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처’ 게재 국내연구진 논문, 8년만의 취소 왜?

  • 입력 2008년 8월 21일 02시 50분


‘네이처’ 게재 국내연구진 논문 ‘재현 실패’로 자진 철회요청

2000년 당뇨병 새 유전자치료법 개발

세계적 관심속에 8년째 기술재현 못해

연구원 “논문 조작”… 책임교수와 갈등

조사나선 연세대 “실험사진 일부 이상”

획기적인 유전자 치료법을 개발해 세계적 과학잡지인 ‘네이처’에 연구논문을 실었던 국내 유명 대학의 연구팀이 논문 내용이 재현(再現)되지 않아 논문 철회를 요청했다.

연구 재현 실패로 유명 과학잡지에 실린 논문을 자진 철회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로 한국 과학계의 신뢰도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연세대 의대 내과 L 교수와 생화학교실 K 교수, 연구원 2명 등 공동연구저자 4명은 2000년 11월 네이처에 실린 ‘새로운 유전자 요법을 이용한 당뇨병 치료’라는 연구논문을 철회해줄 것을 19일 네이처측에 요청했다.

연구 책임자인 L 교수 등은 e메일 공문을 통해 “우리 연구팀은 지난 8년 동안 이 실험을 재현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으나 재현에 실패했다”고 밝혔지만 실패원인은 설명하지 않았다.

또 이들은 “이런 상황에서 논문 공동저자 전원은 이 논문이 최대한 빨리 철회되길 바란다”며 “논문 철회로 네이처 독자들에게 심려를 끼친 데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논문 내용은=제1형 당뇨병의 치료에서 인슐린과 유사한 물질을 생산하는 유전자와 몸속의 혈당을 감지하는 유전자를 만들어 혈당을 조절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 논문의 주요 내용이다.

제1형 당뇨병은 췌장이 거의 파괴돼 매일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하는 질환으로 연구팀은 논문을 통해 췌장의 기능을 대신할 획기적인 유전자 치료법을 찾았다고 발표했다.

당시 미국 주요 방송과 신문들이 이를 크게 보도했고 국내 언론에도 자세히 소개됐다.

이 연구는 당시 교육과학기술부의 두뇌한국(BK)21사업에서 연구비를 일부 지원받았으며 연구팀은 유전자 치료법을 국제특허로 등록했다.

L 교수는 이 논문으로 국내에서 각종 상을 수상했다.

▽재현성 논란=연구팀에서 연구를 실질적으로 진행한 K 연구원이 2001년 캐나다의 연구원으로 떠난 뒤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K 연구원 대신 연구실에 채용된 P 연구원은 논문 재현 실험을 계속했지만 성공하지 못하면서 내부에서 문제가 됐고 2006년 2월 해고됐다.

P 연구원은 논문에 실린 대로 유전자는 만들었지만 논문 내용대로 유전자를 실제로 동물에게 주입했을 때 혈당을 줄이는 결과를 도출하지 못했다는 것.

P 연구원은 “논문이 재현되지 않은 것은 연구능력 때문이 아니라 논문이 조작됐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면서 L 교수와 갈등을 빚었다는 것.

L 교수는 “P 연구원이 이 논문을 문제 삼아 다른 ‘요구’를 하면서 이를 들어주지 않으면 논문 문제를 외부에 알리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L 교수는 “현재로선 어떤 이유인지 모르지만 논문 내용이 재현되지 않아 철회를 요청했을 뿐이며 논문이 조작된 것은 아니다”라며 “캐나다의 K 연구원에게 여러 차례 재현 실패의 원인 등을 물었으나 ‘이유를 전혀 알 수 없다’는 대답만 해왔다”고 전했다.

▽연세대, 조사 착수=연세대 연구진실성위원회는 3월부터 관련 연구원들을 대상으로 논문의 문제점 등에 대한 예비 조사를 벌여 왔다.

위원회는 4일 중간 보고서를 통해 “최소 7년 이상 연구실험의 재현이 이뤄지지 않은 것이 확인됐고, 과학적 논문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재현성이 결여됐다는 사실은 논문으로서의 자격이 미달되는 것”이라며 “일부 실험사진에 문제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다음 주부터 L 교수 등 국내 연구자들을 대상으로 본격적인 조사를 벌이고 캐나다에 조사위원을 보내 K 연구원도 조사할 계획이다. 조사 결과는 10월 중 발표할 예정이다.

이진한 기자·의사 liked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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