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이슈&이슈]김승연 회장과 패리스 힐턴

  • 입력 2007년 7월 10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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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기(禮記)’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예(禮)는 서민에까지 내려가지 않고, 형벌은 대부(大夫)에까지는 미치지 않는다.”

한마디로 지배계층과 보통 사람들에게 내리는 처벌이 달랐다는 말이다. 지배층들의 잘못은 ‘예의’로 다스렸다. 그 대신 백성들의 잘못에는 엄벌을 내렸다. 이는 왕과 귀족이 있었던 서양에서도 별다르지 않다.

사회 지도층들은 많이 누리지만 벌은 적게 받는다. 보통 사람들로서는 억울하겠지만, 이런 대접은 전통에 가깝다. 예외 없는 법집행을 외쳤던 한비자도 한발 물러설 정도다.

“법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 단 임금 한 사람만 빼고.”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는 예와 형벌의 위치가 뒤바뀌는 중이다. 지위가 높은 이들일수록 엄격하고 철저하게 처벌받아야 한단다. 그러나 힘없는 이들에게 법을 줄 때는 이해와 배려가 중요하다. 정의로운 사회는 이래야 한다.

재벌 회장이 남을 때린 죄로 1년 6개월을 감옥에서 지내게 되었다. 미국에서는 재벌가 출신의 모델 패리스 힐턴이 철창신세를 졌다. 여론은 한목소리로 ‘잘된 일’이라고 외친다. 심지어 더 심한 벌을 내려야 한다는 의견도 들린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신분과 배경이 먹히지 않는다. 제 아무리 귀족이라 해도 값을 치르지 않고 원하는 물건을 뺏을 수 없다. 반면, 미천한 출신이라 해도 돈만 내면 왕 같은 대접을 받을 수 있다. 자본주의는 매우 평등한 제도다.

자본주의에서 성공을 거둔 이들은 이 점을 종종 잊곤 한다. 자신이 나은 대우를 받는 이유는 ‘신분’이 달랐기 때문이 아니다. 왕후장상의 씨가 어디 따로 있던가. 돈과 권력을 모았다 해서 자신이 특별한 인간이 되지는 않는다.

나아가 주식회사에서 최고경영자는 일꾼에 지나지 않는다. 진짜 주인은 주주(株主)들이다. 패리스 힐턴도 마찬가지다. 그녀에게 인기와 돈을 안겨 준 ‘고객’들은 평범한 시민이다. 자신은 이들에게 봉사하는 모델일 따름이다. 대통령이라 해도 별다를 게 없다. 자신을 뽑아 준 국민을 위해 애쓰는 가장 큰 종복이 대통령 아니던가. 그러니 지위 높은 사람들에게 엄한 형벌을 내리는 분위기는 ‘전통’으로 보아서도 당연하다.

하지만 마녀사냥은 경계해야 한다. 질투와 단죄(斷罪)가 헷갈리는 경우는 흔하다. 가진 자들에 대한 질투는 ‘괘씸죄’로 바뀌어 지나친 처벌을 이끌어내기도 한다. 재벌 회장이건, 미녀 모델이건 법 앞에서는 모두 평등하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죗값만큼만 벌을 받아야 한다. 죄를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더더욱 진리다.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철학박사 timas@joongdo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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