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人心도 사라졌네”…불황에 ‘연말 공짜선물’ 자취 감춰

  • 입력 2004년 12월 13일 17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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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불황이 이어지면서 연말 달력 인심도 각박해졌다. 달력만큼은 새해인사와 함께 어디서든 받을 수 있는 ‘공짜 선물’이었지만 올해는 사정이 그렇지 않다. 달력 제작을 크게 줄여 우수 고객에게만 주는 기업이 늘고 있고, 이에 따라 달력 인쇄 상인들도 어느 때보다 힘든 연말을 보내고 있다.》

대기업부터 중소기업까지 내년 달력 제작을 20∼50% 줄여 올해는 ‘공짜달력’을 구하는 일이 쉽지 않을 듯하다.

회사원 홍경진 씨(27·여)는 아예 마음에 드는 달력을 돈을 주고 살 생각이다. 홍 씨는 “회사 달력 말고는 선물로 받은 달력이 없다”며 “작년 이맘때는 미용실이나 백화점에서 꽤 예쁜 달력을 줬는데 올해는 소식이 없다”고 말했다.

모든 고객들에게 연말 선물로 달력을 줬던 은행들도 올해는 우수 고객에게만 주고 있다. K 은행과 J 은행은 달력 제작을 지난해보다 20% 이상 줄였다. 유명 백화점들도 10∼30%가량 줄였다.

W 은행 홍보 담당자는 “단순 사은품으로 제공하던 달력이 올해는 ‘마케팅용 홍보물’로 변했다”고 전했다.

우체국(정보통신부 산하 우정사업본부)의 사정은 그래도 좀 나은 편.

한 홍보담당자는 “작년과 같이 250만 부를 찍어 모든 고객에게 드리고 있는데 상당히 인기가 좋다”며 “다른 곳에서 달력 제작을 줄여서 그런지 우체국에 와서 달력을 받으려는 분들이 예년보다 늘어났다”고 말했다.

한편 일반 고객들을 위한 달력 제작은 줄어든 반면 일부 우수 고객을 위한 고급형 다이어리 제작은 늘어났다.

K 은행은 작년에 14만 개를 만들었던 수첩을 올해는 16만 개로 늘렸고 W 은행은 각 점포에서 추천한 고객을 위한 고급 수첩을 작년 2만 개에서 올해는 4만 개로 늘렸다.

주부 김점순 씨(54·서울 구로구 구로동)는 “달력이 최소한 2, 3개는 필요한데 올해는 딸이 피트니스클럽에서 받아온 게 전부”라며 “달력 하나 구하기 힘든 것 보면 연말 인심이 각박해진 것 같아 씁쓸하다”고 말했다.

▼인쇄골목 “어휴 어휴”… 주문 작년보다 절반감소▼

10일 오후 서울 중구 인현동 속칭 ‘인쇄골목’.

달력과 수첩 등의 연말 특수로 예년 같으면 한창 바쁠 때지만 올해는 한산한 모습이었다. 가게에는 드나드는 손님도 별로 없고, 배달 차량이나 오토바이로 북적대야 하는 거리도 조용했다.

주로 중소기업이나 영세업체의 달력을 주문받는 이곳의 연말장사는 그야말로 바닥이다. 예년의 50%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게 상인들의 주장.

한일문화사 김모 사장(68)은 “매년 11월 초부터 12월 초까지가 피크인데 올해는 11월 중순까지도 주문이 없었다”며 “작년에 비해 30% 이상 매출이 떨어질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이어 “12월 들어 그나마 조금씩 주문이 들어오고 있는데 달력 제작을 안 하려 했던 회사들이 고객들의 항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주문하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예년에는 영세업체라도 달력을 1000부 정도는 찍었는데 올해는 아예 안 찍거나 소량만 찍어 체면치레만 하고 있다고 이곳 상인들은 입을 모았다.

여기서 30년간 백반집을 해 온 음식점 주인도 힘들기는 마찬가지.

문경등심 주인 천모 씨(59·여)는 “원래 이맘때면 거리가 북적거리고 식당에도 들어설 자리가 없을 정도였는데 영 손님이 없다”며 “낮 식사 손님은 반 이상 줄었고 저녁 술 손님은 3분의 1로 줄었다”고 말했다.

근처에서 다방을 운영하고 있는 임모 씨(32·여)도 “올해는 커피 주문전화도 뚝 끊겼다. 작년엔 하루 5, 6번 커피 주문을 받았는데 요즘엔 하루 1, 2번 주문받기도 힘들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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