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성기준]기름 2차오염, 태안이 또 운다

  • 입력 2008년 4월 22일 02시 52분


서해안은 정말 대단한 곳이었다. 많은 사람이 의존하며 살아왔고, 많은 사람이 쉬어갔던 곳이다. 그런 곳에 허베이 스피릿호의 기름유출 사고가 났다.

며칠 전에도 충남 태안 앞바다에서는 여전히 방제작업이 진행됐다. 하지만 유출사고가 일어났던 겨울과는 달리 기온이 올라가면서 굳었던 무스(기름과 물의 혼합물)와 타르덩어리에서 나온 유막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더워지면 굳은 오염물질 풀어져

방제의 손길이 닿지 않은 섬의 구석에서는 아직 검은 흔적들이 남아 있었고, 여전히 기름 냄새가 코를 찔렀다. 날씨가 더워져 기름성분이 휘발하면서 생기는 현상이다. 오염된 해안은 그렇게 다시 기름을 바다로 돌려보내거나 대기 중으로 뱉어냈다. 아마 태안의 기적이라 불린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의 손길이 없었다면 상황은 이보다 더 심했으리라.

18일 태안 기름유출 사고에 대한 해양오염영향조사 1차 중간결과가 발표됐다. 어류의 경우 거제도의 청정지역 수준으로 안전하다는 결과는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주변 연안지역의 절반 정도가 여전히 기름오염 기준을 초과한다는 소식은 우리의 얼굴을 어둡게 한다. 그렇다고 기준을 초과하지 않은 지역들이 완전히 회복됐다는 것은 아니다. 기름오염 지역의 복원은 생태계의 기능에 영향을 주지 않는 농도 수준 이하로 기름이 제거됨과 동시에 생태계 기능을 정상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생물군집의 회복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해양에 유출된 기름은 빛이나 미생물 반응에 의해 기름 자체가 없어지는 분해과정, 바닷물 안에서의 희석 그리고 대기로의 휘발과 같은 이동 기작을 통해 그 운명을 달리한다. 이 중 분해되지 않은 기름 성분은 농도의 변화를 수반하며 존재하는 위치가 달라질 수 있다. 2차 오염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광분해나 미생물분해로 인해 자연분해가 되거나 대기 중으로 휘발하는 성분들은 주로 분자량이 작은 물질이다. 초기에 이런 기름성분이 제거된 뒤에 남는 분자량이 큰 물질은 상당 기간 자연에 존재한다.

벌써 일부에서는 육안 결과를 보며 이제 방제를 그만 해도 오염지역이 회복될 것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단순히 오염 초기의 기름제거율만으로 복원 기간을 예측하는 것은 부정확하며 위험하다. 분해가 상대적으로 용이한 성분의 분해, 휘발 이후에는 분해가 느리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1989년 발생한 엑손 발데스호 사건이 좋은 예다. 오염 초기 자료를 이용하여 연 68%의 비율로 제거될 것으로 예측됐지만 2001년까지의 실제 모니터링 결과 연 4% 미만으로 제거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기름오염 지역을 방치하면 회복이 상당히 오래 걸린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태안의 바다가 예전 모습을 찾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말하기는 어렵다. 분명한 것은 생태계의 복원에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자연이 스스로 회복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자연치유론 회복 더뎌 도움 필요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큰 수술 이후의 회복 과정에 더 많은 정성이 필요한 것은 사람이나 자연이나 같다. 오히려 기온이 낮았던 겨울보다 굳거나 숨어 있던 기름이 녹아 나오는 지금이 더 효과적인 방제작업이 이뤄질 수 있는 시기다. 여기가 아프고, 여기가 아직 문제라고 바다는 이야기한다. 지금 서해안은 태안의 기적이라 불린 범국민적인 관심과 도움의 손길이 계속 필요하다. 아니 이전보다 더 세밀한 정성과 관심이 요구된다.

앞으로도 서해안은 여전히 대단한 곳이 될 것이다. 그 혹독했던 유출사고의 후유증을 사랑과 정성으로 극복하려 한 사람들의 아름다운 추억이 깃든 곳이기 때문이다.

성기준 부경대 교수·생태공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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