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원자 → 친구 → 진실게임… 盧-朴 ‘얄궂은 21년’

  • 입력 2009년 5월 1일 02시 56분


총선자금 지원 인연 맺어

朴, 盧재임때 사업 확장

‘600만달러’ 진술 악연으로

“우정 때문에 친구의 동생을 도왔고 그가 대통령이 된 순간 인연은 운명이 됐다.”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최근 털어놓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인연이다. 정치인과 후원자 관계를 넘어 21년 동안 각별한 인연을 맺어온 두 사람은 이제 전직 대통령의 뇌물 혐의를 두고 진실게임을 벌여야 하는 얄궂은 운명의 주인공으로 맞섰다.

박 회장은 원래 노 전 대통령의 형 노건평 씨와 먼저 아는 사이였다. 1970년대 노 전 대통령 일가의 고향인 경남 김해시에서 태광실업의 전신인 정일산업을 세운 박 회장은 당시 세무공무원인 노 씨를 만났다. 1988년 노 전 대통령이 13대 국회의원 선거 때 부산 동구에 출마하게 되자 노 씨는 박 회장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박 회장은 노 씨로부터 “동생의 선거자금으로 쓰려 한다”는 부탁을 받고 경남 김해시 한림면의 노 씨 명의 임야 약 30만 m²를 4억5000만 원에 사줬다.

이를 계기로 박 회장은 노 전 대통령의 든든한 후원자로 나선다. 노 전 대통령이 벌인 생수사업이 1999년 어려움에 처하자 노 전 대통령은 측근인 안희정 씨를 박 회장에게 보내 사업운영자금으로 5000만 원을 무상 지원받은 일도 있었다. 박 회장은 2002년 대선 때도 노 씨의 경남 거제시 구조라리 별장을 10억 원에 매입한 것은 물론이고 안 씨에게 두 차례에 걸쳐 7억 원을 건넸다.

박 회장은 대선 때 불법선거자금을 건넨 것 때문에 기소되는 고초를 겪었지만 그 열매는 달았다. ‘현직 대통령의 후원자’가 된 박 회장은 2006년 6월 농협의 알짜 자회사인 휴켐스를 인수했고 2007년 12월에는 30억 달러 규모의 베트남 화력발전소 사업을 따내 그의 사업은 번창했다. 노 전 대통령은 2007년 11월 방한한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에게 “박 회장은 내 친구”라는 말로 그와의 관계를 대변하기도 했다.

박 회장은 노 전 대통령의 퇴임 후까지 챙겼다.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사저 택지를 구해줬고 건축비 명목으로 15억 원을 빌려줬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은 지난달 12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통해 “박 회장이 내가 아는 사실과 다른 얘기를 했다고 한다”며 자신에게 600만 달러를 줬다는 박 회장의 진술을 비판했다. 21년에 걸친 두 사람의 호의적 관계는 이제 악연으로 변한 듯하다.

이종식 기자 bel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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