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자들 지목하는 ‘라인업’…“범인암시 있었다면 무효”

  • 입력 2005년 6월 7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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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6월 7일 밤 여중생 A 양과 B 양(이상 당시 14세)은 남자 3명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

사건 발생 8개월 뒤 경찰은 용의자 5명의 사진에 이름과 생년월일을 함께 적어 A 양과 B 양에게 제시했고 이들은 그중 한 명을 범인이라고 지목했다.

A 양 등은 범행 장소와 범인이 누구인지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다만 A 양은 성폭행한 남자가 자신의 이름을 ‘진성’이라고 소개했다는 사실과 ‘20대 중반의 나이에 트레이닝복을 입은 머리가 짧고 단정한 스타일’이라는 인상착의를 기억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대법원 3부(주심 박재윤·朴在允 대법관)는 A 양이 지목한 용의자에 대해 지난달 27일 무죄를 선고했다고 6일 밝혔다.

▽범인식별 절차(라인업)=경찰은 범행 장소 부근에 거주하는 1980∼85년생 남자 중 이름이 ‘진성’인 사람들을 대상으로 행적을 조사한 뒤 3명을 용의선상에 올렸다. 경찰은 3명의 ‘진성’과 이름이 ‘진성’이 아닌 2명 등 5명의 사진에 이름과 생년월일을 함께 적어 A 양과 B 양에게 제시했다.

A, B 양은 3명의 ‘진성’ 중 유일하게 짧은 머리인 C 씨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경찰은 C 씨만을 편면경(바깥에서만 안쪽을 볼 수 있는 거울)이 설치된 조사실에 데려와서 A 양 등을 상대로 범인이 맞는지 확인하는 절차를 거친 후 C 씨를 체포했다.

▽엇갈린 판결=1심에서는 C 씨에 대해 유죄가 인정돼 징역 5년이 선고됐다. 1심 재판부는 “성폭행은 평생 잊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경험이므로 두 피해자가 다른 사람을 범인으로 오인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2심과 3심에서는 무죄가 선고됐다.

대법원 재판부는 “범인 식별의 신빙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인상착의가 비슷한 사람을 동시에 대면해야 하는데 C 씨만 짧은 머리이기 때문에 범인으로 지목됐을 가능성이 있고, 사진에 이름이 있어 ‘진성’이 아닌 두 사람은 제외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사진을 보고 C 씨를 범인으로 지목하는 과정에서 피해자들이 한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A 양의 판단이 B 양에게 암시를 줬을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황진영 기자 bud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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