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시내버스 파업 “불편 참을테니 파업에 굴복마세요”

  • 입력 2007년 6월 26일 03시 00분


시청 진입 시도하는 버스노조원 대전 시내버스노조 파업 4일째인 25일 노조원들이 노조의 뜻을 전달하기 위해 굳게 닫힌 대전시청 정문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대전=연합뉴스
시청 진입 시도하는 버스노조원 대전 시내버스노조 파업 4일째인 25일 노조원들이 노조의 뜻을 전달하기 위해 굳게 닫힌 대전시청 정문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대전=연합뉴스
“우리들이 겪는 불편은 참을 테니 파업에 절대 굴복하지 마세요.”

하루 40만 명이 이용하는 대전 시내버스가 멈춰선 지 나흘째인 25일 오전 대전시청 15층 대중교통과 사무실 내 20여 대의 전화기가 쉴 새 없이 울려댔다.

“비상버스가 왜 이리 늦느냐. 파업을 왜 예방 못했느냐”는 질타도 있었으나 이는 극소수. 대부분은 “시민 발을 볼모로 한 파업은 용서할 수 없다. 한 발짝도 물러서지 말라”는 격려의 내용이었다. 대전시 인터넷 홈페이지에도 ‘주동자를 색출하자’는 강경한 글이 눈에 띄었다. 대전 시내버스 파업이 나흘째로 접어들면서 시민들의 거센 ‘저항’에 직면했다.

대전 시내버스는 2001년에도 파업을 했다. 이때는 시민들은 주로 파업의 불편함을 호소하며 “시가 나서서 빨리 파업을 마무리하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이번 파업에서 시민들은 “시가 노조에 굴복하지 말 것”을 요구하고 있다. 여기에는 지난해부터 준공영제를 도입해 시민들의 세금으로 버스회사를 지원하는데 회사나 노조 모두 나아진 것이 하나도 없다는 불만이 깔려 있다.

자가용 함께 타기 운동, 자전거 이용하기 등 파업에 대응한 성숙된 시민들의 캠페인도 곳곳에서 일고 있다.

▽‘비상버스가 훨씬 좋네’=이날 오전 11시 대전 서구 둔산동 대전시교육청 옆 정류장. 대전시청∼서일고 구간을 운행하는 215번 임시 시내버스에 올랐다. 대전시가 하루 45만 원을 주고 임대한 산수관광 소속 45인승 버스다. 절반쯤 자리를 채운 승객들의 표정은 차분해 보였다.

운전사 최성해(59) 씨는 “노선에 익숙하지 못해 시내버스보다 다소 느리게 운행하지만 시민들은 ‘관광버스라 놀러가는 기분이네. 아저씨도 친절하고’라며 농담까지 건넨다”고 말했다.

그는 “배차간격이 15분에서 30분으로 늘었지만 시민들이 불만을 참아내는 표정이 역력하다”고 말했다.

버스 안에서 ‘안내양’ 역할을 하고 있는 공무원 구혜경(40·서구 관저보건지소) 씨도 “격려하면서 김밥까지 건네는 시민도 있다”고 전했다.

대전시는 22일 파업이 시작되자 898대의 시내버스 대신 관광버스와 25인승 승합버스 등 700여 대를 93개 노선 가운데 79개 노선에 투입하고 택시부제를 해제했다. 특히 올 4월 개통된 지하철 1호선의 전동차 운행 횟수를 하루 250편에서 290편으로 증편하자 파업의 여파는 예전과 사뭇 달랐다.

무엇보다 파업에 대한 시민들의 염증이 도드라져 보였다.

버스 안에서 만난 유기용(78) 씨는 “불편한 것은 참을 수 있다. 시민을 볼모로 한 파업은 절대 안 된다는 본보기를 대전시가 보여 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촬영 : 이기진 기자

▽임금 축소 호도한 노조 지도부=대전시내버스노동조합이 시민과 언론사에 배포한 운전사 실제 임금명세서가 사실보다 축소됐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노조원 700여 명은 25일 대전시청 남문광장에서 집회를 열고 180만 원대의 노조원 월급을 대전시가 320만 원으로 왜곡해 노조원과 시민을 이간질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노조가 24, 25일 이틀 동안 시내버스 주요 승강장에 부착한 S교통 소속 이모 씨의 올해 5월 임금지급명세서에는 상여금과 연차수당, 근속수당, 휴가비 등이 누락된 상태.

연간 150만 원의 상여금과 월 4만8000원의 연초(煙草)수당 등은 아예 계상되지 않았다.

노조 관계자는 이에 대해 “상여금이 지급되지 않은 한 달 치 명세서만을 공개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번 파업의 가장 큰 쟁점이 임금인 점을 감안하면 노조의 이 같은 태도는 시민의 공감을 얻기 위한 의도적인 조작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대전시 관계자는 “대전의 월 총급여액을 서울 부산 대구 광주와 비교하면 서울(333만643원)과 대구(333만3476원)에 이어 3번째로 많은 것”이라고 말했다.

▽준공영제 흔들=대전시는 지난해 서울에 이어 전국에서 두 번째로 준공영제를 도입하면서 지원금을 종전의 연간 40억 원에서 297억 원으로 늘린 상태.

김권식 대중교통과장은 “시가 준공영제를 도입한 것은 정시 운행, 서비스 개선, 파업 예방 등 대중교통수단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정책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대전시는 이에 따라 서울 부산 대구에도 없는 ‘연초수당’까지 지급해 왔다.

그는 “노조가 요구하고 있는 ‘최소한 5.8%’ 인상안을 수용할 경우 297억 원에 이르던 지원금이 400억 원 이상으로 늘어난다”며 “특별히 서비스가 나아진 것도 없는데 시민들에게 세금을 더 내놓으라고 말하기가 어렵다”고 밝혔다.

대전=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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