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충남]대덕단지 ‘연구 불빛’ 한국의 100년 밝힌다

  • 입력 2008년 10월 16일 07시 14분


“최 박사, 이곳 대덕은 명당 중의 명당이오. 건설부 장관과 함께 헬기를 타고 돌아보시오.”

1971∼78년 과학기술처 장관을 지낸 최형섭 박사는 자신의 회고록 ‘불이 꺼지지 않는 연구소’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대덕연구단지 위치를 결정한 비화를 이처럼 소개하고 있다. 1973년 초의 일이다.

최 장관은 이 책에서 “박 대통령은 풍수지리에 관심이 많아 손수 연구단지 자리를 물색해 주었고, 결국 그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입지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건설부는 그해 12월 당시 충남 대덕군이었던 유성읍과 탄동면 구즉면 일대 250여만 m²를 교육연구지구로 결정하고 1974년부터 본격 개발에 들어갔다. 현재 대전 유성구인 연구단지 이름에 ‘대덕’이 붙은 것도 당시의 행정구역이 대덕군이었기 때문이다.

▽‘대덕연구단지’ 탄생의 배경=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의 저서 ‘박정희’를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박 대통령은 1965년 4월 연구소장들 초청 리셉션에서 ‘우리 기업이 스웨터를 만들어 2000만 달러나 수출했다’며 대견해 했다. 그러나 최 장관이 ‘일본은 이미 매년 10억 달러어치의 전자제품을 수출하고 있다. 그런 힘은 기술개발에서 나온다’고 말하자 심각한 표정으로 변했다.”

박 대통령은 1970년대로 접어들어 한국의 산업구조가 경공업에서 중화학공업으로 바뀌자 고급 기술의 개발 필요성을 절감했다. 이에 따라 새로운 연구소들이 들어설 단지를 서울 홍릉 일대의 연구단지에 설립하려 했으나 용지가 마땅치 않았다. 이곳엔 이미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와 원자력연구소, 국방과학연구소, 한국경제개발원 등이 들어서 포화상태였다.

“그 당시 어떻게 이런 너른 용지를 마련해 과학단지를 설립할 수 있었는지….”

지금도 박 대통령의 선견에 감탄하는 대덕연구단지 과학자들이 많다.

▽대덕연구단지의 현재와 미래=현재 대덕연구단지에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 한국원자력연구원, KAIST, 충남대, 애경연구소, KT&G 등 정부출연연구소 28개, 공공기관 7개, 국공립기관 15개, 교육기관 6개, 기업 898개 등 977개(2007년 말 기준)의 기관이 입주해 있다.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디지털이동통신시스템, 다목적 연구용 원자로인 하나로, 독자 액체추진로켓(KSR) 등 세계적인 기술들이 여기에서 탄생하고 있다.

하지만 연구단지의 연구력이나 생산성에 대해 회의를 제기하는 시각도 있다. 일부에서는 “이 정도의 시간이 흘렀으면 세계적인 벤처기업이 쏟아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고 지적했다.

대전시는 국내 최고의 두뇌와 기술이 밀집한 연구단지에서 ‘대전의 100년 성장동력’을 창출하기 위한 방안을 찾고 있다.

대덕연구개발특구지원본부 송락경 사업단장은 “대덕특구는 전 세계적으로 성공한 사이언스 파크로 개발도상국 등이 모델로 삼고 있다”며 “앞으로는 연구개발뿐 아니라 사업화 등을 통해 국가의 신성장동력을 이끌 수 있는 혁신클러스터로 발전해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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