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여간첩, 서울메트로 간부 포섭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5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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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시 대비용 지하철기밀 빼돌려

中서 인터넷 채팅통해 접근
탈북 위장 국내 잠입 또 적발

인터넷 채팅에서 만난 공기업 간부로부터 서울지하철 관련 정보를 빼내 북한에 보고해 온 여간첩이 공안당국에 적발됐다. 공안당국은 탈북자로 위장해 국내에 잠입한 이 여간첩이 북한에 보낸 정보가 올 11월 서울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지하철 테러에 이용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국가정보원과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부장 이진한)는 서울지하철 1∼4호선의 위기대응 매뉴얼 등 내부정보를 빼내 북한에 보고한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북한 국가안전보위부 소속 공작원 김모 씨(36)와 전직 서울메트로 과장급 간부 오모 씨(52)를 구속했다고 23일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김 씨는 2006년 2월 중국 후난(湖南) 성 장자제(張家界)에서 호텔 경리직원 등으로 일하면서 인터넷 채팅을 통해 오 씨를 만난 뒤 같은 해 5월 자신의 권유로 중국에 여행을 온 오 씨와 연인 관계로 발전해 동거했다. 이후 김 씨는 오 씨에게 퇴직 후 중국에서 여행사를 차려 동업을 하자고 제안했다. 이 과정에서 자신이 북한 공작원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사업을 하려면 북한의 협조가 필요하다”며 서울메트로의 내부기밀을 빼내줄 것을 요청했다.

오 씨는 2007년 6∼10월 서울메트로 종합관제소 컴퓨터에 저장된 종합사령실 비상연락망, 승무원 근무표, 위기상황 발생 시 대응방안 등 300여 쪽에 이르는 대외비 문건을 USB 메모리에 담아 김 씨에게 넘겼다.

김 씨는 여행사 관계자 장모 씨(45)와 조모 씨(44)에게서는 중국 여행객에 포함된 경찰 등 공무원 명단을, 한 음란 화상채팅 사이트에서 만난 대학생 이모 씨(29)에게서는 국내 주요 대학의 현황을 각각 넘겨받아 북한에 보고한 것으로 조사됐다.

김 씨는 지난해 3월 보위부에서 “탈북자로 위장해 한국에 들어가 고정간첩과 접선하라”는 지령을 받고 같은 해 9월 라오스를 통해 국내로 잠입했다. 공안당국은 탈북자 합동신문 과정에서 수상한 점을 발견하고 국내 간첩망과 접선 경로를 확인하기 위해 일단 김 씨를 풀어줬다가 김 씨가 제3국으로 출국하려 하자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김 씨 등을 20일 검거했다.

김 씨는 1997년 조선노동당 당원증을 분실한 뒤 “보위부에 들어가면 처벌을 면할 수 있다”는 제안을 받고 공작원이 됐다. 검찰은 김 씨가 이후 13년간 중국을 드나들며 한중(韓中) 관계에 대한 첩보수집 및 마약밀매에 관여했다가 중국 공안당국에 체포돼 세 차례 북송됐던 점에 주목해 여죄가 있는지 추궁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서울메트로 대외비 자료는 지하철 테러를 계획하는 세력에 악용될 가능성이 높아 수사 대상을 넓히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성철 기자 daw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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