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운전 10m는 무죄… 30㎝는 유죄?

  • 입력 2007년 4월 11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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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2월 A 씨는 혈중알코올농도 0.134%의 만취 상태에서 경기 성남시의 한 주상복합건물 1층 주차장에 세워진 차량을 몰다가 주차장과 차도 사이의 횡단보도 표시 지역을 겨우 30cm 넘어섰다가 음주운전으로 경찰에 적발됐다.

대법원 2부(주심 김능환 대법관)는 10일 “술에 취한 상태에서 차의 일부라도 도로에 들어섰다면 음주운전을 한 경우에 해당한다”며 A 씨에게 벌금 50만 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하지만 혈중알코올농도 0.131% 상태에서 강원 원주시의 아파트 내 주차장 사이의 통로를 10m 정도 운전한 혐의로 기소된 B 씨에 대해 대법원은 무죄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아파트 단지 내 건물과 건물 사이의 공간 안에 주차 구획선을 그어 차량이 주차할 수 있도록 만든 아파트 주차장의 통로는 도로가 아니라는 취지였다.

그렇다고 아파트 내에서 음주운전이 다 허용되는 것도 아니다. 2001년 충북 청주시의 아파트 단지 내에서 음주운전을 한 C 씨는 유죄 판결을 받았다. 판결의 일관성이 없는 것 같지만 사실 법원의 판단 기준은 분명하다. 술을 마시고 운전을 한 장소가 도로교통법상 ‘도로’에 해당하느냐가 관건이다. 운전한 거리는 중요하지 않다.

▽‘도로’ 여부가 핵심=대법원 판례를 보면 “현실적으로 불특정 다수의 사람 또는 차량의 통행을 위해 공개된 장소로서 교통질서 유지 등을 목적으로 하는 일반교통경찰권이 미치는 공공성 있는 곳”을 ‘도로’라고 정의하고 있다.

술을 마신 사람이 운전하는 차가 도로에 닿는 순간 음주운전 행위로 간주된다. 취객이 식당 주차장에 있던 차량을 다른 곳으로 옮기려다 앞바퀴 하나가 도로에 걸쳤는데 음주운전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적도 있다.

호텔이나 아파트 단지 내 주차장 등 관리인이 차량 출입을 통제하는 사유지는 보통 도로가 아닌 것으로 분류되지만 C 씨 사건의 경우 법원은 경비원들이 차량 통행을 관리하는 아파트라도 현실적으로 외부 차량의 통행이 허용되는 이상 도로라고 판단했다.

운전을 하지 않았다면 차가 조금 움직였다고 해도 너무 놀라지 않아도 된다. 술을 마신 뒤 차 안에서 자다가 사이드 브레이크가 풀리면서 차가 도로까지 굴러 내려간 사건에 대해서는 대법원은 2005년 무죄 판결을 내렸다.

▽봐주기는 없다=D 씨는 2005년 혈중알코올농도 0.11% 상태에서 주차에 서툰 운전자 대신 주차를 해주느라 노상에서 1.2m가량 차를 움직였다가 음주운전으로 단속됐다. D 씨는 “면허 취소는 가혹하다”며 소송을 냈고 1, 2심에서는 승소했지만 대법원은 “공익상의 필요를 감안할 때 면허취소는 지나치지 않다”며 원심을 파기했다.

지난해 2월에도 대법원은 혈중알코올농도 0.146% 상태에서 운전하다 적발된 장애 3급의 화물운전사 E 씨에게 면허취소 처분을 내린 것은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E 씨는 정신지체 2급인 딸이 있고 화물차를 운전해 생계를 꾸려 나가는 딱한 처지였지만 대법원은 “가족이 입게 될 불이익을 감안하더라도 가혹한 처분이라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누가, 어떤 이유로든 음주운전을 했다면 사정을 봐주지 않는 추세”라며 술을 입에 댔다면 아예 운전대를 잡을 생각을 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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