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 2명 “이건 재판이 아니다” 퇴정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0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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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끄러웠던 법정
“정권 나팔수냐” 방청객 고함, 소란 계속되자 1명 감치
檢“공소 사실 대체로 인정”
변호인 “재판부 정치적 판단”

28일 오후 2시 서울중앙지법 311호 중법정. 서울 용산 참사 희생자와 피고인 가족, 전국철거민연합 회원 등 200여 명으로 방청석은 빽빽이 들어찼다. 법정 안은 숨소리조차 크게 들릴 만큼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재판장인 형사합의27부 한양석 부장판사가 판결문을 한 줄 한 줄 읽어 내려갈 때마다 나직한 한숨소리가 새어나왔고, 20대로 보이는 한 여성은 연신 흘러내리는 눈물을 옷소매로 훔쳤다.

재판장이 “피고인들이 던진 화염병 때문에 불이 붙었고 경찰관 10여 명이 죽거나 다쳤다”며 유죄를 인정하자 피고인석에 앉아 있던 이충연 용산철거민대책위원장 등 2명이 갑자기 일어나 “이건 재판이 아니야!”라고 소리치며 법정 가운데로 뛰쳐나왔다. 이 씨 등이 법정 경위들과 몸싸움을 벌이자 재판장은 “재판을 거부하려면 나가도 좋다”며 퇴정을 허락한 뒤 궐석 상태에서 형을 선고했다. 앞서 피고인 측의 김형태 변호사도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퇴정해버렸다.

이어 재판장이 “경찰이 과잉 진압을 했다고 볼 수 없다”고 밝히자 방청석에서는 “정권의 나팔수” “법치국가는 죽었다”는 등의 고함과 욕설이 쏟아졌다. 일부 방청객이 밖으로 나가고도 소란이 계속되자 재판장은 계속 소리를 지르던 중년 남성 1명을 감치(監置)했다.

대부분의 피고인에게 중형이 선고되고,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던 피고인 2명이 법정 구속되자 법정은 울음바다로 변했다. 일부 방청객은 재판이 끝난 뒤에도 법정에 남아 고함을 질렀다. 일부 희생자 유가족은 법정을 나와 2층으로 내려오는 계단에 주저앉아 “어떻게 이런 판결을 내릴 수 있느냐”며 울음을 터뜨렸다.

재판이 끝난 직후 이들은 법원 2층 로비에 ‘철거민은 무죄다’라는 대형 현수막을 펼쳐놓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이수호 용산철거민참사범국민대책위원회 공동대표는 “경찰이 과잉진압만 하지 않았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사고”라며 “과잉진압을 합법화한 판결이 나왔으니 경찰이 더 날뛸 것”이라고 말했다.

피고인들의 변호를 맡은 김형태 변호사는 “적어도 화염병으로 불을 내 경찰관을 죽였다는 부분은 무죄가 나올 줄 알았는데 완전히 정치적인 판결이 내려졌다”며 “20년이 지나 재심을 청구하면 그땐 무죄가 나올 것으로 확신한다”고 밝혔다. 피고인 측은 즉시 항소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피고인 측의 거듭되는 수사기록 공개요구와 재판 파행으로 어려움을 겪던 검찰은 공소사실이 대부분 인정되자 안도하는 분위기였다. 검찰이 기소한 9명 모두 유죄가 인정됐고 공소사실 가운데 일부 무죄가 난 부분도 없었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검찰의 공소사실이 대체로 인정됐다”며 “판결문을 분석한 뒤 항소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법원은 재판 중 소란이 벌어질 것에 대비해 법정에 20여 명의 직원을 배치하고 법원 주위에도 120여 명의 경찰이 동원됐다. 이날 판결은 피고인들의 구속기간 만료일을 하루 앞두고 내려졌고, 첫 공판(4월 22일) 이후 6개월이 걸렸다.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
최우열 기자 dns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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