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륜 아들마저 감싼… 아·버·지

  • 입력 2007년 12월 26일 02시 59분


코멘트
흉기 찔려 숨지면서도 “밝히지 말라”

법원, 父情 참작 사형 대신 무기징역

“절대로 동생이 범인이라고 말하지 마라….”

하나뿐인 아들의 흉기에 찔려 숨져 가던 아버지가 남긴 이 말이 부모를 살해한 패륜아를 사형에서 구해 냈다.

8월 11일 오전 3시 20분경 경기 수원시 장안구 조원동 이모(56) 씨의 집.

이 씨는 자신을 향해 흉기를 휘두르는 괴한이 복면을 썼는데도 단번에 아들(23)이라는 사실을 알아챘다.

“왜 그래, 이 녀석아”라며 이 씨가 말렸지만 아들은 흉기를 든 손을 멈추지 않았다.

비명을 듣고 달려나온 어머니(50)에게도 아들은 흉기를 휘둘러 숨지게 했다. 이어 잠에서 깬 누나 2명마저 흉기로 찔러 중상을 입혔다.

중상을 입고도 범행 뒤 달아난 아들 걱정이 앞선 이 씨는 구급차로 옮겨지기 직전 두 딸에게 “절대 너희 동생이 범인이라고 말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는 병원 응급실에서 범인에 대해 묻는 경찰의 물음에도 고개만 가로젓다가 끝내 눈을 감았다.

아들 이 씨는 범행 3시간 뒤 친구 집에서 놀다 온 것처럼 태연히 아버지가 있는 병원을 찾았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 조사 결과 이 씨는 “주식투자에 쓰겠다”며 어머니에게서 받은 3700만 원을 유흥비 등으로 탕진한 뒤 어머니와 누나 2명을 생명보험에 가입시키고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25일 이 사건의 재판을 맡은 수원지법 형사11부(부장판사 홍승면)는 존속살해 및 살인미수 혐의로 구속 기소된 이 씨에게 사형 대신 무기징역을 선고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경제적 곤경을 이유로 부모를 무참히 살해한 피고에 대해 극형의 선고가 불가피하지만 죽어 가면서도 피고의 범행을 덮어 주려 한 아버지의 사랑, 피고가 뒤늦게 참회한 점 등을 참작해 무기징역을 선고한다”고 설명했다.

수원=이성호 기자 starsk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