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걱정말고 소말리아 바다 지켜 군인의 길 군인답게 가거라”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2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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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투병 사망 군무원 출신 이석우씨, 청해부대 아들에 ‘마지막 동영상 편지’
“파병중 돌아오는 일 없게 내 죽음 알리지말라” 유언
동영상-부고 함께 받은 아들 “뜻 받들어 귀국않고 임무수행”

“아빠와 네가 혼연일체가 돼 아빠는 아빠 몸을 지키고, 너는 소말리아 해역을 지켜서 우리나라의 힘을 세계만방에 보여 다오. 자랑스럽다 내 아들, 이환욱 파이팅, 아빠도 엄마도 파이팅.”

아프리카 소말리아 해적 퇴치 및 선박 보호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해군 청해부대 3진 충무공 이순신함을 타고 망망대해를 항해하던 이환욱 하사(21)는 14일 아버지가 보낸 동영상 메시지를 받았다. 1년 5개월째 췌장암과 싸우고 있던 아버지 이석우 씨(51·사진)가 어머니 강영자 씨(47)와 함께 촬영한 ‘응원’ 동영상이었다.

그러나 동영상과 함께 전달된 통신문에는 아버지의 부고가 담겨 있었다. 아버지는 지난달 20일 출항한 아들을 그리워하며 이달 2일 동영상을 찍었다. 그 뒤 갑자기 병세가 악화돼 13일 숨을 거뒀다.

한 손에는 아버지의 부고를, 다른 한 손에는 아버지의 격려 메시지가 담긴 동영상을 받아든 이 하사는 하염없이 눈물을 쏟았다. 동영상에 등장한 아버지는 장기간 투병생활로 몹시 여위어 보였다. 비록 목소리에 힘은 없었지만 아들에 대한 사랑은 건강했을 때보다 더 깊어졌음을 이 하사는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이환욱 하사
이환욱 하사
동영상을 찍을 때만 해도 아들에게 보내는 마지막 메시지가 될 줄 몰랐을 아버지는 “아들 사랑해요. 많이많이. 사실 너보다 엄마를 더 사랑하지만 오늘은 너를 더 사랑한다고 해야 되겠지. 그리고 무사히 소말리아 해역에 도착해 본연의 임무를 다하기를 아빠는 기원하고 기도할게”라고 말했다. ‘1분 31초’의 짧은 동영상이 아버지가 아들에게 남긴 마지막 당부였다.

함께 전달된 아버지의 유언을 전해 듣고 이 하사는 더욱 서럽게 울었다. 이 씨는 눈을 감기 직전 “청해부대원으로 해외 파병된 환욱이는 국가에서 부여한 임무를 수행 중이니 (나의) 사망 소식을 알리지 말라. 행여 알게 되더라도 공무가 더 중요하니 장례식에는 참석하지 못하게 하라”고 유언을 남겼다. 부인 강 씨는 동영상을 부대에 전달하면서 아들에게는 아버지 타계 소식을 전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부대에서는 “도리가 아니다”라며 모든 사실을 이 하사에게 알렸고, 청해부대장은 이 하사에게 귀국할 것을 명령했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인가. 이 하사는 아버지의 유지를 받든다며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고 그대로 배를 지켰다. 이 하사는 20일 기자들과의 위성전화 통화에서 “장남으로서 장례식에 가는 것이 도리이지만 아버지의 바람대로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것이 더 큰 효도라고 생각했다”면서 “슬프고 섭섭하지만 임무를 완수해 아버지께 부끄럽지 않은 아들이 되겠다”고 말했다. 그는 “아버지는 제가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분”이라며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위해 살고, 개인보다는 국가와 조직을 먼저 생각하면서, 군인의 길을 군인답게 가라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잊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충무공 이순신함은 21일 소말리아 해역에 도착해 장보고함과 임무 교대를 한다.

어릴 적부터 봉사하는 삶을 꿈꿔온 이 하사는 부산 동의대 사회복지학과를 다니다 아버지가 암으로 지난해 7월 휴직하자 고교생인 동생 학비와 아버지 병원비 걱정에 스스로 해군 부사관에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버지 이 씨는 18년간 해군 정비창 군무원으로 함포 등 해군 무기체계를 정비해 왔다.

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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