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산사엔 올해도 꽃이 피었습니다

  • 입력 2009년 6월 9일 02시 54분


화마에 휩싸였던 낙산사가 천년 고찰의 모습을 되찾고 있다. 2005년 4월 5일 불에 탄 범종각(왼쪽)은 완전히 복원됐다. 소실된 동종과 같은 크기, 모양의 동종이 범종각에 안치돼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오른쪽). 동아일보 자료 사진·양양=이인모 기자
화마에 휩싸였던 낙산사가 천년 고찰의 모습을 되찾고 있다. 2005년 4월 5일 불에 탄 범종각(왼쪽)은 완전히 복원됐다. 소실된 동종과 같은 크기, 모양의 동종이 범종각에 안치돼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오른쪽). 동아일보 자료 사진·양양=이인모 기자
300억 들여 80% 복원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불경 소리와 수학여행 온 여고생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경내에 어우러졌다. 주위 산자락엔 소나무들이 초록빛을 뽐내고 그 사이로 울긋불긋한 꽃들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5일 찾은 강원 양양군 강현면 낙산사는 너무나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단지 수풀 사이사이로 눈에 띄는 검게 그을린 나무 밑동만이 화마(火魔)가 덮친 4년 전의 참상을 알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그 검은 밑동 옆에도 새로 돋아난 풀과 꽃들이 가득했다. 자연 속에서 절망과 희망이 공존하는 모습이다.

2005년 4월 5일 초속 15m가 넘는 강풍을 타고 날아온 불씨는 양양군의 천년고찰 낙산사를 덮쳤다. 순식간에 건물 16채가 소실됐고 아름드리 소나무로 울창했던 숲은 잿더미로 변했다. 낮은 지대에 있던 보타전과 해안 쪽의 홍련암 등 일부 건물만이 무사했다. 6·25전쟁 때 소실됐다가 1953년 다시 지은 지 52년 만의 참화였다.

그로부터 4년여가 흐른 지금 낙산사엔 생기가 넘친다. 불에 탔던 낙산사는 조선시대 김홍도가 그린 ‘낙산사도’의 모습을 거의 되찾았다. 2007년 11월 16일 낙성식을 가진 주법당 원통보전을 비롯해 홍예문, 범종각 등은 이미 옛 모습을 되찾았고 신도들의 숙소인 취숙헌, 스님들의 숙소인 심검당, 공양장소인 선열당 등은 새롭게 지어졌다. 화재로 녹아버린 동종(보물 479호)은 2006년 10월 무게 1.2t의 원래 모습으로 복원돼 제자리를 찾았다.

설선당, 정취전, 응향각, 빈일루, 고향실, 근행당, 종무소 등 원통보전 앞 7개 요사채만이 막바지 공사가 한창이다. 사찰 측은 “복원작업은 전체 공정의 80%를 넘었으며 10월 12일 회향식(준공식)까지는 충분히 완공될 것”이라고 밝혔다. 건물이 몰려 있는 낙산 위쪽에 오르자 그라인더와 굴착기, 인부들의 망치 소리가 불경 소리만큼이나 은은하게 들렸다.

양양지역에서 자란 소나무만을 이용해 정면 3칸, 측면 3칸 팔작지붕의 정방형 구조로 만들어진 원통보전 앞에는 화재로 기단 일부가 훼손됐던 7층 석탑(보물 499호)이 보존처리를 통해 깨끗해진 모습으로 되살아났다. 또한 화재로 검게 그을렸던 해수관음상도 예전의 넉넉한 미소로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다.

낙산사 주위에는 3년 동안 30∼40년생 소나무 4500그루를 비롯해 활엽수 1만2000여 그루가 심어졌다. 투입된 산림복원 비용만 90억 원. 그러나 아직도 예전 숲의 모습을 되찾으려면 상당한 세월이 필요하다. 사찰 측은 국비와 사찰 부담 등 낙산사 전체 복원 비용으로 300억 원을 썼지만 앞으로도 상당한 비용이 더 필요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화재 이후 낙산사는 오히려 대중과 더 가까워졌다. 화재 직후 수많은 자원봉사자가 몰려왔다. 낙산사는 입장료를 폐지하고 자판기 음료를 무료로 제공했다. 또 점심때마다 무료로 국수를 공양해 평일 500∼600명, 주말과 휴일엔 1500여 명이 이용하고 있다.

당시 주지 임명 15일 만에 화를 당했던 정념 스님은 “격려와 자원 봉사에 몸을 아끼지 않은 전 국민에게 감사하다”며 “천년 고찰의 모습을 되살리기 위해 지극정성을 기울이고 정진하겠다”고 말했다.

양양=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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