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rrative Report]나는 특별하지 않은, 그냥 교사입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1월 3일 03시 00분


코멘트

“앞못보는 우리 선생님 이런 놀라운 능력이…”
시각장애 김헌용 교사의 ‘매직’에 아이들 “우와!”

지난해 1급 시각장애인으로는 서울에서 처음으로 일반학교 교사가 된 김헌용 씨가 학교 교실 창가에 서 있다. 학생들이 시각장애인에 대한 마음의 창(窓)을 열게 하는 게 그의 가장 중요한 과제다.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지난해 1급 시각장애인으로는 서울에서 처음으로 일반학교 교사가 된 김헌용 씨가 학교 교실 창가에 서 있다. 학생들이 시각장애인에 대한 마음의 창(窓)을 열게 하는 게 그의 가장 중요한 과제다.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다섯 살 때 어딘가에 눈을 부딪쳤다는데 기억은 나지 않는다. 흐릿하게 보이던 영상마저 고등학교 무렵부터는 완전히 사라졌다. 그래도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2010년 마침내 꿈은 이루어졌다. 시각장애인이 특수학교가 아닌 일반학교 교사가 된 것은 서울에서 처음이라고 했다. 모두들 오래 못 버틸거라고 수근거렸다. 다른 선생님들이 쉬는 시간에도 수업준비에 매달렸다. 아이들의 목소리와 이름, 책상 위치는 모조리 외워버렸다. ‘가짜 시각장애인일지 모른다’고 의심하는 아이들도 생겨났다. 그렇게 1년 반이 흘렸다. 내 꿈은 ‘장애인인데도 좋은 선생님’이 아니라 그냥 ‘좋은 선생님’이 되는 것이다.”》
“딱딱딱딱딱….”

금속성 막대로 시멘트 바닥을 두드리는 소리가 리드미컬하다. 이내 조용한 학교 건물을 가득 채운다. 봄기운이 수줍게 느껴지는 지난해 2월 말의 어느 날. 아이들이 없는 빈 건물 곳곳을 김헌용 씨(25)가 걷고 있었다. 헌용 씨가 1급 시각장애인이란 사실은 그의 손에 들린 지팡이가 말해주고 있었다. 지팡이가 곤충의 더듬이 같다.

‘현관에서 열다섯 걸음, 오른쪽으로 열다섯 걸음이면 교무실….’

오른쪽 복도 막다른 끝에 교무실이 있다. 교무실을 지나면 다시 복도가 시작되고 한 번 꺾인다. 복도가 꺾이는 부분에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다. 놓쳐서는 안 될 게 많다. ‘더듬이’가 전달해 주는 새로운 정보가 들어올 때마다 헌용 씨는 머릿속에서 학교 지도를 다시 그린다. 아, 머리가 복잡하다.

서울 서초구 잠원동의 경원중은 평범한 기역자 건물이다. 그렇지만 그에게는 미로다. 최소한 일주일은 더 고생해야 건물에 익숙해지겠지…. 한숨을 내쉰다. 그래도 이틀 후면 아이들에게 ‘선생님’이라 불리게 되잖아! 기대감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지난해 헌용 씨의 봄은 그렇게 시작됐다.

헌용 씨는 이 학교에서 영어교사 생활을 시작했다.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전맹(全盲)’ 시각장애인이 특수학교가 아닌 일반학교 교사가 된 것은 서울에서 처음이라고 했다. 다섯 살 때 어딘가에 눈을 부딪쳤다는 데 기억은 나지 않는다. 공주대 특수교육과에 진학한 후 해외 축구중계를 즐겨 듣다 영어를 좋아하게 됐다. 복수전공으로 영어교육을 택했고 토익 975점, 텝스 918점의 고득점을 얻기도 했다.

경원중은 비상사태를 맞았다. 개학하면 당장 수업을 어떻게 맡겨야 할지가 가장 큰 고민이었다. 교장은 영어교사들을 소집해놓고 말했다. “몇 개 학급만 담당하면 학부모들 사이에서 불만이 나올 수 있어요.” 다 짜놓은 수업시간표를 다시 짜야 했다.

“장애인 선생님을 아무 대책 없이 개학 직전에 발령 내면 어쩌자는 거야.” 교사들 사이에서 교육청을 원망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시각장애 김헌용 교사의 ‘매직’▼

교사 김헌용 씨가 점자정보단말기에 입력된 교과서 내용을 읽고 있다. 수업시간은 45분으로 다른 교사들과 같지만 수업 준비에 드는 시간은 서너 배나 많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교사 김헌용 씨가 점자정보단말기에 입력된 교과서 내용을 읽고 있다. 수업시간은 45분으로 다른 교사들과 같지만 수업 준비에 드는 시간은 서너 배나 많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보조교사를 따로 채용할 겨를이 없었던 학교는 영어회화 시간강사에게 헌용 씨의 보조 역할을 맡겼다. “수업을 하러 왔는데 보조를 하라고요?” 강사는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항의를 했지만 결국 학교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헌용 씨가 출근한 지 며칠 되지 않은 어느 날, 헌용 씨는 이마에 피를 흘린 채로 학교에 나타났다. 출근길에 횡단보도 앞 장애물에 걸려 넘어진 것이었다. 교장은 헌용 씨가 지하철역에서 학교까지 걸어오는 길에 있는 장애물을 치우고 횡단보도 신호등에 시각장애인용 음성신호기를 달아달라고 구청에 요청했다.

돌아보니 학교 안에도 온통 장애물로 가득했다. 모든 장애물을 없앤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더 큰 걱정거리는 헌용 씨가 아이들을 잘 다룰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3년이 한계일 겁니다.”

교장은 나름대로 노력을 했지만 여전히 학교는 시각장애인이 일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공간이라고 판단했다. 적응에 실패한 헌용 씨가 3년 안에 다른 학교로 옮길 거라는 예상에 다른 교사들도 동의했다.

가짜 시각장애인 아냐?

1년 반이 지난 2011년 11월. 헌용 씨는 여전히 경원중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공립학교 교사니까 5년마다 자연히 다른 학교에 배치되겠지만 아직까지 학교를 옮기고 싶다는 생각은 없다.

새 학기 초, 1학년 황태영 군은 영어수업 시간에 옆자리 친구와 잡담을 하고 있었다.

“어차피 선생님 못 보잖아. 누가 떠들었는지 모를걸?”

그때였다. 헌용 씨는 태영이 쪽을 정확히 바라보고 말했다.

“태영아. 좀 조용히 하자.”

깜짝 놀란 태영이는 다시 친구에게 속삭였다.

“야, 선생님 진짜 안 보이는 거 맞냐? 진짜 신기하다.”

헌용 씨가 가짜 시각장애인일지 모른다는 ‘의심’이 제기됐다. 아이들은 헌용 씨의 ‘능력’을 신기해했다. 놀라운 능력은 계속 나왔다. 헌용 씨는 대부분 아이들의 목소리와 이름, 책상 위치까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아이들은 그게 능력이 아니라 ‘노력’ 덕이란 걸 깨달았다.

“신기한 건 아니지만 대단하지 않냐? 쌤 수업도 되게 잘하시잖아.”

태영이는 동아리도 헌용 씨가 담당하는 영어 노래반을 선택했다.

복도에서 헌용 씨를 마주치는 아이들은 평범하지 않은 방식으로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저 영재예요.”

“쌤 안녕하세요, 저희 7반이에요.”

이렇게 인사하는 것은 헌용 씨의 수업을 들었다는 뜻이다. 그는 매년 첫 수업 때 시각장애인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헬렌 켈러, 스티비 원더처럼 유명한 시각장애인들의 사진을 보여준 뒤 말을 이었다.

“이 사람들이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건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야. 선생님도 너희들이 도와주면 더 잘 가르칠 수 있을 거야. 인사를 할 때도 앞으로는 누구인지 알 수 있게 이름을 같이 얘기해주면 좋겠다.”

그 다음부터 아이들은 이름을 붙여 헌용 씨에게 인사를 했다. 장난기가 가득한 몇몇 아이는 갑자기 헌용 씨의 손을 붙잡고 “쌤 안녕하세요, 저 누구게요”라고도 했다. 일부러 목소리를 바꿔서 물어보는 녀석들도 있었다. 대부분 아이들의 목소리를 구별해내는 헌용 씨라도 이럴 때 정답률은 30% 정도다. 개구쟁이 녀석들. 헌용 씨는 허허 웃는다.

얘들아, 선생님을 부탁해

김헌용 씨는 축구, 마라톤에 이어 최근 기타 연주에까지 도전했다. 늘 새로운 삶에 도전하는 그가 영어교실에서 포즈를 취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김헌용 씨는 축구, 마라톤에 이어 최근 기타 연주에까지 도전했다. 늘 새로운 삶에 도전하는 그가 영어교실에서 포즈를 취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당연한 일이지만 헌용 씨는 수업시간에 교과서를 들고 다니지 않는다. 작은 공책 크기인 점자정보단말기에 손가락을 대고 교과서에 나오는 글자를 읽는다. 그림은 읽을 수 없지만 교과서 몇 쪽에 어떤 내용의 그림이 나오는지 정도는 다 알고 있기 때문에 어려울 것은 없다.

“자, 누가 발표해볼까.”

1학년 영어 수업시간. 헌용 씨가 발표를 시키자 한 여학생이 손을 들고 말한다.

“선생님 저요.”

“그래, 혜원이가 발표해보자.”

헌용 씨가 목소리만 듣고 누구인지 맞혀도 놀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벌써 한 학기 넘게 그와 함께 지낸 아이들에게는 익숙한 일이다. 물론 그러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지만.

교실 앞 스크린에는 두 가지 프로그램을 실행시켜둔 컴퓨터 화면이 떠 있다. 교과서를 전자파일로 만든 프로그램과 ‘한글’ 워드프로세서다. 교과서 화면을 띄워놓고 수업을 하던 헌용 씨에게 한 학생이 질문을 던졌다.

“선생님, ‘비싼’이 영어로 뭐예요?”

“‘비싼’은 익스펜시브라고 해. 얘들아 지금 화면이 한글이니?”

“아니요. 교과서예요.”

헌용 씨는 스크린 화면을 교과서 파일에서 한글 프로그램으로 바꾼 뒤 ‘expensive’라고 적었다. 칠판 대용인 셈이다. 화면을 수시로 바꾸면서 수업을 하다 보면 어느 화면이 떠있는지 헷갈릴 때가 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에게 묻는 게 습관이 됐다. 아이들은 익숙한 듯 “한글요”라거나 “교과서요”라고 대답한다. 헌용 씨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아이들이 대견하고 또 고맙다.

“선생님, ‘나는 의사가 되고 싶다’는 어떻게 써요?”

“자, 그 표현은 이렇게 써.”

헌용 씨가 ‘나’를 뜻하는 영어 대문자 I를 실수로 두 번 누르자 아이들이 “선생님, I가 두 개인데요”라며 다시 고쳐줬다. 45분의 수업시간은 헌용 씨와 아이들이 웃고 떠드는 동안 순식간에 지나갔다.

학교 업무가 수업보다 어려워요

수업이 없는 시간에 교무실에서 헌용 씨가 하는 일은 십중팔구 수업 준비다. 수업자료를 만들기 위해 컴퓨터에서 ‘파워포인트’ 프로그램을 실행한다. 커서를 천천히 맨 위에서 다섯 칸, 오른쪽으로 네 칸 옮긴 뒤 단어 하나를 쓴다. 그 다음은 다시 맨 위에서 여섯 칸, 오른쪽으로 네 칸 커서를 옮겨 다른 단어를 쓴다. 단어의 위치를 일일이 기억해가며 조심스럽게 자판을 두드리는 작업. 헌용 씨는 모든 신경을 집중해 일을 끝낸다.

“혹시 글자가 겹치지는 않았나요?”

보조교사가 문제가 없다고 답했다. 이제부터는 보조교사의 몫. 헌용 씨가 원하는 그림과 영상을 인터넷에서 찾아 수업자료에 넣어준다. 교사에게 주어진 수업시간은 45분으로 같다. 그러나 수업준비에 걸리는 시간은 헌용 씨가 다른 교사보다 서너 배 더 많을 수밖에 없다.

헌용 씨가 가장 난감했던 순간은 교사들이 행정업무를 볼 때 사용하는 ‘나이스(NICE)’ 프로그램에 접속했을 때였다. 나이스에서만큼은 컴퓨터 화면을 읽어주는 시각장애인용 프로그램이 도통 먹혀들지 않았다. 학생 성적 입력 같은 필수적인 업무조차 할 수 없었다.

‘언제까지 다른 선생님에게 대신 입력해달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는 나이스를 관리하는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에 시각장애인을 위한 조치를 해달라고 요청했다. KERIS가 요청을 받아들인 덕분에 자주 사용하는 항목들은 읽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여전히 ‘동아리 활동 상황’처럼 비교적 덜 사용하는 항목들에는 손을 댈 수가 없다. 결국 지금도 다른 교사들이 헌용 씨의 일을 도와줘야 한다.

“김 선생님, 너무 당당하게 해달라는 거 아니야?”

도움을 요청하는 헌용 씨에게 장영한 교사는 웃으며 말했다. 장 교사는 최근 결혼했는데 그전까지 헌용 씨와 함께 이 학교에 둘밖에 없는 총각 교사였다. 퇴근 후 같이 술을 마시면 취해서 길을 못 찾는 헌용 씨를 놀리며 웃고, ‘막 대하는’ 스스럼없는 사이다. 짓궂은 농담을 하기도 하지만 그는 헌용 씨가 없는 자리에서는 최대의 우군(友軍)이다.

나는 평범한 선생님

교직 경력 2년 차인 헌용 씨에게 ‘학급 담임’은 미지의 영역이다. 그 영역을 엿볼 기회가 있었다. 다른 교사가 일주일간 휴가를 낸 사이 1학년 임시 담임을 해봤다.

임시 담임을 하게 된 날에 마침 상장을 줄 일이 생겼다. 종례시간 전에 미리 상장을 받을 학생과 상장에 쓴 내용을 점자로 적어뒀다. 교실에 들어가 상을 받을 학생들을 차례로 부른 헌용 씨는 한 손으로 미리 적어둔 점자를 만지면서 상장 내용을 읽었다. 누가 봐도 상장을 보고 읽는 것 같았다.

학급에서 벌어진 도난사건도 경험했다. 한 아이가 책을 잃어버렸던 것이다.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고민하던 헌용 씨는 책을 잃어버린 아이 주변에 앉은 아이들을 한 명씩 불러 얘기를 들었다. 책을 누가 슬쩍했는지 안다는 아이가 있었다. 책을 가져간 아이와 따로 상담을 하고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도록 했다.

‘담임도 불가능하지는 않겠구나!’

다음 목표가 생겼다. 학급 담임을 맡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장애인인데도 좋은 선생님’이 아니라 그냥 ‘좋은 선생님’이란 소리를 듣고 싶다. 담임을 하면 아이들과 더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다. 헌용 씨에게 학급 담임은 좋은 선생님이 되기 위한 또 하나의 관문이다. 지난해 겨울, 방학이 시작되기 전 1년의 마지막 수업에서 아이들과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내가 미숙한 점이 많아서 너희들에게 1년 동안 미안한 게 많아. 혹시 이전에 시각장애인을 본 적이 있는 사람?”

“없어요.”

“그러면 나 같은 시각장애인들은 다 어디 있을까. 왜 자취를 감췄을까?”

“…….”

“내가 여기 온 건 대단히 훌륭한 사람이어서도 아니고 너희들에게 학교가 특별한 교육을 시켜주기 위해서도 아니야. 그냥 다른 선생님들처럼 내가 교사가 되는 것도 당연한 일인 거야. 앞으로 사회에 나가서 장애인을 만날 기회가 많을 거야. 그 경험을 단지 조금 먼저 해봤다고 생각하면 좋겠어.”

헌용 씨는 앞으로도 매년 마지막 수업에는 이 이야기를 해 줄 계획이다. 누군가가 아이들에게 자신에 대해 물으면 “김헌용 선생님요? 그냥 특별한 거 없고 평범하신데요”라고 말할 때까지.

남윤서 기자 bar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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