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만 껐을뿐인데 기적이 일어났어요”

  • 입력 2008년 3월 18일 02시 58분


《전남 완도군 다랑도 주민 한동술(72) 씨는 TV를 끄고 생활한 지 3주 만에 ‘다랑도의 걸어다니는 전화번호부’가 됐다. “한글을 모양만 겨우 깨친 상태여서 신문이나 책을 수월하게 읽지 못하고 한 자 한 자 떠듬떠듬 읽었죠. 그런데 ‘섬 전체 TV 끄기 실험’을 한다는 얘기를 듣고 기회다 싶었어요. 섬 전화번호부를 붙들고 종일 입으로 소리 내 읽었습니다. 이제 이름만 대면 번호는 자동이에요.”》

전남 다랑도 10가구 ‘TV OFF’ 3주만에 이런일이

EBS 리얼프로젝트 실험

“가족 찾게 되고 책 가까이”

‘신문 즐긴다’ 7%서 35%로

“밤에 서로 얼굴팩 해줘요”

‘부부대화 늘어’ 14%→35%

완도에서 2시간 동안 배를 두 번 갈아타고 들어가야 하는 외딴 섬 다랑도. 섬 주민들이 EBS TV ‘리얼 실험 프로젝트 X’ 제작진의 제안으로 2월 4일부터 3주간 섬 전체의 TV를 끈 것.


▶본보 2월 25일자 A21면 참조
다랑도의 ‘TV끄기 혁명’

제작진은 실험에 참여한 10가구 28명 주민의 동의를 얻어 TV 앞에 감시카메라를 설치하고 TV 화면에 ‘시청 금지’ 종이를 붙인 뒤 3주 동안 TV를 껐다. 그리고 다시 TV를 켠 지 3주가 지난 지금 주민들은 전처럼 밤마다 TV 앞에 앉아 드라마 얘기만 하고 있을까. 한 씨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루 종일 TV만 끌어안고 지내던 이장 댁 승완(4)이와 나란히 앉아서 마을문고 동화책을 읽는 게 큰 즐거움이 됐어요. 마누라도 글 읽는 게 서툴렀는데 같이 공부하니 더 좋았지. 우리는 눈이 시원찮아서 글씨가 큰 동화책이 좋아… 허허.”

TV 끄기 실험 후 삶이 바뀐 것은 한 씨와 최승완 군뿐이 아니다. 실험 종료 열흘 뒤인 6일 실험참여자 중 성인 2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대부분이 신문과 책 읽기, 부부간 대화, 종교 활동이 늘어 생활이 풍성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신문 읽기의 경우 실험 전엔 주민 92.8%(24명)가 안 본다고 답했으나 실험 후엔 57%(15명)로 줄었고 한 주에 1, 2일 본다고 답한 사람은 7%(2명)에서 35%(9명)로 늘었다.

부부간 대화도 늘었다. 대화 시간이 거의 없다는 답은 실험 전 8명에서 실험 후 한 명도 나오지 않았고 대화가 생활화됐다는 답도 14%(4명)에서 35%(9명)로 늘었다. 다랑도 이장 최대문(56) 씨는 “TV에 뒀던 시선을 아내한테 돌리게 되니 새삼 예쁘게 보인다”며 “밤에 서로 얼굴 팩도 해주고… 사는 게 더 재밌다”고 웃었다.

TV 끄기로 인한 주민들의 변화된 삶은 18일 오후 7시 55분 EBS TV가 방영한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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