨가 조사 과정에서 “남산파 애들이 우릴 신고한 것 같은데 가만두지 않겠다”며 별렀다고 전했다.

김성규·서동일 기자 sunggyu@donga.com
#쌈짓돈#윳놀이 도박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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