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서울의 땅밑도 난개발에 신음

  • 입력 2006년 9월 19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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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초 25년 된 잠실역 지하도상가 리모델링에 나선 서울시 시설관리공단은 곤경에 빠졌다. 대구 지하철 참사 뒤 건설교통부가 마련한 지하공공보도시설에 관한 규칙 때문이었다.

규칙의 시설기준에 따르면 잠실역 지하도상가는 보도 폭, 바닥부터 천장까지의 높이 등 손댈 것 투성이였다. 하지만 천장을 받치고 있는 기둥을 뽑고 벽을 뚫어 더 넓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건교부도 이미 지어진 지하구조를 바꾸기는 어려우니 내장재만 바꾸라고 한 발 물러선 유권해석을 내렸다.

최근 서울 종각역 가스누출사고로 새삼 ‘지하공간 안전’ 문제가 시민들의 안전의식 표면에 떠올랐지만 서울 시내 30개 지하도상가는 이처럼 지하시설에 관한 규정이 없던 20∼40년 전 개발돼 보도 폭, 높이, 점포 면적, 통로 간격 등 기본시설 규격이 제각각이다. 수익을 내기 위해 점포 수를 더 많이 확보하는 것이 우선이었던 민간업자가 개발하다 보니 광장 등 공공공간은 찾아보기 힘들고, 채광과 통풍을 위한 천창(天窓)은 어디에도 없다.

▽지하 땅 먼저 판 사람이 임자?=거리마다 지하도상가가 들어서고, 대형 건물 지하에는 어김없이 아케이드가 설치되는 등 서울은 세계적으로도 비슷한 사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지하공간이 많이 개발된 도시다.

1960∼80년대 민방위 대피시설로 지하도 개발이 권장됐고, 민간 소유 건물의 지하층은 용적률(대지 면적에 대한 연면적의 비율)에 반영되지 않아 파는 사람이 임자였기 때문.

그러나 개발면적이 큰 것에 비해 서울 지하공간의 질은 ‘최악’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필요에 따라 그때그때 개발하다 보니 안전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동선이 중복되는 등 효율성도 떨어진다.

엄&이 종합건축사무소 이관표 소장은 “지하공간을 개발한 다른 나라의 사례를 보면 지상은 필지별로 건물을 짓더라도 지하는 블록별로 계획을 세워 개발한다”며 “개별 건물마다 파내려갈 대로 파내려간 서울의 지하공간은 이제 되돌릴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지하공간 ‘지뢰밭’ 안되려면=최근에는 코엑스몰처럼 지하철역과 연계된 테마형 지하상가까지 가세하며 지하공간 개발 움직임이 대형화되고 있다.

공사비 외에 30억 원의 보상금을 부담하고 을지로 지하도상가와의 연결을 협의 중인 동대문 쇼핑몰 굿모닝시티를 비롯해 지하연결통로를 허가해 달라는 곳이 10여 곳에 이른다.

전문가들은 지하공간은 완벽한 복구나 방재가 어렵기 때문에 난개발되는 것을 이제는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서울시립대 도시방재연구소 윤명오 교수는 “폐쇄적인 지하공간은 재난 발생 시 지상보다 더 큰 피해를 낳을 수 있다”며 “신축 지하시설에는 자연채광과 환기, 위치인식을 돕는 성큰 광장(지하로 내려가는 부분을 널찍하게 개방한 공간) 등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시도 4대문 안과 삼성동 영등포 동대문 청량리 상암 등 5대 부도심을 계획적 지하이용지구로 지정해 도시계획을 세워 개발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지하공간 종합기본계획’을 마련하고 있다.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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