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같은 ‘시신없는 살인’ 배심원 판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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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7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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檢 “중장비 기사 살해 뒤 묻어” VS 피고인 “안 죽여… 외국에 나갔을 수도”

시체 없는 살인사건에 대한 재판을 다룬 영화 ‘의뢰인’의 포스터. 영화에서는 여러 정황증거에도 불구하고 시체가 없어 피고인이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난다. 동아일보DB
시체 없는 살인사건에 대한 재판을 다룬 영화 ‘의뢰인’의 포스터. 영화에서는 여러 정황증거에도 불구하고 시체가 없어 피고인이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난다. 동아일보DB
‘살인사건의 범인은 있는데 시체가 없다.’

‘시체 없는 살인사건’의 재판 과정을 다룬 하정우 주연의 영화 ‘의뢰인’과 유사한 사건의 재판이 실제로 18일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열렸다. 영화에서는 사건현장에 피해자의 피가 있었는데도 증거불충분으로 무죄가 선고됐지만 이번 재판에서는 증언 외에 아무 증거가 없는 상황이다. 피고인의 신청으로 배심원들이 유무죄 평결을 내리는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되면서 배심원들도 깊은 고민에 빠졌다.

시체는 없지만 실종자는 있다. 2008년 4월 일용직 중장비 기사인 조모 씨(당시 32세)가 사라졌다. 그는 세 자녀의 아버지다. 당시 조 씨는 동업자인 박모 씨(41)와 함께 있었다. 여기까지는 관련자 모두 인정하는 사실이다.

조 씨가 실종된 지 3년 반가량 흐른 지난해 말 박 씨의 과거 동거녀가 경찰로 전화를 걸어 왔다. 박 씨와 함께 2008년 5월 충남 아산으로 여행을 갔는데 박 씨가 “내가 조 씨를 굴착기로 생매장해 죽였다”고 말했다는 내용이다. 여행 직후 박 씨가 가져온 조 씨의 휴대전화와 가방 양말 등 소지품을 경기 용인시의 한 수녀원 옆 다리 밑에서 함께 태웠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경찰은 곧바로 수사에 착수해 조 씨가 실종된 사실을 확인하고 박 씨를 구속했다.

검찰이 주장하는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중장비 기사로 일하면서 알게 된 이들은 박 씨가 중장비 운전사 소개 사업을 제안해 동업관계가 됐다. 박 씨는 112만 원을, 조 씨는 1290만 원을 투자했다. 사업이 어려워지자 관계가 악화됐다. 한 공사현장에서 조 씨가 “투자한 돈을 갚지 않으면 사기로 고소하겠다”고 하자 격분한 박 씨는 조 씨를 때려 공사를 위해 파 놓은 구덩이에 밀어 넣은 뒤 굴착기로 흙을 덮어 살해했다는 것이다.

수사 과정에서 박 씨는 “조 씨가 굴착기 엔진오일을 갈다가 미끄러져 구덩이에 떨어져 죽게 돼 묻어 준 것”이라며 경기 용인시 인근의 한 포도밭을 매장 장소로 지목했다. 경찰은 3일간 그 일대를 파 봤지만 헛수고였고 거짓 진술로 결론 내렸다. 이후 박 씨는 “경찰의 강압수사에 의한 진술이었다”며 “조 씨가 어디 있는지 모른다. 당시 이혼을 해 충격으로 외국에 나갔을 수도 있다”고 말을 바꿨다. 소지품을 태운 건 조 씨와 연락이 두절된 뒤 자신이 맡아 갖고 있던 조 씨 소지품이 너무 더러워 태웠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결정적 증거인 시체를 확보하지 못한 경찰에게는 치명타나 다름없는 진술 번복이었다.

검찰은 재판에서 12명의 배심원 앞에서 동거녀와 경찰의 진술, 관련자들의 통화 및 출입금 명세 등 모든 정황 증거를 제시했다. 실종 이후 조 씨가 통화한 기록이 없다는 것도 증거로 제출됐다. 특히 박 씨가 2008년 5월 들어 갑자기 집과 자동차를 처분하고 여권 및 수표를 발행받는 등 아들과 중국으로 출국하려 한 증거도 나왔다.

그러나 이런 건 모두 정황증거였다. 대법원은 2008년 또 다른 시체 없는 살인사건에 대한 판결에서 “피해자의 사망 사실이 증명되어야 함은 물론이고 그 사망이 피고인의 행위로 인한 것임이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돼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영화 ‘의뢰인’에서 자신의 아내를 죽인 것으로 지목되는 피고인은 국민참여재판에서 배심원이 합의에 이르지 못하자 재판부로부터 “정황증거만으로 유죄를 인정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받는다. 하지만 선고 이후 시체가 발견되고 범인이 피고인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단죄된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부장판사 최동렬) 심리로 진행 중인 이 사건에서 배심원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

김성규 기자 sunggyu@donga.com
#시신없는 살인사건#의뢰인#배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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