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연구시설 직원들 ‘새우잠 크리스마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2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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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관령한우시험장 등서 격리된 채 ‘방역전쟁’
李대통령 “축산농가-관계관 최대한 지원” 지시

“크리스마스요? 전시 같은 상황에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한우 699마리를 키우며 ‘명품 한우’ 개량과 보전에 대한 연구를 하는 국립축산과학원 대관령한우시험장. 25일 오후 8시경 전화로 들리는 홍성구 장장의 목소리는 지쳤지만 차분했다. 강원 평창군 대관령면에 있는 시험장은 21일 강원도에서 첫 구제역 의심 신고가 접수된 이후 외부인은 물론이고 전 직원의 출입이 금지된 상황. 출입금지 조치 5일째 시험장에서 맞은 크리스마스는 이곳에 남아 있는 직원 53명에겐 하루 종일 방역에 몰두했던 평범한 날이었다.

직원들은 24일 저녁 치킨을 시켜 먹었다. 식사도 시험장 내에 있던 밑반찬과 식재료만으로 해결했다. 그동안 외부에서 들여온 것이 의약품 정도였음을 감안하면 치킨 반입은 ‘대단한’ 시도였다. 물론 치킨은 시험장 밖에서 출입 통제와 방역 작업 중인 직원들의 철저한 관리 아래 옮겨졌다.

“지난달 29일 경북 안동에서 구제역이 처음 발생한 직후부터 비상 체제였어요. 직원 대부분 그때부터 집에 다녀오는 것을 자제시켰죠.” 직원들은 한 달 가까이 가족 얼굴도 보지 못한 셈. 구제역이 잠잠해질 때까지 이 체제 유지가 불가피하다.

칡소 60마리를 포함해 한우 480여 마리가 있는 횡성군 둔내면 강원도축산기술연구센터도 사정은 마찬가지. 21일부터 외부와 차단된 직원 27명의 크리스마스 식단은 배춧국이었다. 25일 오후 9시경 통화가 이뤄진 최억길 소장은 직원들과 회의 중이었다.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이라 크리스마스를 생각할 만한 여유가 없습니다.”

센터에는 정식 숙소가 없어 직원들은 축사 내에 있는 관리실과 숙직실에서 새우잠을 자고 있다. 정식 조리사도 없는 터라 직원들이 교대로 식사 당번을 맡고 있다.

한편 이명박 대통령은 “축산농가와 관계관을 최대한 지원하라”고 임태희 대통령실장에게 지시했다고 홍상표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이 26일 밝혔다. 이 대통령은 25일 임 실장을 경기도 제2청사 구제역 상황실에 보내 “혹한의 추위 속에서 방역활동에 여념이 없는 축산농가와 수의사들, 관련 공직자들의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생에 대해 격려와 위로를 보낸다”는 뜻을 전했다. 농식품부 업무보고 장소도 청와대에서 정부과천청사로 바꾸기로 했다.

춘천=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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