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 문턱서 멈춘 한국 實事求是 정신 무장해야”

  • 입력 2005년 9월 7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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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선진화포럼의 이사장을 맡은 남덕우 전 국무총리. 그는 출범식에 참석한 한 인사가 포럼 회원들의 면면을 보고 ‘남덕우 팬클럽’이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지식인 계층에 영향력을 갖고 있다. 남 이사장은 “한국 사회에서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관념론이 아니라 ‘실사구시’”라고 강조했다. 강병기  기자
한국선진화포럼의 이사장을 맡은 남덕우 전 국무총리. 그는 출범식에 참석한 한 인사가 포럼 회원들의 면면을 보고 ‘남덕우 팬클럽’이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지식인 계층에 영향력을 갖고 있다. 남 이사장은 “한국 사회에서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관념론이 아니라 ‘실사구시’”라고 강조했다. 강병기 기자
《박정희(朴正熙) 정부 시절인 1969∼79년 재무부 장관과 경제부총리 등을 거치면서 한국 경제의 고도성장을 이뤄낸 한 주역으로 꼽히는 남덕우 전 국무총리. 서강대 교수 출신으로 이른바 ‘서강학파’의 좌장(座長) 격인 그는 교수 출신 경제관료 가운데 가장 성공했다는 평을 듣는 우리 사회의 원로(元老)다. 올해 81세로 여든을 넘긴 남 전 총리가 6일 출범한 한국선진화포럼의 이사장을 맡았다. 남 이사장은 이날 출범식에서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힘 있고 또렷한 목소리로 선진화의 필요성을 역설해 큰 박수를 받았다. 출범식 직후 남 이사장을 만났다.》

―포럼을 만드시게 된 배경을 말씀해주시지요.

“한국 경제는 선진국 진입 직전에서 성장 동력과 활기를 잃은 채 기로에 서 있습니다. 과거의 성장 도식으로는 치열한 국제경쟁에서 이겨내지 못합니다. 세계화와 정보화로 상징되는 20세기를 넘어 포스트 디지털 환경에서 뒤지지 않으려면 모든 분야에서 후진성을 탈피하고 건실한 선진사회를 건설해야 합니다. 이와 함께 지구촌의 보편적 가치이자 우리의 국가이념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를 지켜나가야 합니다. 이런 것들에 대한 국민의 이해를 높이기 위해 포럼을 만들게 됐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운영하실 계획입니까.

“정부 지원은 일절 받지 않고 철저한 회원제로 운영할 생각입니다. 한 달에 한 번씩 조찬 모임과 함께 세미나 등을 열어 선진화를 위한 과제를 끌어내고 당국에 필요한 건의를 할 생각입니다. 바로 다음 달에는 ‘선진화라는 것이 도대체 뭐냐’라는 주제를 가지고 모임을 갖게 됩니다. 이사장을 맡기는 했지만 비용을 조달하는 데만 신경을 쓰고 주도적으로 포럼을 이끌어나가는 건 한국을 짊어지고 갈 젊은 세대에 맡기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포럼의 설립이 국가를 위한 마지막 봉사의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선진화는 어떤 의미를 갖습니까.

“19세기 말에는 개화운동이 있었고 광복 후에는 근대화가 강조됐습니다. 선진화는 지금 한국 사회의 시대적 과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개화나 근대화, 선진화 세 가지 개념이 모두 급변하는 세계정세의 변화에 적응해 한민족이 어떻게 발전하고 번영할 것이냐를 고민하는 운동이라는 점에서 역사적인 맥을 같이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경제가 어렵다고들 합니다. 그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투자가 안 되니까 그 결과가 저성장과 저고용으로 나타나는 겁니다. 기업들이 장래에 대해 믿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념 문제일 수도 있는데 이 나라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것들을 걱정하고 있는 것 같아요. 경제 문제를 집약적으로 풀어줄 수 있는 해결 방법 가운데 하나가 물류중심지 개발이라고 생각합니다.”

남 이사장은 물류중심지 개발을 위한 민간 싱크탱크인 IBC포럼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최근 이 포럼이 개최한 ‘경제자유구역제도 개선방안’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중국 상하이(上海)와 쑤저우(蘇州)를 다녀왔다.

―이번 중국 방문은 어떠셨는지요.

“10년 만에 쑤저우에 다시 갔는데 세계 일류의 신도시로 변한 모습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비결이 있더군요. 쑤저우공단에선 시(市) 당국이 나서서 대학원 시설과 교수용 빌라를 지어 놓고 중국은 물론 영국의 리버풀대 등에서 첨단산업 대학원 과정을 설치할 수 있도록 하고 있어요. 외국 교수들은 가방만 들고 오면 모든 게 해결되는 거죠. 한국은 동북아 물류기지가 되기 위해 유리한 위치에 있는데 잘 안 되고 있어서 안타깝습니다.”

―일부 도시에만 특혜를 몰아주는 것은 우리 정부가 말하는 지역균형발전론과는 다른 것 같습니다.

“‘요충(要衝) 공격’ 개념을 생각해야 합니다. 전쟁을 할 때 중요한 곳부터 공격을 해야 이깁니다. 균형 발전을 너무 주장하면 발전이 안 됩니다. 성장이 계속돼야 분배가 가능해집니다. 성장이 그치면 실업자가 나타나고 사회보장비가 증가하고, 투자 재원이 떨어지면 성장잠재력은 떨어지고, 실업자가 다시 증가하는 악순환이 계속됩니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말씀해 주시지요.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현실적인 방법으로 최우선 과제부터 해결하자는 것이 바로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정신입니다. 지금 한국 사회에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실사구시의 정신입니다. 또 하나 기억할 것은 합리와 불합리를 가르는 가치판단의 준거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원리 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는 점입니다. 자유를 제도화한 게 민주적 대의정치와 시장경제체제인데 그것이 바로 우리의 국가이념이자 지구촌의 보편적 가치 아닙니까.”

짧은 인터뷰 시간을 아쉬워하는 기자에게 남 이사장은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 주소(www.dwnam.pe.kr)를 알려줬다. 그가 한 강연 원고와 외부 기고를 모두 모아 놓은 곳이다. 남 이사장은 개인용 컴퓨터(PC)가 보급되기 전인 1970년대부터 컴퓨터를 사용했고 지금도 중요한 자료는 인터넷에서 찾는다고 했다. 이미 여든이 넘었지만 그는 세상의 흐름을 열심히 읽는 ‘정신적 현역(現役)’으로 보였다.

홍석민 기자 smhong@donga.com

▼주요 참여 인사 (가나다순)▼

▽전직 고위관료·정계=고병우(전 건설부 장관) 금진호(전 상공부 장관) 김만제(전 경제부총리) 김병일(전 기획예산처 장관) 김준성(전 경제부총리) 박건우(전 주미 대사) 박명광(국회의원) 박병윤(전 국회의원) 유재건(국회의원) 윤진식(전 산업자원부 장관) 이규성(전 재정경제부 장관) 이근영(전 금융감독위원장) 이승윤(전 경제부총리) 이용만(전 재무부장관) 이종찬(전 국가정보원장) 이한구(국회의원) 이현재(전 국무총리) 이형구(전 노동부 장관) 이홍구(전 국무총리) 장승우(전 해양수산부 장관) 정동수(전 환경부 차관) 정몽준(국회의원) 정우택(전 자민련 정책위의장) 정의용(국회의원) 정종욱(전 주중 대사) 최종찬(전 건설교통부 장관) 최수병(전 공정거래위원장) 한승주(전 외무부 장관)

▽학계=구본호(전 울산대 총장) 김경환(서강대) 김병주(서강대) 김영석(우석대 총장) 김윤형(한국외국어대) 김종석(홍익대) 김태준(동덕여대 부총장) 남성일(서강대) 모종린(연세대) 박재윤(아주대 총장) 박찬희(중앙대) 박태호(서울대) 손병두(서강대 총장) 송병락(서울대) 안세영(서강대) 유상부(포항공대 이사장) 이건영(중부대 총장) 이경숙(숙명여대 총장) 이승훈(서울대) 임해정(군산대 총장) 정창영(연세대 총장) 차동세(경희대) 홍승용(인하대 총장)

▽재계·금융계=강권석(기업은행장) 강석진(CEO 컨설팅그룹 회장) 강신호(전국경제인연합회장) 강정원(국민은행장) 구자용(E1사장) 구평회(E1명예회장) 김기환(골드만삭스증권 고문) 김대영(코람코 사장) 김민영(국보 사장) 김서웅(뉴시스 회장) 김재철(한국무역협회장) 김종열(하나은행장) 김정태(전 국민은행장) 김태희(케이블렉스 대표) 김항덕(중부도시가스 회장) 김흥기(전 산업은행 총재) 류진(풍산 회장) 문국현(유한킴벌리 사장) 민병성(삼홍사 회장) 박성상(전 한국은행 총재) 박승(한국은행 총재) 박영주(이건산업 회장) 박은주(김영사 대표) 박인구(동원F&B 사장) 박종태(청해상사 대표) 신동규(한국수출입은행장) 신동열(성문전자회장) 신동혁(전국은행인연합회장) 신상훈(신한은행장) 심형구(KB부동산신탁 사장) 오세철(금호타이어 사장) 유지창(한국산업은행총재) 이봉서(단암산업 회장) 이부식(세계로선박금융회장) 이상회(용평리조트 회장) 이석영(한국무역협회부회장) 이수영(한국경영자총협회장) 이영혜(디자인하우스 사장) 이원영(한진 대표) 이재희(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 이진설(센트럴시티 회장) 이형승(CJ연구소장) 장흥순(터보테크 회장) 조건호(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조수호(한진해운 회장) 조석래(효성 회장) 조양호(대한항공 회장) 조현정(비트컴퓨터 회장) 추동화(DHL단자스 사장) 허동수(GS칼텍스 회장) 현오석(무역협회무역연구소장) 황창규(삼성전자 사장)

▽기타=김덕중(고등기술연구원 이사장) 김진현(세계평화포럼 이사장) 노성태(한국경제연구원장) 노재봉(KOPEC 사무국장) 박영기(한국정보기술연구원장) 배광선(전북테크노파크원장) 송희연(아시아개발연구원이사장) 양수길(국가경영전략연구원장) 오현주(한국여성문화예술인총연합회장) 좌승희(전 한국경제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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