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생각나무]자존심을 되찾은 ‘개’

  • 입력 2007년 6월 26일 03시 00분


오늘 소개할 책의 주인공은 사람이 아닌 개입니다. 책 제목은 ‘까보 까보슈’입니다. ‘까보 까보슈’는 프랑스 사람들이 개를 친근하게 부르는 말이라고 하네요.

이 책에 나오는 개의 이름은 ‘개’입니다. ‘영롱이’나 ‘백구’ 같은 이름이 아니라서 좀 이상하지요? 하지만 주인인 소녀가 그렇게 지었답니다. 그러니까 주인공을 부를 때 소녀는 “이리 올래, ‘개’야”라고 부른답니다.

어쨌든 오늘은 이 ‘개’의 생각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이 말에 혹시 고개부터 갸우뚱거리는 친구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개의 생각’이라니, 개가 어떻게 생각을 해?”라고 말이지요. 여러분 생각은 어떻습니까, 개에게도 생각하는 능력이 있을까요?

개는 물론 사람과 똑같은 방식으로 생각하지는 못합니다. 이를테면 개는 덧셈 뺄셈도 못하고, 신문도 못 읽고, 편지 쓸 줄도 모르지요. 그런 의미라면 개는 확실히 생각할 줄 모릅니다. 하지만 개에게는 다른 생각 능력이 있는 게 아닐까요?

“개들이 왜 온갖 자동차 타이어 위에다 오줌을 싸는지 알아? 언제 어디서나 자기가 왔던 길을 되찾아가려고 그러는 거라고. 아마도 노루 씨는 버려진 개가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자기 주인을 되찾아 오는 걸 보고 감탄의 소리를 내지르는 얼간이 중의 한 사람일 거야. 바보 같으니라고! 인간처럼 상상력이 없는 게 또 있을까…….”

이 장면은 ‘개’가 자기를 몰래 내다 버린 소녀의 아버지 ‘노루 씨’를 두고 화를 내는 장면입니다. 여기서 ‘개’는 개의 생각 능력을 인정하지 않는 인간을 두고 바보 얼간이라고 욕합니다. ‘상상력이 없다’는 말은 뭐든 자기가 최고인 줄 알고 자기밖에 모르는 인간의 습성을 꼬집은 말이지요.

인간은 수천 킬로미터 밖에서 집을 찾아올 판단 능력이 없습니다. 하지만 인간이 그렇다고 개까지 그래야 하나요? 개는 인간이 아닙니다. 수천 킬로미터 밖에서도 자기 냄새를 맡아 얼마든지 찾아올 수 있지요. 그러니 이 점만큼은 개가 생각하는 능력이 더 뛰어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개와 인간은 서로 다릅니다. 능력과 특기가 다르고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지요. 덧셈 뺄셈은 사람이 잘하지만, 길 찾기는 개가 더 잘합니다.

그러니 개와 사람 사이에 차이가 있더라도 그것은 그냥 차이일 뿐, 누가 더 우월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개는 말을 못하고 덧셈 뺄셈을 못하니까 사람이 더 우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이런저런 면에서 우월한 게 아니라 아예 통째로 우월하다는 거지요.

그래서 위에 나오는 ‘노루 씨’처럼 인간은 개의 ‘주인’이니 개를 제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버럭 소리를 지르거나 발로 차거나, 심지어 키우기 싫으면 내다 버려도 된다는 것이지요. 마치 고물을 내다 버리듯이 말이에요.

그러나 한번 생각해 보세요. 부모가 자녀를 돌보고 기른다고 해서 자녀의 ‘주인’이라고 할 수 있나요? 그렇다면 훗날 자녀가 늙은 부모를 모시게 되면 이번에는 자녀가 부모의 ‘주인’이 되는 건가요? 그래서 물건 다루듯 다루고, 필요 없으면 갖다 버려도 되는 건가요? 하긴 그러는 사람도 더러 있긴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개’가 가장 참기 힘든 것은 그렇게 물건처럼 취급받는 일이었습니다. 개도 인간과 똑같이 감정을 느끼고 생각할 줄 아는 존재라는 걸 인정받지 못하는 일이었습니다. 노루 씨에게 버림받은 ‘개’는 수치심과 분노감에 몸을 떨다가 결심합니다. 개의 자존심을 반드시 되찾아야 하겠다고요. 어떻게요? 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해 주던 소녀를 다시 찾아 나선 겁니다. 노루 씨 같은 사람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요.

‘개’는 수천 킬로미터를 달려옵니다. 한숨도 자지 않고 꼬박 열하루 걸려서요. 그리하여 인간은 개를 버려도 개는 인간을 버리지 않는다는 걸 증명해 보입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개에게 생각이 있고 자존심이 있다고 생각합니까? 개의 눈을 자세히 한번 들여다보세요. 혹시 대답이 들어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김우철 한우리 독서논술 연구소 실장

* 다니엘 페나크, ‘까보 까보슈’, 문학과지성사, 199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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