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공교육 현장]경기 수내중-경기 청명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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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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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자치법정 열고… 인권행사 통해 인권실현… “우리의 인권, 우리가 직접 지켜요”

《학생인권조례의 도입을 둘러싼 교육현장의 갈등이 다시 불붙고 있다. 최근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학교폭력을 두고 ‘학생인권조례 때문에 학생들을 통제할 수 없게 되면서 폭력행위가 더 심해졌다’는 비판과 ‘학생들의 인권을 더욱 보장해야 폭력이 근원적으로 예방된다’는 옹호론이 팽팽하게 맞서는 것. 하지만 실제 교육현장에선 이런 ‘양자택일’을 벗어나 원활한 학교운영과 학생인권보호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성공적인 장면이 목격되고 있다. 학생들이 직접 나서 지혜로운 해결점을 찾아가는 학교를 찾았다.》
경기 수내중에서는 학생들로만 구성된 ‘학생자치법정’이 열린다. 수내중 제공
경기 수내중에서는 학생들로만 구성된 ‘학생자치법정’이 열린다. 수내중 제공
지난해 10월 경기 수내중학교(교장 김영극) 대강당에서는 제4차 학생자치법정이 열렸다. 법복을 입은 학생 판사와 검사, 변호사가 각 3명, 과벌점자 학생들 그리고 배심원을 맡은 학생 10여 명이 참석했다. 과벌점자로 나온 학생들 중 한 명이 복장불량, 두발불량, 지각 등으로 인한 학교규정 중복 위반으로 법정에 섰다.

‘검사’로 나온 학생은 “과벌점자에게 쌓인 벌점에 따라 화장실 청소 3일, 독서 감상문 5편 쓰기, 교문에서 아침 캠페인 1주일을 ‘구형’하고자 한다”고 발언했다. 이에 변호를 맡은 학생의 변론이 이어졌다. 그는 “과벌점자 학생은 복장 불량으로 열 번에 걸쳐 적발됐는데 열 번 모두 넥타이를 매지 않은 이유였다. 넥타이를 분실한 후 다시 구매하기까지 시간이 열흘 정도 걸렸는데 그 기간에 매일 적발을 당하는 바람에 10회나 누적이 된 것이니 선처를 부탁한다”고 말했다.

과벌점자 학생도 “잘못을 깊이 반성하고 있다”며 “자치법정을 계기로 상점을 쌓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할 것”이라고 ‘최후진술’을 했다. 그 뒤 배심원을 맡은 학생들이 모여 뭔가를 숙의했다. 결국 과벌점자 측의 변호가 참작되어 검사의 구형보다 조금 완화된 ‘판결’을 받을 수 있었다.

경기 수내중은 학생인권조례가 처음 선포된 2010년 10월부터 교내 학생자치법정을 진행한다. 학교에서 부과하는 벌점 20점이 초과된 학생은 학생들로만 구성된 ‘자치법정’에서 치열한 토론을 통해 내려진 판결에 따라 벌을 받는 것이다.

이 학교 이계만 수석교사는 “교사가 학생에게 무조건적이고 일방적인 벌을 내리기보다는 스스로 잘못을 돌이켜보고 변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학생의 인권을 함께 보호하려는 목적”이라고 자치법정의 시행취지를 설명했다.

학생자치법정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첫 법정이 열릴 당시 자치법정의 구성원이 되기 위해 지원한 학생은 전교에서 100명이 훌쩍 넘었다. 이 교사는 학생자치법정에 참여하기를 희망하는 학생들로 하여금 우선 서울고등법원에서 진행되는 실제 형사재판을 참관토록 함으로써 재판 절차를 이해하도록 했다. 이후 별도의 필기·면접시험을 거쳐 법정구성원을 최종 선발했다. 재판의 절차와 더불어 ‘법전’처럼 사용될 교내 학생생활규정을 숙지하고 있는지를 가늠하는 이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이 학교생활규정을 자연스레 익히게 되는 ‘일석이조’ 효과도 거둘 수 있었다.

학생자치법정을 준비·운영하는 이 학교 학생회장 조상기 군(3학년)은 “법정에 과벌점자로 섰던 학생 중 또다시 과벌점자가 된 학생은 지금껏 없다”면서 “한때 과벌점자 자리에 섰던 학생도 다음 법정에서는 배심원이나 판사 역할을 맡아 과벌점자로 나온 동료를 심의하다 보니 교내 규칙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고 준법의식도 높아졌다”고 말했다.

‘인권’이란 단지 무엇인가를 마음대로 할 자유만을 뜻하진 않는다. ‘진정한 인권이란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깊이 생각토록 함으로써 성숙한 인권의식을 갖도록 유도하는 학교도 있다.

경기 청명고는 학교운영에 대한 학생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 지난해 10월 ‘SMART 인권행사’를 열었다. 청명고 제공
경기 청명고는 학교운영에 대한 학생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 지난해 10월 ‘SMART 인권행사’를 열었다. 청명고 제공
경기 청명고등학교(교장 조도연)는 지난해 ‘SMART 인권행사’를 교내 곳곳에서 열었다. ‘SMART’란 인권실현을 위해 필요한 가치를 뜻하는 영어단어인 ‘Special’ ‘Multi’ ‘Active’ ‘Revolutional’ ‘Thoughtful’의 앞 글자를 딴 말로, 각각 ‘창의’ ‘타인까지 생각하는 마음’ ‘건강과 행복’ ‘자주’ ‘협동과 배려’라는 가치를 담은 것. ‘학생들이 인권을 실현하려면 인권의 개념 자체를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는 취지에서 마련된 이 행사에서 학생들은 ‘내가 생각하는 인권은 무엇인지’ ‘나의 인권을 실현하기 위해 나 자신이 학교에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등의 질문을 스스로 던지고 답변한다. 이 과정에서 인권의 개념을 체득하게 된다.

전교 학생회장, 부회장 등 17명으로 구성된 학생회는 교내 강당, 중앙현관, 구령대처럼 학생들의 눈에 잘 띄는 공간에서 학생인권과 관련된 교내문제에 대해 투표스티커를 붙이는 방식의 설문조사를 실시하기도 했고, 대형종이를 부착해놓고 학생들이 무기명으로 자유롭게 의견을 쓸 수 있도록 했다. 자신의 한 표, 한 마디가 실제 학교 운영에 고스란히 반영된다는 사실을 체감한 학생들은 ‘학생의 자치활동을 늘려달라’고 학교에 요구해 스포츠동아리 대회가 열리는 결과로 이어졌다. 또한 화장실 환경이 개선된 것도 인권행사를 통해 실현된 소중한 성과물이었다.

이 학교 정만교 교감은 “학교의 구성원으로서 목소리를 내고 조직의 운영에 적극 참여하는 것이 학생 인권실현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며 “학교의 주인은 학생인 만큼 학교의 작은 일에도 학생들에게 의견을 구하며 소통을 확대하다 보니 학생들이 교무실을 찾는 빈도도 늘어나면서 학생과 교사가 더욱 가까운 사이가 됐다”고 말했다.

오승주 기자 cantar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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