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 한달 앞두고 참변… “파도높아 휴가 못나온다더니…”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3월 29일 03시 00분


실종자 애끊는 사연
마지막 훈련 이상희 병장
‘꿈자리 뒤숭숭’ 사고당일 전화
매일 전화통화 김동진 하사
사고날 “엄마, 안녕히 계세요”

국방장관에 항의하는 가족 실종자 가족이 머물고 있는 경기 평택 해군 제2함대사령부 내 강당에 28일 오후 5시경 김태영 국방부 장관(오른쪽)이 찾아와 구조 진행상황을 설명하자 실종자 가족들이 신속한 수색구조를 촉구하며 오열하고 있다. 평택=이훈구 기자
국방장관에 항의하는 가족 실종자 가족이 머물고 있는 경기 평택 해군 제2함대사령부 내 강당에 28일 오후 5시경 김태영 국방부 장관(오른쪽)이 찾아와 구조 진행상황을 설명하자 실종자 가족들이 신속한 수색구조를 촉구하며 오열하고 있다. 평택=이훈구 기자
“말년 휴가만 제때 나왔더라면….”

4월 말 전역을 앞두고 26일 실종된 이용상 병장(22)의 아버지 이인옥 씨(48)는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원래대로라면 말년 휴가를 나와 있어야 할 아들이 차디찬 바닷속에 갇혀 생사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해군 초계함 천안함 침몰사고 실종자 가운데 이 병장처럼 제대를 얼마 남겨놓지 않은 병장이 6명이나 포함돼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이들은 해군 병 542기 4명과 544기 1명, 545기 1명으로 각각 4월 말, 6월과 7월 말 제대를 앞두고 있었다. 이 병장의 아버지 이 씨는 “25일 아들과 마지막 통화를 나눴는데 풍랑 때문에 휴가자가 탈 수 있는 작은 배가 출항하지 않아 휴가를 나갈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며 “당시 함장인 최원일 중령과도 통화했는데 ‘상황이 좋지 못하니 이해해 달라’고 했다. 원래대로라면 휴가를 나와 있어야 하는데…”라며 울먹였다.

일식요리사 자격증을 따겠다는 꿈에 부풀어 전역 후 일본 연수를 계획하고 있던 이상희 병장(23)도 실종된 상태다. 이 병장은 며칠 전 ‘마지막 훈련’임을 강조하며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이 병장의 사촌누나인 이슬기 씨(26)는 “상희가 2, 3일 전 마지막 훈련을 나가며 삼촌(이 병장의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와 ‘막내동생 이가 깨지는 꿈을 꿨는데 별일 없느냐’고 해서 삼촌이 ‘아무 일 없으니 훈련 잘 받고 오라’고 했지만 사고가 난 날 오전에 다시 ‘꿈자리가 뒤숭숭하다’고 전화를 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생겼다”며 믿을 수 없어 했다.

전역을 한 달 앞두고 실종된 이상민 병장(22)의 싸이월드 미니홈피에는 지인들의 글이 쇄도했다. 한 지인은 스킨스쿠버 자격증이 있는 이 병장에게 “빨리 살아나오라”고 간절한 소망을 적었다.

이름이 같은 또 다른 이상민 병장(21)은 6월 제대를 앞두고 있었다. 27일 평택 제2함대사령부에 도착한 여자친구 김모 씨(22)는 지난해 12월 이 병장의 생일 때 부대원들이 준 롤링페이퍼를 받아 보며 오열했다. 김 씨는 “지난해에는 생일을 같이 못 보냈는데 올해는 제대하면 같이 보낼 수 있겠다고 좋아했다”며 해군 관계자에게 “머물렀던 곳이라도 볼 수 있게 해 달라”고 애원하기도 했다. 배에서 생활해 다른 유품이 없다는 해군 관계자의 말에 김 씨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이들 외에도 실종자들의 안타까운 사연은 끊이지 않았다. 실종된 정종율 중사(35)의 장인 정규태 씨(66)는 결혼 8년째로 여섯 살 난 외아들을 둔 사위의 실종 소식이 믿기지 않는 듯 한동안 말문을 열지 못했다. 정 씨는 “딸이 남편을 놓아줄 수 없다고 오열하다 결국 실신해 병원에 실려갔다”면서 “고교 미팅 때 만나 15년 가까이 사이좋게 지내 ‘잉꼬 부부’라고 불렸다”며 말끝을 흐렸다.

김동진 하사(20)의 어머니는 아들의 사진을 품에 안고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그는 “매일 전화를 걸어 ‘엄마 사랑해요’라고 말한 뒤 전화를 끊었는데 사고가 난 날에는 ‘엄마, 안녕히 계세요’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런 것 아니겠느냐”며 오열했다.

평택=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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