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익 007 커닝’ 400점이 900점으로

  • 입력 2009년 6월 24일 02시 59분


무전기 벨소리로 답 받아 고성능 이어폰으로 재전송…
주범2명 수험생 28명 적발

항공 승무원을 꿈꾸던 취업준비생 이모 씨(23). 무엇 하나 빠지는 게 없었지만 토익 점수가 문제였다. 인터넷 취업 정보 사이트에서 “토익 점수를 900점으로 올려준다”는 광고를 본 이 씨는 300만 원을 내고 토익 부정행위에 발을 담갔다.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토익 문제의 답을 실시간으로 전송받아 시험을 치렀고 점수는 단숨에 400점에서 900점으로 뛰었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23일 휴대전화와 무전통신기 등을 이용해 토익시험 부정행위를 저지른 혐의로 김모 씨(42)와 박모 씨(31)를 구속하고 수험생 이 씨 등 28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김 씨와 박 씨는 교도소에서 만난 사이. 2006년 토익 부정행위를 저질러 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김 씨는 그곳에서 27년간의 미국 생활로 영어에 능통한 박 씨를 만나 범죄를 공모했다.

이들의 수법은 치밀했다. 박 씨가 시험장에서 문제를 푼 뒤 길이 3cm인 차량 리모컨 크기의 무전기를 손에 쥐고 벨을 눌러 김 씨에게 답을 알려줬다. 김 씨는 고사장에서 70m 이내에 주차된 차량에 대기하며 “뚜 뚜뚜” 신호의 답을 받아 적었다. 한 번 진동이 울리면 a, 두 번 울리면 b가 답이라는 뜻이다.

김 씨는 수험생들에게 답을 전송했다. 같은 고사장에서 시험을 치르는 이들에게는 전파 무전기를, 다른 고사장 수험생에게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이용했다. 수험생은 특별히 개조한 목걸이형 안테나를 목에 두르고 쉽게 보이지 않는 고성능 이어폰을 통해 답안을 들었다. 한 수험생은 팔에 가짜 깁스를 한 뒤 석고 안을 파내고 그곳에 휴대전화를 숨겨 부정행위를 저지르기도 했다. 들통 나지 않기 위해 철저히 사전훈련을 한 것은 기본이었다.

경찰 조사 결과 김 씨 등은 2∼5월 실시된 토익시험에서 답을 알려주는 대가로 한 명당 200만∼300만 원의 사례비를 받아 모두 5000만 원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신민기 기자 mink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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