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마당]비정규직 법안 처리 방향

  • 입력 2005년 12월 15일 03시 10분


코멘트
《비정규직 법안 처리가 장기 표류하고 있다. 2001년 360만 명에서 올해 548만 명(정부 통계)으로 늘어나고 있는 비정규직 근로자의 보호를 위해 정부가 입법안을 국회에 제출한 것이 지난해 11월. 벌써 1년 넘게 지루한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노사가 다시 대화 테이블에 앉을 때만 해도 비정규직 법안 연내 처리의 기대감이 컸다. 4월 노사정 실무협상에서 기간제 사용 기간과 불법 파견 시의 고용 문제 등 핵심 쟁점에 대해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대화가 중단된 뒤 6개월 만에 재개되는 협상이었기 때문이었다. 정부 여당안에 대한 민주노총의 반발과 최근 여당의 사립학교법 강행 처리에 따른 국회 파행 등으로 법안의 연내 처리는 이미 물 건너간 게 아니냐는 우려가 높다. 내년 지방선거 등 굵직한 정치 일정이 기다리고 있어 해를 넘기면 언제 처리될지 기약할 수 없다는 관측도 있다. ‘사회적 약자’인 비정규직 근로자를 법적으로 보호하면서도, 노동시장의 현실을 반영하는 합리적인 해법은 없을까. 국회에서 심의 중인 비정규직 법안을 반대하는 민주노총과 사(使) 측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한국경영자총협회에서 이 사안을 바라보는 각각의 견해를 들어 본다.》

▼현실 외면한 법제정 중단해야▼

비정규직 법안 처리 문제가 노사의 손을 떠나 국회로 넘어가면서 당초 ‘비정규직의 불합리한 차별 해소와 노동시장의 여건 변화에 따른 인력 수급의 원활화’라는 정부 법안의 제정 취지가 탈색돼 가고 있다. 정치권이 손을 대면서 ‘비정규직 보호’에만 치중해 노동시장을 급격히 경직시키는 방향으로 논의가 진행돼 가는 형국이다.

비정규직 법안이 다음과 같은 노동시장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제정되지 않는 게 국민 경제를 위해 바람직하다고 본다.

첫째, 노동력의 수요와 공급, 임금 수준과 기업의 지불 능력 사이에 심각한 괴리가 있음을 감안해야 한다. 현재 정규직 임금 수준은 높아지는 반면 구직자는 누적되고 지불 능력이 악화된 기업은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인력 수급 불균형으로 인한 충격을 다소나마 완화해 주는 것이 비정규직 근로자들이다. 보호 위주의 비정규직 대책이 비정규직 채용 기피 현상을 초래하리라는 것은 너무도 분명하다.

둘째, 기업의 인사 및 임금 관리 전략이 변화하고 있다. 과거 우리 기업들은 근로자를 가족처럼 생각해 왔다. 그러나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이원(二元)화된 인력정책으로의 전환이 이뤄졌다. 소수의 핵심 인력만을 보유하고 주변 인력은 외부화하는 전략이 일반화된 것이다. 주변 인력들이 파견근로자와 임시직 등 비정규직으로 대거 전환됐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셋째, 고용 형태의 다양화와 비정규직 확산이라는 세계적인 흐름을 우리 노동시장이 비켜가지 못한다는 점이다. 2000년 유럽연합(EU) 국가들의 시간제 및 기간제 고용비율은 각각 17.7%와 11.4%로 1991년(각각 13.9% 및 9.2%)에 비해 늘고 있다. 노동시장이 경직 상태인 프랑스의 경우 그 증가율이 더욱 가파르다.

그러면 비정규직을 줄이는 방법은 과연 있는가? 한번 채용하면 해고가 쉽지 않은 현재의 노동시장 상황에서 방법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노동계는 기업의 비정규직 채용에 각종 제한을 가하면 할 수 없이 정규직을 채용할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이는 너무나 단순한 발상이다. 현재 비정규 근로자의 93%는 중소기업에 종사하고 있고 이들 대부분이 핵심 업무가 아닌 주변 업무에 종사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비정규직은 추천이나 연고 등 비경쟁적 과정을 거쳐 채용된 경우가 정규직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다.

이러한 상황에서 ‘비정규직 사용제한’에 직면한 기업들이 어떤 방향으로 대응할 것인지는 너무도 자명하다. 한 조사에 따르면 약 80%의 기업은 비정규직 보호법안에도 불구하고 정규직으로 전환할 의사가 없으며, 고용 자체를 아예 줄이거나 다른 방법을 찾겠다는 응답도 약 50%로 나타났다. 이는 비정규직 보호입법이 자칫하면 비정규직 상당수를 노동시장 밖으로 내몰게 됨을 의미한다. 물론 능력이 뛰어난 일부는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대다수 비정규직의 고용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노동시장의 현실을 외면하고 왜곡시키는 법은 국가 경제에 독이 될 수밖에 없다. 약이 되지 않는 법이라면 차라리 법 제정을 중단하는 게 낫다.

김영배 경영자총협회 부회장


▼임시직 채용 자유허용은 잘못▼

외환위기 이후 본격화된 비정규직 문제가 악화되고 있다. 비정규직 규모는 해마다 늘어 2005년 현재 840만 명, 전체 노동자의 56%에 이른다. 언제 일자리를 잃을지 모르는 고용 불안정층이 노동자의 다수를 차지하면서 당사자들의 고통은 물론 사회 양극화 심화에 따른 갈등도 커지고 있다.

이런 문제의 해결을 위해 현재 국회에서 비정규 관련 법안이 심의되고 있다. 그러나 정부 여당이 내놓은 법안은 그 방향이 잘못 설정돼 있다. 아무런 제한 없이 2년까지 기간제(임시직) 노동자 사용을 자유롭게 허용한 것이 가장 심각한 문제다. 이렇게 되면 기업은 2년 동안 비정규직을 합법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2년이 지나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노동자는 소수에 그칠 것이고, 대다수는 계약을 해지당하고 다른 임시직으로 대체될 것이다. 특히 청년 구직자를 중심으로 한 신규 일자리는 2년 이내의 비정규직이 주류를 이루게 될 것이다. 이 같은 우려가 그저 지레짐작만은 아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5년 현재 기간제 노동자 가운데 근속연수가 2년 미만인 경우가 73.9%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회적 상식’을 법제화하면 된다. 비정규직이 필요한 일에 비정규직을, 정규직이 필요한 일에 정규직을 고용하는 것이다. 일시적이거나 임시적 필요가 있는 업무나 사유에는 비정규직을, 상시적으로 계속 필요한 일에는 정규직을 채용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이 민주노총이 요구하는 ‘사유 제한’ 방식의 비정규직 사용 원칙이다. 지금 문제는 기업이 정규직이 필요한 일에 비정규직을 무분별하게 채용하기 때문에 발생하고 있다.

또 다른 핵심 쟁점인 불법 파견 시 고용보장 문제에 있어서도 정부 여당안은 미흡하다. 허용되지 않은 업종에 파견노동자를 채용한 경우 고용 의무를 부과하는 내용이지만 위반할 경우 3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만으로 이행을 강제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불법 파견의 경우 노동자가 사용업체에 직접 고용된 것으로 간주하는 ‘고용 의제’ 조항이 적용돼야 한다.

비정규노동자에게 단체교섭권 등 노동3권을 보장하는 것도 정부 여당 안에 빠져 있는 중요한 부분이다. 파견노동자를 실제로 사용하는 사용업체가 교섭 책임을 지도록 하고, 학습지교사, 트럭운전사, 골프장 경기보조원 등 이른바 특수고용노동자들에게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는 방안도 입법안에 포함되어야 한다.

기업과 정부는 비정규직을 줄이면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주장을 편다. 그러나 최근의 한국은행 보고서(‘최근 일본의 노동시장 구조변화 및 대응현황’)는 일본의 경우 비정규직 급증에 따른 내수 축소와 세수 감소 등으로 2001년 13조8000억 엔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비정규직 등 저소득층의 증가로 인한 내수 축소가 불황의 최대 원인이 되고 있는 우리 경제 상황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비정규직 채용 확대가 단기적으로는 기업에 달콤할지 몰라도 중장기적으로는 기업의 인적자원을 악화시키고 기술개발 등 경쟁력 강화에도 해가 될 것이다.

배강욱 민주노총 비상대책위 집행위원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