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쇠고기 수업 중 체벌 논란’ 전교조 교사 인터뷰

  • 입력 2008년 7월 5일 03시 04분


“지도부와 생각 다르다고 조합탈퇴 종용

다양한 의견 포용하던 순수성 어디갔나”

3일 인터넷에는 서울의 한 교사가 촛불집회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학생을 체벌했다는 주장이 사진과 함께 올라 큰 파문이 일었다.

촛불집회를 둘러싼 찬반 논쟁이 거센 상태에서 누리꾼들로부터 무차별적인 비난의 대상이 된 교사가 바로 쇠고기 수입 반대를 지침으로 삼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소속으로 밝혀져 더욱 관심을 끌었다.

이 사건이 알려지자 누리꾼들은 해당 학교가 서울 경기상고란 것을 알아낸 뒤 학교 전화번호를 인터넷에 올려 수많은 항의전화가 학교에 걸려왔고 서울시교육청은 곧바로 진상조사에 나섰다.

이 조사에 따르면 교사의 체벌은 사실이지만 체벌 이유는 달랐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기상고 이영생(53) 교사는 “체벌은 분명 잘못한 일이지만 이는 학생의 촛불집회 참석 때문이 아니라 학생의 편향된 시각을 바로잡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밝혔다.

이 교사는 4일 본보와의 단독 전화 인터뷰를 통해 “나는 전교조 조합원이기 이전에 교사이고, 그것도 국제무역을 가르치는 상업 교사”라며 “교사가 소신을 갖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의 필요성을 가르쳤는데 전교조에서 탈퇴하라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스스로는 나가지 않을 테니 차라리 제명시키라”고 말했다.

그는 1987년 9월 전교조의 전신인 전국교사협의회(전교협) 창립 멤버로 특히 투쟁 수위가 높은 것으로 알려졌던 ‘사립학교 민주화 투쟁 위원회’에서 활동했다. 그해 전교협 결성과 관련해 해직됐고 12년 뒤인 1999년에서야 복직됐다.

그는 자신이 밑거름을 뿌린 전교조에 대한 깊은 애정과 아쉬움을 표시하면서도 소신을 명확하게 밝혔다.

―인터넷에 체벌 사진과 함께 학교에 항의전화를 하자는 글이 많다.

“사실을 파악하지 않은 채 무조건 항의하는 전화 때문에 학교 업무가 마비될 정도다. 지난 하루가 몇 년이나 된 것처럼 길게 느껴졌다. 왜곡된 정보가 인터넷에 무차별적으로 확산되는 것을 보면서 두렵기도 하고 문제가 심각하다는 걸 다시 한 번 느꼈다.”

―학생에게 학교를 그만두라고 했다는 내용이 있다.

“어떻게 교사가 학생에게 그럴 수 있겠느냐. 상업 교사로서 자유무역을 주장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이고 책무다. 때문에 상업이 싫은 학생은 인문계로 진학할 수 있는 방법이 많다는 취지로 이야기한 것이다.”

―왜 체벌을 하게 됐나.

“촛불집회로 반대의 목소리만 크게 전해지고 있지만 찬성하는 침묵의 소리도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또 국제무역을 가르치는 상업 교사로서 아무리 생각해도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필요하고 또 그 위험이 적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전달해 주고 싶었다. 이 과정에서 그 학생이 여러 차례 대들듯 따졌고, 진도를 나가려는 순간 다시 따져 감정적으로 흥분했다. 체벌 규정과 달리 공개된 장소에서 체벌한 것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있다. 수업 다음 날(6월 26일) 그 학생이 다른 선생님과 말하고 있어서 등을 두드리며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조합원이면서 전교조 지침과는 다른 견해인데….

“전교조 내에서도 얼마든지 다른 생각이 있을 수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교사가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 전교조가 이 같은 다양한 목소리를 인정하고 포용해야만 특정 시각에 경도되지 않고 순수성을 지켜 나갈 수 있다.”

―이 사건 뒤 주변의 반응은….

“기사가 나간 뒤 많은 지인이 ‘잘했다. 힘내라’는 격려 전화를 했다. 동료 교사들과 심지어 전교조 소속 교사들도 지지를 하는 것을 보고 그동안 전교조가 얼마나 독선적으로 운영돼 왔고, 또 조합원들의 신뢰를 잃었는지 알 수 있다.”

그의 말투는 차분하면서도 소신에 차 있었지만 현재 전교조의 문제점에 대한 대목에 이르자 다소 머뭇거렸다. 전교조 분회장으로부터 탈퇴 종용을 받았지만 전교조는 해직된 자신을 사랑하는 교단으로 다시 불러준 은인이라는 것. 그런 전교조를 비판하는 일이 못내 안타까웠던지, 쓰지 말아달라는 부분도 많아 기사화하지 않은 내용도 있다.

―전교조가 왜 탈퇴를 요구했다고 보나.

“전교조가 체벌에 대한 구체적인 사실 관계도 파악하지 않고 단지 금지하고 있는 체벌을 했다는 이유를 내세워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라는 조합의 지침을 어긴 것을 문책하려 하고 있다. 전교조가 전교조 안의 다른 목소리들을 지금처럼 틀어막는다면 결국 순수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전교조가 좌향좌한다고 해서 모든 조합원이 좌향좌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조합원 입장에서 전교조의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전교조가 이제까지 이룬 성과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요즘 전교조는 현실을 너무 모르는 이상주의자 같다. 12년 만에 복직하니 교사들 월급이 엄청나게 높아져 있었다. 지금이라도 당장 동대문 남대문 시장을 가 봐라.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서민들은 오로지 나라살림이 조금이라도 펴지기만을 바라고 있다. 전교조가 가난하고 배고픈 서민들을 위하는 조직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남에게 강요만 하는 철저한 이익집단으로 변질된 것은 아닌지 뼈저리게 반성해야 한다.”

―해직과 복직하는 과정에서 느낀 점이 많을 텐데….

“학교에서 쫓겨난 후 날품팔이부터 부동산 중개인과 경비원 등 안 해 본 일이 없다. 그러다 전교조의 도움으로 학교에 돌아와 보니 막상 교사들은 현실을 외면하고 교과서에 있는 이상과 이론만 찾고 있었다. 그리고 합리적인 대안을 모색하는 사람들을 오히려 회색분자로 몰아붙였다. 자신들의 생각만 강요하고 다른 의견을 틀렸다고 매도하면 결국 균형 잡힌 시각을 갖춰야 할 학생들마저 한쪽 방향으로 몰게 된다.”

―촛불집회에 대한 생각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의 문제를 제기하며 처음 뛰쳐나갔던 아이들의 순수함은 인정한다. 그러나 지금 어떻게 됐나. 목소리 큰 사람들만 남았다. 20여 년 전 교단을 제대로 바꿔보자고 모였던 전교협이 이제는 초심을 잃고 ‘목소리 큰 사람들의 전교조’로 변모하는 과정과 똑같다. 목소리 큰 사람들은 적극적인 포퓰리스트(populist·대중영합주의자)다. 이들의 말에 휘둘려서 쇠고기 문제 때문에 우리나라 경제를 망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김기용 기자 k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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