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남양주시의 한 초등학교 4학년 김모 양(10)의 휴대전화엔 아이돌 그룹 ‘빅뱅’의 사진만 100여 개가 담겨 있다. 김 양은 매일 빅뱅 사진 5, 6장을 인터넷에서 새롭게 내려 받고 이튿날이면 친구들에게 나눠주길 반복한다. 이젠 같은 반 ‘단골손님’만 네 명. 휴대전화가 없던 5개월 전까지만 해도 단짝 친구를 제외하곤 김 양이 빅뱅의 팬인 사실을 아는 친구는 없었다. 반에선 쉬는 시간마다 연예인 사진과 만화 주인공의 이미지, 멋진 글귀, 인터넷 ‘얼짱’의 모습을 휴대전화 바탕화면으로 주고받는데, 그동안 휴대전화가 없었던 김 양은 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빅뱅을 좋아하는 친구 다섯 명이 각자 좋아하는 빅뱅 멤버의 사진을 출력해 공책에 붙이고 다니는 모습을 보고 부럽다고 생각했어요. 이젠 저도 친구들과 함께 빅뱅 달력과 다이어리를 구입하죠.”(김 양)
요즘 초등학교 고학년 교실에선 휴대전화가 없는 학생을 찾기가 더 힘들다. 휴대전화를 가진 초등학생이 늘면서 휴대전화는 이제 문자를 주고받거나 게임을 하거나 사진을 찍는 수단을 넘어 교우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필수 아이템이다.
경기 부천시의 한 초등학교 5학년 한모 양(11)은 학교수업이 끝나면 영어회화학원, 수학보습학원에서 두 시간씩 수강하고 오후 9시 반에야 귀가한다. 이러다 보니 주중엔 학교친구들의 놀이모임에도 끼지 못한다. 친구와 소통할 통로는 휴대전화뿐이다.
“학원 쉬는 시간에도, 집에 돌아와 드라마를 볼 때도 친구들에게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내요. TV 드라마 ‘아이리스’를 보다가 멋진 장면이 나오면 사진으로 화면을 찍어서 친구한테 보내요. 엄마에게 혼이 나 스트레스를 받았을 땐 친구에게 문자메시지로 고민을 털어놓아요.”(한 양)
일부 학생은 친구에게 ‘기프티콘’(휴대전화로 표시되는 상품권)을 보내 친구와 멀어질 위기를 피하기도 한다.
서울 송파구의 한 초등학교 2학년 오모 양(8)은 학원 스케줄 탓에 친구의 생일파티에 참석하지 못할 땐 영화를 관람하거나 케이크를 살 수 있는 기프티콘을 휴대전화로 보내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 친구끼리 빼빼로(과자의 일종)를 주고받으며 우정을 다짐하는 ‘빼빼로 데이’엔 빼빼로를 구입할 수 있는 기프티콘을 보내고, 약속시간에 당도하지 못했을 땐 이튿날 이온음료나 탄산음료의 기프티콘을 선물한다.
외국유학을 떠나거나 유학으로 절친(절친한 친구)을 떠나보내야 하는 학생들에게 휴대전화는 친구와 소통하거나 친구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는 소중한 통로다.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 5학년 최모 양(11)은 지난해 같은 반이었던 이모 양(11)이 유학 차 중국으로 떠나는 바람에 ‘생이별’을 해야 했다. 이 양이 중국으로 떠나기 전날 밤 둘은 영상통화를 하며 아쉬움을 달랬다. 최 양은 이 영상통화 내용은 고스란히 휴대전화로 녹화해 저장한 뒤 친구가 보고플 때면 수시로 들여다본다.
“현지인들과 말이 통하지 않아 외롭다거나 중국 음식을 먹고 탈이 나 아프다는 문자가 가끔 와요. 하지만 어머니가 시험기간엔 휴대전화 사용을 못하게 해 답장을 못했어요.”(최 양)
휴대전화는 학급임원이 되는 데도 효과적인 ‘유세’의 통로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5학년 권모 군(11)은 학기 초 치러진 반장선거 하루 전 평소 절친한 반 친구들을 골라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자신의 공약을 알렸다. 선생님이 선거운동을 공개적으로 펼치는 행위를 금지하는 바람에 문자메시지를 통해 ‘물밑작업’을 한 것. 권 군은 ‘‘놀토’(수업이 없는 토요일)가 아닌 토요일엔 매번 치킨과 피자를 쏘겠다’ ‘다른 반 선생님들에게 꾸중 받지 않는 반을 만들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하지만 결과는 반 정원 29명 중 3표를 얻어 참패. 휴대전화를 내밀하게 사용하려다 친구들에게 오히려 ‘부정을 저지르는 후보’라는 고정관념만 심어준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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