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청각장애 날치기범의 반성문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0월 11일 03시 00분


“청각·언어장애인 날치기단 뉴스가 나올 때마다 청각장애인 학교 학생들이 그렇게 기가 죽는대요. 지하철에서 수화를 쓰면 사람들이 힐끔힐끔 쳐다보면서 가방을 뒤로 숨긴다더라고요. 나 같은 선배들 때문에 상처받았을 것을 생각하면 정말 미안하고, 반성하게 됩니다.”

청각장애 3급으로 6년 전만 해도 청각장애인 날치기단에서 일했던 박순철(가명·34) 씨는 올해 1월 발생한 서울 강남고속버스터미널 앞 1억 원 날치기 사건이 청각장애인들의 범행이 아닌 것으로 10일 밝혀지자 어두운 세계에서 빠져나오길 잘했다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는 날치기단에서 오토바이를 운전하는 ‘포수’로 활동했다. 시속 200km로 질주하는 그의 오토바이 실력은 수도권 일대 청각장애인 날치기 조직들이 탐내는 ‘스카우트’ 대상이었다. 4세 때 홍역으로 청각을 잃은 박 씨는 중학생 때 오토바이를 처음 접했다. 어머니가 운영하던 식당 오토바이를 몰래 타는 재미에 푹 빠진 것. 그러던 중 친구가 오토바이를 소매치기에 이용하는 방법을 보여줬다. “오토바이를 함께 타고 달리던 친구가 갑자기 팔을 뻗어 길에 서있던 사람의 가방을 낚아채더라고요.” 당시 17세였던 그는 너무 놀란 나머지 길거리에서 울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청각장애인 학교를 졸업하고 상경한 박 씨는 제과업체에 다니며 오토바이 레이서를 꿈꿨다. 남들보다 배로 연습했지만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번번이 대회 참가를 거절당했다. 실의에 빠져 지내던 그에게 유혹의 손길이 다가왔다. 1997년 서울의 한 청각장애인 쉼터에서 만난 ‘찍새’(범행 대상을 물색하는 역할)가 박 씨의 오토바이 실력 소문을 듣고 같이 일해 보자고 제안한 것. 그렇게 청각장애인 날치기 조직의 일원이 됐다. 박 씨는 1999년 강원지역의 한 은행 앞에서 날치기를 하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2002년 출소 후에도 날치기를 끊지 못해 한 차례 더 교도소에 갔다가 2005년 사회로 나왔다. 박 씨가 정말 날치기에서 손을 떼야겠다고 다짐한 계기는 남동생의 눈물이었다.

박 씨의 동생도 홍역을 앓아 청각을 잃었다. “동생은 착실하게 살아왔어요. 그런 동생이 저를 찾아와 무릎을 꿇고 빌더라고요. 형 같은 날치기꾼 때문에 나같이 열심히 살려는 청각장애인들이 손가락질 당하는 게 싫다면서요.” 동생의 절절한 호소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박 씨는 공사장에서 건물 해체작업 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하루 종일 일하면 11만 원을 벌 수 있다. 한 번 날치기로 200만 원을 벌던 것과는 비교가 안 되지만 그는 동생에게, 청각장애인 후배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형, 선배가 되고 싶다고 했다.

강경석 기자 cool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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