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혐의로 온두라스서 가택연금된 한지수 씨 1심서 무죄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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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0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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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꾼서 대통령까지… 응원 덕에 버텼죠”

온두라스 현지 한인교회에 가택연금돼 있는 한지수 씨(왼쪽)가 지난달 이 교회를 방문한 원종온 주온두라스 대사(가운데)등에게서 의약품과 생필품을 전달받고 있다.(사진 제공 외교통상부)
온두라스 현지 한인교회에 가택연금돼 있는 한지수 씨(왼쪽)가 지난달 이 교회를 방문한 원종온 주온두라스 대사(가운데)등에게서 의약품과 생필품을 전달받고 있다.(사진 제공 외교통상부)
17일 국제전화로 들려오는 한지수 씨(27)의 잠긴 목소리는 힘이 없었다. 원래는 목소리가 크고 씩씩했다고 했다. 그가 그토록 바라던 무죄 선고를 받았지만 1년 넘게 온두라스에서 겪은 고통이 커보였다.

온두라스에서 살인 혐의로 가택연금 중인 한 씨가 17일 오전 1시(현지 시간 16일 오전 10시)경 로아탄 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재판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다. 외교통상부 당국자는 “선고의 공식 공표는 다음 달 5일이고 그로부터 20일 이내에 검찰이 대법원에 항소하지 않으면 원심이 확정된다. 검찰이 대법원에 항소하지 않을 것으로 보여 사실상 무죄가 확정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한 씨와 연락이 닿은 건 재판이 열린 날 오후 10시(현지 시간)를 넘긴 시간이었다. 법원에서 비행기를 타고 연금 장소인 산페드로술라의 한인교회로 돌아와 휴식을 취하던 한 씨에게 늦은 시간에 전화한 것에 대해 양해를 구했다. 한 씨는 “몹시 피곤한 상태이지만 사건 초기 제 상황을 알려준 동아일보에 감사한다”며 기꺼이 통화에 응했다.

▶본보 2009년 10월 2일자 A13면
20대 한국여성, 온두라스 감옥에

▶본보 2009년 12월 16일자 A12면 참조
“고국 성원으로 풀려났어요”


재판 결과를 물었다. “판사 3명이 모두 무죄를 선고하고 온두라스 검찰의 불충분한 수사를 지적했습니다. 검찰의 살인 주장 근거가 충분치 않고 현장에서 샘플 채집 등도 절차를 제대로 따르지 않아 수사상의 허점이 많기 때문에 유죄를 확정할 근거가 없다는 것이었어요.” 이날 재판에서는 무죄를 주장한 한 씨 측의 주장이 모두 받아들여졌다고 한다.

한 씨는 2009년 8월 이집트 공항에서 인터폴에 체포됐다. 온두라스에서 사망한 네덜란드인 여성을 살해한 혐의를 받았다. 그는 온두라스로 이송돼 감옥에 수감됐다.

“그때 일을 뭐라고 말해야 할지….” 한 씨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누구에게서도 당시 상황이 어떤지 제대로 듣지 못해 막막함보다 공포감이 컸다고 했다. “아버지의 면회만 간절히 바랐습니다. 억지로 희망을 가졌지만 상황은 절망적이었어요.”

한 씨의 체포 및 수감 사실을 처음 국내에 알린 본보 2009년 10월 2일자 A13면 기사.
한 씨의 체포 및 수감 사실을 처음 국내에 알린 본보 2009년 10월 2일자 A13면 기사.
한 씨는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건 내가 하지 않은 일로 붙잡힌 상황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런 그가 버틸 수 있었던 힘은 가족과 지인들, 그리고 생면부지의 한국인들이었다. “인터넷 트위터와 구명카페 등을 통해 응원 메시지를 보내주셨고 모금활동이 이어졌습니다. 단발성에 그칠 줄 알았지만 아니었습니다. 김주하 MBC 앵커는 올해 초부터 트위터에 수요일마다 ‘한지수요일(한지수와 수요일을 합친 말)입니다’라며 여론을 환기시켜줬죠. 제가 가장 두려웠던 건 유죄선고를 받는 것인데 설사 그렇다 해도 제게 관심을 준 분들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라는 든든함이 생겼습니다.”

현지에 파견된 한국 국립과학수사연구원 팀이 온두라스 검찰의 부검 결과가 부적절하다는 것을 제기한 점도 무죄 판결에 기여했다. 한 씨는 “재판이 온두라스 관례보다 일찍 열린 것도 외교부가 노력해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기대와 절망이 교차하던 한 씨가 작으나마 희망을 갖게 된 것은 올해 6월 이명박 대통령과 포르피리오 로보 온두라스 대통령의 정상회담 때였다. “수감 이후 제 마음은 ‘기대를 가지면 실망이 크다’는 쪽이었습니다. 다만 이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제 얘기를 하셨다는 얘기를 듣고 제가 우려하는 이상한 결과로 가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무죄 선고가 확정되는 즉시 한국으로 돌아오겠다고 했다. 해외여행을 즐기는 젊은이들에게도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내가 운이 안 좋았지만 이런 일은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지의 치안이나 정치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무작정 떠나면 자기도 모르게 위험한 상황에 연루돼 당할 수 있습니다.”

그는 “빨리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1년간 암흑 속에 멈춰 있었다”며 “이 일을 통해 전해줄 교훈이 있을 것이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고 싶다”고 말했다.

▼“피살자 부검보고서 바뀐뒤 살해용의자로 몰려”▼
■ 한 씨가 말하는 사건 전말


4개월간 수감됐다가 가석방으로 풀려난 한 씨의 소감을 전한 본보 2009년 12월 16일자 A12면 기사.
4개월간 수감됐다가 가석방으로 풀려난 한 씨의 소감을 전한 본보 2009년 12월 16일자 A12면 기사.
2008년 8월 한지수 씨는 스킨스쿠버 다이빙 자격증을 따기 위해 온두라스에 머물고 있었다. 한 씨는 이중국적(영국과 호주)을 가진 다이빙 강사 대니얼 로스 씨의 집에 방을 얻어 살았다. 한 씨가 그해 8월 22일 바에서 술을 마시고 있을 때 로스 씨가 네덜란드 여성인 마리스카 마스트 씨와 함께 바에 와 술을 마셨다. 한 씨는 먼저 집에 돌아와 잠들었다.

한 씨에 따르면 다음 날 새벽 ‘우당탕’ 하는 소리에 깼더니 맞은편 방문에 로스 씨가 서 있었고 방 사이에 있는 화장실 문이 열리자 마스트 씨가 앞으로 쓰러졌다. 마스트 씨가 정신을 차린 뒤 로스 씨는 한 씨에게 들어가 쉬라고 했다. 그날 오전 6시경 마스트 씨는 로스 씨 방의 침대에서 벌거벗은 채로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고 한 씨는 로스 씨의 요청으로 주변에 도움을 청했다고 한다. 그날 오전 마스트 씨가 죽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로스 씨는 수감됐다가 풀려난 뒤 행방이 묘연해졌다. 한 씨는 약 1개월 뒤 다이빙 강사 시험을 치르고 미국을 거쳐 한국에 돌아왔다가 다이빙 강사를 하기 위해 이집트로 갔다. 2009년 8월 27일 한 씨는 이집트 공항에서 인터폴에 체포됐고 온두라스로 이송된 뒤 9월 23일 살인 혐의로 수감됐다. 12월 가석방돼 온두라스 산페드로술라의 한인교회에서 가택연금 상태로 지내왔다.

한 씨에 따르면 원래 부검보고서는 마스트 씨의 사망 원인을 뇌가 부풀었기 때문이라고 봤지만 나중에 만들어진 보고서는 마스트 씨의 목이 졸렸고 거기엔 2명이 참여했을 것이라는 내용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사실상 로스 씨와 한 씨를 용의자로 지목한 것이다. 한 씨는 “네덜란드 언론사 기자로부터 ‘로스 씨가 호주에 머물고 있고 거주지가 파악됐지만 호주와 온두라스 사이에 범죄인인도협정이 없어 데려오지 못한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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