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성폭행 사건’ 인터넷서 일파만파

  • 입력 2004년 12월 10일 15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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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과 관계 당국은 뭐하고 있나? 가해자들 뒤에 권력기관의 비호라도 있는 건가. 법이 그들을 용서하더라도 우리식대로 처벌하겠다.”

지금 정치권과 언론은 열린우리당 이철우 의원의 북한 조선노동당 가입전력 논란으로 시끄럽지만, 인터넷 세상은 ‘밀양 여고생 집단 성폭행사건’의 소용돌이에 온통 빠져있다.

이번 사건으로 가해자 41명중 단 3명만 구속되고, 풀려난 가해자와 그 가족들이 피해자를 오히려 협박했다는 소식까지 들리면서 누리꾼(네티즌)들은 더욱 충격과 분노를 삭이지 못하고 있다.

누리꾼들은 가해자 전원을 강력히 처벌하라고 요구하면서, 성폭행 의혹을 받고 있는 밀양 고교생 30여명의 신상정보와 얼굴 사진을 인터넷에 무단공개해 논란을 빚고 있다.

◇‘밀양사건’ 개요

울산남부경찰서는 지난 7일 여중생 등 10대 여학생 5명을 약 1년간에 걸쳐 금품을 갈취하고 집단 성폭행한 혐의로 경남 밀양시의 고교생 41명을 붙잡았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울산 모 중학교 A 양(14)을 밀양으로 유인해 집단 성폭행하고, “부를 때마다 오지 않으면 휴대전화로 찍은 성폭행 장면을 인터넷에 올리겠다”고 협박, A 양의 여동생(13)과 고종사촌(16)까지 불러 금품을 갈취하고 수차례 집단 성폭행했다. 이들은 조사과정에서 지난달 경남 창원시에서 10대 여학생 2명을 집단 성폭행했다고 추가 자백하기도 했다.

울산남부경찰서는 연행자 41명 중 가담 정도가 심한 22명에 대해서는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었으나 증거가 불충분하자 8일 박모(18)군 등 3명만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며 12명은 보강조사, 6명은 불구속 입건, 20명은 훈방조치했다.

이 사실은 국내 언론뿐만 아니라, 일본, 호주, 러시아 등지에서도 메인 뉴스로 보도됐다.

◇왜 누리꾼들은 분노하고 있는가

▼피해가족의 2차 피해

이런 가운데, 9일 피해 여중생 A양의 가족이 경찰에게 인권침해적인 수사를 받았다는 인터뷰 기사가 나왔다.

이들은 인터뷰에서 “신고 때 다짐한 절대 비공개 약속을 경찰이 어겼다”, “공개된 사무실에서 남자 조사관에게 성폭행 과정을 설명해야 하는 수모를 겪었다”, “한 경찰관은 ‘너희가 밀양 물 흐린다’고 모독했다”고 주장했다.

또 가해 학생측에서 피해 여중생들을 협박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A양이 지난 7일 조사를 받으러 경찰서에 들어선 순간, 가해 학생의 부모로부터 “이렇게 신고해놓고 잘 사나 보자, 몸조심해라”는 협박을 받았다고 9일 신고했다. A양의 가족도 조사받던 남부경찰서 복도에서 가해 학부모로부터 “뒷일이 걱정되지 않느냐”는 협박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피해자들에게 가해진 사이버 언어폭력

그런가 하면, 8일부터 가해자를 되레 두둔하고 피해 여중생들을 성적으로 모독하는 글들이 인터넷 상에서 유포되기 시작했다.

자신을 ‘울산에서 불구속으로 나왔다’고 소개한 한 사람은 밀양교육청 게시판에 피해 여중생들의 실명까지 공개하며 비난 글을 올렸다.

그는 이 글에서 “5개월에 거쳐 ‘성관계’를 가진 건 확실하지만 그 애들이 XXX다. 밀양에 와서 한번 당했으면 다신 안 올 것이지, 또 내려오다니 철이 없었다”며 “저희 밀양쪽 애들이 잘못하긴 했지만 남자의 본능은 다 그런 것”이라고 말했다.

또 가해자들의 친구와 학교선후배라는 사람들은 “기자들이 사건을 확대해서 죄 없는 사람들이 욕을 먹는다”면서 “그 여학생들이 원해서 한 일이다. 밀양에 갈테니 재워달라고 하는 등 처음부터 행실이 안 좋았다”고 주장했다.

게시판에 남겨진 ip주소를 토대로 알아낸 이들의 인터넷 접속지는 밀양시였다.

▼가해학생과 관련된 괴소문

또 “가해학생들의 부모 중에 부유층과 권력자들이 다수 있다”, “예전에도 집단 성폭행이 있었는데 유야무야 됐다”, “유명한 조직 폭력배가 가해자의 부모”라는 확인되지 않은 각종 소문들도 꼬리를 물었다.

누리꾼들은 이런 소문들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누리꾼들, 가해학생과 그 친구들 사진 유포

이 같은 일련의 사건들에 분노한 누리꾼들은 8일 오후부터 스스로 가해자 ‘색출 작업’에 나섰다.

단서는 모 일간지에 실린 학생회장 출신의 가해자 인터뷰. 이 기사는 “모범생이 한순간 실수로 인생을 망쳤다”는 내용이었지만, 누리꾼들은 밀양 전체 고등학교가 4개에 불과한데 3개 고등학교 학생만 연루됐다는 점에 착안, 3개 학교 회장 중 여학생을 제외한 후 주인공을 찾아내고 만 것.

누리꾼들은 곧바로 그 학생의 미니홈피로 들어가 ‘파도타기’ 기능을 통해 단숨에 30여명의 ‘가해자 명단’을 만들어냈다. 이 것은 9일 새벽 수백 개의 사이트로 전파됐다.

관련자들의 미니홈피에는 수천 명의 방문객이 다녀갔으며, 방명록에는 수백 건의 욕설이 도배됐다.

속수무책으로 당하던 해당 미니홈피 주인들은 9일 오전 10시경 싸이월드를 탈퇴했지만, 이들의 신상자료와 사진은 ‘밀양 집단 성폭행범 얼굴 공개’라는 제목으로 이미 각 사이트로 옮겨진 후였다.

인터넷에 퍼진 사진 중에는 성폭행 가해 학생이 아닌 학생들까지 포함됐다. 그러나 누리꾼들은 “친구를 가려서 사귀지 못한 탓”이라며 거리낌 없이 퍼 나르고 있다.

이 학생들의 부모들은 마치 자신들의 자녀가 이번 사건과 연루돼 있는 것처럼 보여 정신적 피해를 입고 있다며 이 사진을 올린 사이트 주인을 대상으로 법적인 절차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누리꾼들의 ‘사적 응징’은 계속 되고 있다. 청와대 등 인터넷 게시판에서는 ‘강력처벌’을 요구하는 사이버 시위가 10일에도 계속됐다.

일부 누리꾼들은 인터넷에서만 이럴 것이 아니라며 11일 오후 7시에 광화문에서 촛불시위를 벌이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강지원 변호사 “피해 여학생들 돕고 싶다”

한편 누리꾼들은 청소년보호위원회 초대위원장을 지낸 강지원 변호사가 피해 여학생들을 도왔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강 변호사는 9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피해 여학생들을 돕고 싶다”면서 “보호자들이 불러 주신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울산으로 달려가겠다. 꼭 좀 연락해 달라”고 거듭 부탁했다.

강 변호사는 “나도 이번 사건을 뉴스에서 보고 너무 놀랐다. 성범죄의 경우 피해자를 생각한다면 이렇게 불구속 수사해서는 안 되는데,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된다”면서 “더구나 풀려나서도 피해자들을 협박했다는 주장이 맞다면, 전혀 반성이나 죄책감도 못 느끼고 있다는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또 강 변호사는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사진과 신상 정보 등에 대해 “아직 가해자인지 확실치도 않고, 또 일부가 가해자가 맞다고 하더라도 명예훼손이 되니, 자제를 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평소 여성과 청소년 문제에 관심이 많은 강 변호사는 최근 광고 이미지 문제로 건설사로부터 30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당한 탤런트 최진실씨의 무료변론을 선언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경찰 “14명 추가로 구속영장 신청, 문제 경관 징계”

울산남부경찰서는 10일 가해 학생들의 처벌문제와 관련, “나머지 가해자들에 대해서도 계속 수사하여 엄중한 사법처리를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날 울산남부경찰서는 추가로 성폭행 혐의가 드러난 밀양지역 고교생 이모(18)군 등 14명에 대해 특수강간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또 피해 여중생들에게 ‘밀양물 흐렸다’고 언동한 경찰관에 대해서는 “청문감사실에서 자체 조사해 누군지 밝혀냈으며, 엄하게 징계조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울산남부경찰서는 이어 “피해 여중생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처음부터 여경 조사관을 배치하지 않은 점 등 피해자 보호에 미흡했던 것에 대해 사과의 말씀을 드리며, 앞으로 피해자 인권보호에도 만전을 기하겠다”고 덧붙였다.

최현정 동아닷컴기자 phoe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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