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발전 '7대 저해 요인' 유형별 사례

  • 입력 2006년 2월 9일 18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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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제 시행 10년만에 실시된 감사원의 전국 지자체에 대한 첫 종합감사에서 '풀뿌리 민주주의'의 부실한 면모가 곳곳에서 드러났다.

지자제 시행 이후 가장 고질적으로 지적된 낮은 재정자립도와 지역격차, 무분별한 사업추진 등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으며 방만한 예산 운영으로 가뜩이나 쪼들리는 살림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이 중앙정부의 통제가 약화된 가운데 지방 공무원의 근무기강 해이도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드러났다.

또 감사 결과 기초단체장은 사실상 그 어떤 제어도 받지 않고 자신의 지역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 온 것으로 드러났다.

예를 들어 한 기초단체장은 "파리를 모두 없애라"고 부하직원에게 지시했는데 이 부하직원이 "파리를 모두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식의 답변을 했다는 이유로 '직위해제'라는 부당 인사 조치를 내렸다.

감사 결과 나타난 지방자치의 부실 사례를 '7대 저해 요인'의 유형별로 살펴 본다.

◇ 타당성 없는 지역개발사업의 무분별한 추진

감사원 감사에서 지자체들의 무분별한 사업 추진과 방만한 예산 운영이 여실히 드러났다.

지방재정법상 규정된 타당성 검토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공약 등을 이유로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하다가 2000년 이후 165개 사업이 취소, 중단되는 바람에 이미 집행된 4209억 원이 낭비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사업의 취소, 중단 사유는 △법령상 애당초 불가능한 일을 추진하거나 △관계기관의 사전 인허가 없이 사업을 시작한 경우 △재원확보 방안도 없이 사업을 추진한 경우 등으로 다양했다.

실제로 서울시 성동구는 복지관 건립을 위해 건축법에 따라 건축허가 제한구역으로 지정된 부지를 사들였으나 사업이 불가능해짐에 따라 부지 매입비 61억 원만 날렸다.

서울시 동대문구는 문화재 보호구역인 홍릉공원 안에 정보화도서관을 짓기 위해 실시설계 용역까지 맺고도 허가를 받지 못해 용역비 13억3000만 원을 낭비했다.

또한 대형사업 추진 시 반드시 거쳐야할 투자심사를 회피하거나 심사결과를 무시하고 강행하다가 중단되는 등 22개 지자체에서 24개 사업으로 740억 원의 낭비요인이 적발되기도 했다.

광주광역시는 영상문화 시설 설치와 학생회관 이전을 위한 부지매입과 조성공사 등에 237억원을 투입, 주차장 공간부족 등으로 건축이 불가능하고 추가 재원도 마련하지 못해 사업이 중단되면서 237억 원이 사장되기도 했다.

◇ 기관과 자치단체간 협의없는 시설 개발 등으로 갈등 일으켜

국가계획과 지역별 계획간 손발이 맞지 않아 사업의 효율성이 떨어지고 중앙-지방정부, 지방정부 상호간 사업지연 등으로 예산 낭비는 물론 불신을 낳은 사례도 많았다.

서울시 서초구는 구립 납골당을 건설하기 위해 10억여 원을 들여 충북 청주시 소재 부지를 사들였으나 청주시의 승인을 받지 못해 사업이 중단돼 부지 매입비 10억여 원이 묶이고 지역간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충청남북도간 서로 연계되는 병천~오창 지방도의 경우도 충북에서는 2008년 준공예정으로 공사를 진행하고 있으나 충남도는 착공조차 하지 않아 상당기간(4년 추정) 개통이 지연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전남 무안군은 무안종합스포츠파크 조성 사업비를 총사업비가 아닌 시설별 사업비로 산정해 행자부의 심사도 없이 추진하다가 재원부족으로 중단, 부지 매입비 등 107억 원을 사장시켰다.

경남 남해군은 광역상수도(하루 1만t)을 공급받아 용수공급이 충분한데도 환경부로부터 50억원을 지원받아 고현 지방상수도(하루 950t) 건설을 추진하고 있어 예산 낭비를 초래할 우려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행자부는 2002년 6월부터 지난해 4월까지 투자심사를 무시한 241개 사업에 대해 교부세 108억 원을 지원하고 5779억 원의 지방채 발행도 승인해 국가기관간 엇박자 행정을 부추긴 결과를 낳았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 선심성 과시성 낭비성 사업의 졸속 추진

민선 자치제 시행 이후 지방청사나 체육시설을 필요 이상으로 크게 짓거나 무분별한 지방축전 개최도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0년 이후 추진된 25개 지방청사 중에서 21개가 행자부 심사면적보다 많게는 41.2%나 컸고 단체장실 면적도 평균 기준면적보다 평균 1.9배 크게 확보한 것으로 파악됐다.

경기 용인시는 행자부 심사 면적인 5만6216㎡보다 41.2% 더 큰 7만9424㎡규모로 건립했으며 부산진구는 심사면적인 1만3223㎡의 배를 넘는 3만5978㎡ 규모로 짓기도 했다.

체육시설도 경기도 고양시 등 27개 시군에서 법정기준(5000~1만5000석)을 훨씬 넘어선 규모(5400¤4만1311석)로 종합운동장을 건설했고, 2조564억 원을 들여 건립한 10개 월드컵 경기장중 서울을 제외한 9곳 경기장이 만성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2004년 기준 대구월드컵경기장 운영적자액은 31억 원이고 인천은 19억 원, 대전 12억 원, 울산 11억 원, 제주 4억 원 등으로 파악됐다.

또한 각 지자체가 개최하고 있는 2004년 기준 1178개의 축전 가운데 76%인 890개는 민선 이후 신설됐으며 2003년에 개최된 496개 축전을 표본조사한 결과 226개(45.6%)는 사업 타당성 검토도 없이 개최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축전비 대부분이 지자체 예산에 의존하고 축전을 위한 별도 법인을 설립하는 방식 등으로 3860억 원을 변칙 집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 '줄세우기'식 인사 조직 관련 비리 성행

자치단체장이 인사권을 남용해 자신에게 충성하는 직원들을 `줄세우기'하는 부당인사도 성행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가장 흔히 쓰이는 방식은 인사법규를 어겨가며 특정인을 승진 임용하거나 지방공기업 등의 임직원 인사에 부당하게 개입하는 사례들이었다.

실제로 경기도 광주시는 근무성적 평정점수를 무시하고 특정인을 평정 서열 명부 상위 순번에 배치하라는 시장 지시에 따라 6급 6명, 7급 8명을 각각 5급과 6급으로 승진시켰다.

대전시는 `지방공기업 경영혁신지침' 등 관련 규정을 위반하면서 공모절차를 거치지 않고 대전도시개발공사 업무이사에 시장의 선거대책본부 사무국장을, 대전시도시철도공사 사장에 선거실무본부장을 각각 임용하기도 했다.

서울시 중랑구는 인구가 50만 명이 되지 않아 2급 정원이 없는데도 2005년2월 3급 부구청장을 2급으로 임용하는 등 특정인을 정원에도 없는 직급으로 승진시키기도 했다.

또한 인사업무를 담당하면서 자신의 근무성적평점을 조작해 부당하게 승진한 사례도 파악됐으며 서울시 등 11개 지자체에서는 관계 규정에 어긋나는 임시 기구를 별도로 설치해 관리직 보직관리 수단으로 이용하기도 했다.

이같이 빗나간 인사관행은 인사위원회, 근무성적평정, 다면평가제 등 인사 시스템이 형식적으로 운영돼 단체장의 전횡에 대한 견제기능이 상실된데 따른 것으로 감사원은 진단했다.

◇ 토착세력과 연계된 부당수의계약 등 방만한 예산집행

지자체가 관내 업체를 대상으로 각종 사업을 발주하며 토착세력과 연계해 부당한 수의계약을 맺거나 객관적인 기준이 없는 보조금 지급 행태도 다수 드러났다.

지방자치단체들의 전체 계약의 약 76%가 수의계약 방식으로 과다하게 이뤄져 특정업체와의 유착 의혹이 제기됐다고 감사원은 밝혔다.

전남 화순군은 전문건설업체와 경쟁 계약해야 할 38건의 공사를 일반건설업자와 수의계약하고, 48건은 무면허 건설업체와 수의계약을 체결하는 등 총 313건(계약금액 119억 원)의 수해복구 공사 중 43% 상당인 52억 원을 위법하게 수의계약을 맺었다.

전남 완도군은 `수의계약사유 평가기준'에 따른 평가결과 종합 평점이 59.05점으로 수의계약 대상(평가기준 90점)에 미달하자 평가항목 일부에 과다한 조작(가점 형태)을 통해 97.7점으로 평가한 뒤 계약을 맺기도 했다.

경북 울릉군은 군 종합복지관 신축 명목으로 교부받은 특별 교부세 8억 원을 임의로 울릉군 재향군인회관 신축보조금으로 줬으며 전남 영광군은 임의로 설립된 보훈단체에 보훈회관 신축 명목으로 4억 원의 보조금을 지급했다.

◇ 주민 불편 부담을 초래하는 소극적 편의주의적 행정행태 만연

법적 근거도 없는 민원 거부나 지연 처리 등을 이용한 부담금 징수 및 기부금 모집 등으로 주민 부담을 가중시키기도 했다.

전남 전주시는 공동주택사업 승인관련 업무를 특별한 사유도 없이 지연 처리하는 사이에 용적률 강화(250%→180%)로 착수시기를 놓쳐 사업주가 사업을 포기했다.

충남 금산군도 입지기준에 적합한데도 민원이 예상된다는 막연한 이유로 공장설립 승인을 거부, 행정쟁송 패소 후 뒤늦게 승인해 공장설립을 지연시켰다.

이에 반해 61개 지자체에서 사업 인허가를 빌미로 법적 근거도 없이 사업자에게 공공시설을 설치하도록 부담을 전가하기도 했다.

부산시 영도구는 2002년 4월 주택건설 사업자를 변경하면서 3개의 도시계획도로 사업자에게 토지매입비 3억2000만 원을 전가했으며 대전시는 아파트사업계획을 승인하면서 진입로 3개 노선 공사비 15억 원을 아파트 사업시행자에게 부담토록 했다.

지자체가 대부분 수의계약으로 주거래 금고(金庫)를 선정하는 과정에서도 기부액을 평가항목에 넣는 방법으로 공공연하게 `기여금'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도가 도 금고 취급은행으로부터 체육지원 육성과 지역경제발전 명목으로 41억여 원의 기부금을 받는 등 16개 시도에서 최근 3년반 동안 1064억 원의 기부금품을 받은 것으로 감사원은 파악했다.

자치단체의 이런 부담 전가는 사업 시행자나 서비스 기관의 사업비 올리기나 요금, 수수료 인상 등의 형태로 주민 부담으로 되돌려지게 됐다.

이같은 행태를 방지하기 위해 거부민원 사전통지제 등 부당한 민원거부 방지시스템 구축, 법적 근거없는 부담금 징수 및 기부금 모집행위 제재방안이 마련되야 한다고 감사원은 제안했다.

◇ 내부통제 미비에 따른 지방공무원의 도덕적 해이

지자체 시행이후 내부 통제 기능이 약해지며 공무원의 업무상 횡령, 내부정보 이용 투기, 무분별한 해외여행 등이 심각한 수준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허술한 세입과 세출관리의 틈을 노려 기관이 받아야 할 과태료 등을 착복하는가 하면 복지시설이나 체육시설 지원금을 떼어먹는 사례가 빈발했다.

강원도청 기능 8급은 KT춘천지사로부터 통보받은 통신요금 청구서를 폐기한 뒤 허위의 통신요금 목록을 이용해 차액을 챙기는 수법으로 1억9000여만 원을 횡령했다.

경기도 과천시 보건 7급 공무원은 시금고가 변경된 사실을 국민건강보험공단과 카드사 등에 알리지 않아 바뀌기 이전 계좌로 입금된 진료 수입금 8379만 원 중 3994만 원을 횡령하기도 했다.

또한 14개 지자체에서 관용카드를 부당 사용하거나 지출서류도 갖추지 않고 부당 사용한 1억2474만원이 이번 감사에서 적발됐다.

인천시 남동구 행정 7급 공무원은 자신이 관리하는 관용카드를 이용해 사적으로 715만 원을 사용한 뒤 체납 하천점용료 등으로 593만 원을 받아 관용카드 결제대금으로 메우기도 했다.

더욱이 경남 통영시 공무원은 관용카드를 이용해 유흥주점에서 술을 마시는 등 9차례에 걸쳐 관용카드로 결제한 뒤 뒤늦게 갚는 등 관용카드 사용과 관련된 도덕적 해이가 만연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선거를 의식한 지자체의 문화·체육행사가 빈번한데다 선심성 지역행사에 대한 편법지원도 이뤄지는가 하면 보조금 관리부실로 횡령 사고도 발생했다.

경기도 안성시 등 8개 지자체에서는 관내 통·이장연합회, 친목체육대회 등에 소모성 행사경비로 13억여 원을 보조했으며 전남 영광군은 임의로 설립된 보훈단체에 보훈회관 신축명목으로 4억 원의 보조금을 지급했다.

그러나 이런 보조금에 대한 사후 관리가 제대로 안돼 충북 보은군체육회 직원은 군에서 받은 보조금 4억2000만 원을 인출한 뒤 자신의 개인통장에 입금시켜 1억1251만 원을 횡령해 개인 빚을 갚는데 쓰기도 했다.

또한 공무원의 관광성 국내외 여행경비로 39개 지자체에서 73억여 원이 부당하게 집행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 같은 부분별한 해외여행에는 관공서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계약업체까지 동원하는 사례도 있었다.

전북 군산시는 2003년부터 지난해 사이에 공무원 445명의 업무관련성이 적은 관광지 시찰 위주의 해외여행 등에 2억6000만 원을 부당하게 집행했고, 경기 의정부시는 2004년부터 지난해 사이에 공무원 16명 부부 해외여행경비 1억여 원을 포상금 예산에서 편법으로 지원하기도 했다.

감사원은 "세출 세입금 출납업무에 대한 일상감사를 강화하고 클린 신용카드제도를 도입, 내부 통제시스템을 강화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성하운기자 haw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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