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껑도 못연 주민투표]주변 눈치 본 투표현장… 주민들 서로 “투표했냐” 묻는 것조차 꺼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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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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野 불참운동으로 사실상 ‘공개투표’ 된 상황

썰렁한 투표장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실시된 24일 오전 서울 은평구 녹번동 은평문화예술회관 대회의실에 마련된 녹번동 제7투표소는 투표를 하려는 유권자의 발길이 한동안 끊겨 한산한 모습이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썰렁한 투표장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실시된 24일 오전 서울 은평구 녹번동 은평문화예술회관 대회의실에 마련된 녹번동 제7투표소는 투표를 하려는 유권자의 발길이 한동안 끊겨 한산한 모습이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올 초부터 정국을 뜨겁게 달궜던 서울시의 무상급식 주민투표는 ‘투표율 미달로 인한 개표 무산’이라는 ‘허무 개그’로 결론 났다. 야당의 투표 불참 운동으로 사실상 ‘공개투표’가 돼 버린 상황에서 오히려 정당하게 투표권을 행사하는 시민들이 주변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 썰렁했던 투표소…강남 강북 차이

24일 대부분의 투표장은 하루 종일 썰렁한 분위기였다. 휴일이 아니어서 대부분의 직장인이 출근을 마친 오전 9시 이후부터는 유권자들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투표장을 찾은 유권자들은 연령, 지역에 관계없이 대부분 전면 무상급식에 반대하는 시민들이었다. 그래서 주민들은 서로 ‘투표를 했느냐’고 묻는 것조차 꺼리는 분위기였다.

썰렁한 분위기는 강남보다 강북이 더 했다. 이날 낮 12시 20분 강북구 번2동 투표소에는 참관인 3명과 투표관리인 2명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유권자들은 10분에 한두 명씩 띄엄띄엄 찾아왔다. 종로구 교남동주민센터의 투표소 역시 상황은 비슷했다. 이 투표소의 김동수 관리위원장(60)은 “젊은 사람들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고 50∼70대 시민들만 투표하러 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에 강남지역에는 유권자들의 발길이 꾸준히 이어져 오전 한때 100m 이상 줄을 서는 곳도 있었다. 이날 오후 강남구 압구정동 투표장을 찾은 주부 한희정 씨(39)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단계적 무상급식안에 찬성한다”며 “복지 혜택을 지금보다 더 확대하는 것은 재정상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투표 방해에 대한 제보도 잇따랐다. 동대문구 이문2동 투표소에서는 투표 관계자들이 아침 식사를 한다는 이유로 자리를 비워 주민들이 출근 시간에 쫓겨 투표를 못하고 돌아갔다고 한다. 강동구 선사초등학교에서 투표를 했다는 한 시민은 “주차장을 통제하는 바람에 출근길에 투표하고 가려는 유권자들이 불편을 겪었다”고 했다.

○ 투표 거부 놓고 네탓 공방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민의 기본적인 권리이자 의무인 투표 자체를 거부한 것은 민주주의 역사에 오점을 남긴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서울 동작구 상도동 강남초등학교에서 투표를 마친 뒤 “투표는 국민의 의무이므로 해야 하는 것”이라며 “민주당에서 투표하지 말라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자유선진당 이회창 전 대표도 평화방송 라디오 인터뷰에서 “정당이 투표를 거부하도록 선전하는 것은 민주주의 원리에 반하는 것”이라며 “(투표를 통해) 결론도 못 내는 정치권에 대한 극심한 정치 혐오가 확산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강북구 삼양동 제4투표소에서 만난 직장인 맹금숙 씨(46·여)는 “주민투표 거부 운동에 염증을 느껴 투표소를 찾았다”고 강조했다.

또 투표율이 33.3%를 넘어야만 개표를 할 수 있도록 한 주민투표법 규정이 적절한지에 대한 논란이 제기됐다. 민주당은 이 조항에 근거해 ‘투표 거부는 정당한 권리’라는 논리를 제시했고 결국 ‘투표 참여=한나라당 지지’의 구도가 형성되면서 투표 결과보다 투표율 자체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는 기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

하지만 민주당은 “서울시가 투표를 통해서는 시민의 정확한 뜻을 파악할 수 없게끔 투표안을 교묘하게 변질시켜 투표 자체를 거부할 수밖에 없었다”고 항변했다.

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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