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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7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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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서소문 서울시청 별관 1동의 오세훈 서울시장 집무실에는 현황판이 걸려 있다. 2006년 지방선거 때 발표한 공약의 추진 상황을 보여 준다. 빨간색 스티커는 사업 추진이 부진할 때, 노란색 스티커는 사업 실적이 미흡할 때 붙인다. 녹색 스티커는 지연될 우려가 있음을 뜻한다. 사업이 원활하지 않으면 국·실장은 보고를 하기 위해 시장실을 찾을 때마다 엄청난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 오 시장은 “시민과의 약속을 모든 공무원이 지키자는 의미”라고 말했다. 광역자치단체장 16명이 1일로 임기의 반환점을 돌았다. 이들은 유권자에 대한 약속을 얼마나 지켰을까.》
본보가 민선 4기 2주년을 맞아 점검한 결과 2009개 공약 중 386개가 끝났고 1571개가 진행되고 있었다. 보류 또는 폐기 공약은 2건, 추진 예정이거나 타당성을 분석하는 공약은 50건이었다.
▽성과 점점 나타나=공약의 완료 비율은 19.2%로 1년 전보다 9.2%포인트 높아졌다. 민선 4기 1주년 당시 본보 조사 결과 1657건의 공약 중 166건만 완료됐다.
민선 4기가 절반을 넘어서면서 의욕적으로 추진한 사업이 점점 성과를 내고 있다.
김관용 경북지사는 도내 시군 간 이해가 엇갈려 10년 넘게 표류하던 경북도청 이전을 지난달 결정했다.
새 도청 이전지는 경북 안동시 풍천면과 예천군 호명면 일대. 2011년 공사를 시작해 2013년 완공한다.
충북은 ‘경제특별도 건설’을 최대 공약으로 내세웠는데 5월 말 현재 15조 원이 넘는 투자를 유치했다. 여기서 생기는 일자리는 2만6000개가 넘는다.
민선 2기 때부터 연임한 김진선 강원지사는 2001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956개 기업을 유치했다. 2012년까지 1500개를 채운다는 목표를 세웠다.
임성호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지방자치가 성공적으로 정착되면서 유권자의 기대치가 높아졌고, 단체장은 여기에 맞추기 위해 노력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공약 이행 위해 대통령도 협박(?)=지난해 가을 ‘동서남해안 발전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환경단체는 노무현 당시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건의했다.
이 법의 통과를 공약으로 내세웠던 김태호 경남지사는 성경륭 당시 대통령정책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대통령이 퇴임하신 뒤 고향(경남 김해)에 오시면 잘 모셔야 하는데, 특별법이 잘 안되면 내가 앞장서 고향 오시는 길을 막을지도 모르겠다”고 압박했다.
성 실장의 보고를 받은 노 전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았고, 특별법은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이완구 충남지사는 국방대의 논산시 이전을 노무현 정부 시절 국가균형발전위원회가 반대하자 대통령과 위원을 여러 차례 만나 집요하게 설득한 끝에 지난해 12월 논산 이전 방침을 이끌어 냈다.
김태환 제주지사는 삼다수를 세계적인 브랜드로 육성할 계획이고, 정우택 충북지사는 청주공항 시설 확장에 적극적이다.
두 가지 모두 선거에서 맞붙었던 상대 후보의 공약이지만 주민을 위해 받아들여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제행사 유치에도 열성=전남과 대구는 각각 2010년 여수 세계박람회와 2011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유치에 성공했다.
박준영 전남지사는 2005년 2010 여수 세계박람회 유치에 도전했다가 중국 상하이와의 막판 경합에서 아쉽게 고배를 들었다.
민선 4기 들어 재도전 의사를 밝힌 박 지사는 지난해 정부사절단장 자격으로 중남미와 아프리카, 동유럽 등 21개국을 방문했다. 지구를 네 바퀴 돈 셈이다.
전남과 중앙정부, 민간기업의 총력전 끝에 여수는 지난해 11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세계박람회기구(BIE) 제142차 총회에서 개최지로 선정됐다.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유치단장을 맡은 김범일 시장은 3월 케냐 몸바사에서 열린 국제육상경기연맹(IAAF) 총회의 프레젠테이션 최종 리허설 때 음향과 조명, 화면 등 세부 사항까지 일일이 챙겼다.
육상 불모지나 다름없는 대구가 경쟁 상대인 러시아 모스크바를 누른 일은 세계 육상계에서 두고두고 화제가 됐다.
인천은 2014년 아시아경기대회를 개최하며 서울은 2010 초대 세계디자인수도(WDC)로 뽑혔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창원=강정훈 기자 manman@donga.com
대전=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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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공약 이행률 가장 낮아” ▼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는 민선 3기 지방자치단체장의 공약 이행 정도를 점검하려다 포기한 적이 있다.
선거 때 누가 어떤 공약을 내세웠는지를 정리한 자료가 없었기 때문. 몇몇 지자체는 비밀이라며 자료 제출을 거부했다.
이런 분위기는 민선 4기 들어 크게 달라졌다. 16개 광역자치단체장은 시도 홈페이지에 공약을 상세히 소개한다.
홈페이지를 통하거나 1년에 한두 차례 주민설명회를 열어 공약 이행 정도를 적극 홍보하기도 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갈 길이 아직은 멀다’고 입을 모았다. 단체장이 좀 더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원희 한경대 행정학과 교수는 “공약을 실천하다 보면 잘되는 것과 잘 안되는 것이 있는데, 대부분의 홈페이지에는 잘된 것만 나온다. 실패한 것까지 알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오수길 한국디지털대 정보행정학과 교수도 “연내에 달성할 수 있는 사업, 임기 후에야 가능한 사업, 타당성이 없어 포기한 사업 등을 더 명확하게 소개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잘되지 않은 사업에 대해서는 주민평가단이나 주민공청회를 통해 설명하고 공감대를 이끌어 내야 한다는 말.
매니페스토실천본부 유문종 사무총장은 “정부의 도움이 없으면 되지 않는 경제 공약이 가장 많이 지켜지지 않는다. 공약을 내세울 때 지자체 차원에서 할 수 있는지, 아니면 정부가 나서야 되는지를 분명히 해야 오해를 피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