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분증 하루 4개꼴 분실… 경찰 맞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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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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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서울 상계동의 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차량털이범 황모 씨(38)가 일명 ‘맥가이버칼’로 차문을 열고 안에 있던 물건을 훔치다 주민 염모 씨(40)에게 발각됐다. 황 씨는 “여기서 뭐 하느냐”는 염 씨의 물음에 “잠복근무 중인 경찰”이라며 태연한 표정으로 경찰 신분증을 꺼내 보여줬다. 염 씨가 경찰 신분증 사진과 다른 황 씨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리자 황 씨는 염 씨에게 전자충격기를 쏜 뒤 훔친 물건을 챙겨 달아났다.

○ 경찰 신분증, 한 달 132개꼴 분실

경찰청이 20일 한나라당 박대해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1∼7월 경찰공무원증 분실신고는 무려 922건. 경찰관들이 한 달에 132개꼴로 신분증을 잃어버리고 있는 셈이다.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최근 5년간 분실된 신분증은 3793개에 달했다. 습득한 신분증을 이용해 경찰 등 공무원을 사칭한 범죄도 올해 8월까지 17건이 발생해 지난해 12건을 넘었다.

경찰장비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무전기 773대, 신원조회기 530대, 교통경찰관용 개인휴대정보기기(PDA) 68대 등 정보화 장비 1371대가 분실된 것으로 나타났다. 수갑은 2007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69개, 시위대가 경찰에 접근하는 것을 막을 때 쓰이는 이격용 분사기는 23정 분실했지만 한 개도 회수되지 않았다.

무전기 1대 가격은 90만∼110만 원대로,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분실된 무전기 중 끝내 찾지 못한 510대를 새로 마련하는 데 든 예산이 5억 원에 이른다.

○ 경찰 신분증, 장비 범죄 악용돼

경찰 무전기는 1대만 있어도 각종 단속정보와 경찰차 출동상황 등을 쉽게 감청할 수 있다. 2008년 충북 청주에서는 강모 씨(38)가 우연히 주운 경찰 신분증과 무전기를 가지고 경찰을 사칭하며 유흥업소 종업원에게서 돈을 뜯어내고 성폭행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또 경찰의 휴대용 신원조회기로 차적 조회를 하면 도난 및 수배 여부는 물론이고 차주의 이름 주소 사진 등 개인정보를 모두 조회할 수도 있다.

이격용 분사기도 캡사이신 고추농축액이 들어 있어 시위대에 넘어가면 경찰이 진압 과정에서 도리어 경찰 장비로 공격을 받는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경찰 관계자는 “무전기나 이격용 분사기는 집회 현장에서 시위대에 빼앗기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신원조회기는 현장 단속을 하면서 순찰차 트렁크에 올려놨다가 깜박 잊고 철수하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하지만 신분증이나 장비를 분실한 직원에 대한 징계는 오히려 완화되는 추세다. 당초 경찰은 신분증 분실자에 대해 견책 징계를 했지만 일반 공무원과 비교해 처벌이 무겁다는 내부 반발 때문에 2006년 징계에 해당하지 않는 경고로 수위를 낮췄다. 신분증을 여러 번 잃어버린 경찰관에 대한 불이익 규정도 없다. 일반 국민은 여권을 두 번 이상 분실하면 관할 경찰서의 내사대상이 되고 여권 발급에 제재를 받는다.

박대해 의원은 “일반 공무원과 달리 경찰 신분증은 사칭 범죄로 이어질 수 있고 경찰 장비는 그대로 범행 도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더 엄격하게 관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숭호 기자 shcho@donga.com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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