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관 미군기지 고엽제 파문]미군부대 담 너머로 ‘깜깜이 조사’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5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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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대 안 조사 동의없어… 담 따라 돌며 주변 살펴봐
■ 정부조사단 왜관 급파

“캠프 캐럴에서 뻗어 나온 배수로 가까운 곳에 하천이 흐르고 있어요. 이 일대 환경조사가 급합니다, 아주 급해요.” 20일 경북 칠곡군 왜관읍 미군기지 캠프 캐럴 주변을 답사한 정부 관계자의 말이다. 이 부대에서 근무했던 주한미군 3명이 이곳에 고엽제가 대량으로 묻혔다고 밝힌 가운데 정부는 이날 캠프 캐럴 주변에 대한 사전조사를 실시했다. 현장에는 환경부 토양지하수과, 국립환경과학원, 한국환경공단 관계자와 환경전문가 등 10여 명으로 구성된 정부조사단이 투입됐다.

○ 미군 부대 주변 점검으론 부족

이날 오후 1시경 캠프 캐럴 일대에 도착한 조사단은 급히 미군기지 주변의 환경상황, 지하수 흐름 등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부대 정문 앞에 있는 폭 3m가량의 실개천. 조사원들은 실개천이 오염으로 탁해지지 않았는지 유심히 살폈다. 킁킁대며 냄새를 맡기도 했다. 하천은 인근 동정천으로 흘러가 낙동강까지 이어졌다. 고엽제가 하천이나 지하수를 통해 부대로부터 약 2km 거리에 있는 낙동강 본류로 흘러들어가 식수원이 오염됐을 수도 있다는 것.

이날 조사단 조사는 부대 외곽 지역에 한정됐다. 미군 부대 안은 사전 동의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궁여지책으로 조사단은 45인승 버스로 약 10km의 군부대 둘레 담을 따라 돌면서 주변 야산과 논밭, 마을 규모를 파악했다. 고엽제의 영향으로 고사한 나무가 있는지도 살폈다.

조사가 진행될수록 “고엽제가 직접 묻힌 장소가 아닌 곳에서 오염 정도를 알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옥곤 부경대 환경대기학과 교수는 “부대 주변보다는 고엽제가 묻힌 곳을 중심으로 토양과 지하수 오염을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사단은 부대 후문을 지나 왜관읍 석전리에 있는 칠곡군교육문화복지회관 3층 옥상으로 올라갔다. 높은 곳에서 고엽제가 매립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부대 내 헬기장 주변을 관찰하기 위해서다. 옥상에 올라간 조사단은 조금이라도 부대 내부를 자세히 보려고 까치발을 세웠다. 미 부대원들이 콘크리트 덩어리 등 폐기물을 분주하게 옮기는 모습이 보였다.

○ 정밀조사는 한 달가량 필요

환경부는 이날 사전조사를 토대로 △부대 주변 환경조사 방법과 시기 △시료 채취 지역 선정 △미군 참여를 위한 범정부 대책 등에 대해 논의하기로 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부대 주변 환경 상황을 봤으니 곧 구체적인 조사 계획을 세울 예정”이라며 “해당 지역의 토양과 지하수 검사를 실시한 후 결과에 따라 인근 주민 건강도 조사도 할 것”이라고 말했다.

환경부와 지방자치단체 등에 따르면 캠프 캐럴 주변에 음용수로 사용되는 지하수 관정은 석전리 2곳, 매원리 3곳 등 총 5곳. 이 밖에 왜관리 석전리 매원리 등 3개 지역의 지하수 관정 48곳은 농업용수로 사용된다. 주민들이 고엽제가 스며든 지하수를 장기간 음용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경북도는 “음용수로 사용되는 지하수 관정을 중심으로 수질 오염도를 조사할 방침”이라며 “주한미군 대구기지사령부에 고엽제 관련 조사를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고 밝혔다. 환경부 관계자는 “일대 토양과 지하수를 채취한 후 정밀조사 과정을 거쳐 오염 여부를 파악하는 데는 한 달 정도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칠곡=장영훈 기자 jang@donga.com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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