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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9월 15일 18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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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회의 제도와 법령들은 그 사회를 지탱하는 바탕이자 핵심적인 시스템이다. 이 때문에 이러한 규정 자체가 차별을 유발할 경우 그 피해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아직 통합적인 차별금지 법안이 없을 뿐 아니라 각종 법령 등에 차별적 요소가 상당히 내재돼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17대 정기국회에 모든 종류의 차별을 금지하는 ‘차별금지법안’을 제출할 예정이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다.
▽“용모 단정과 나이 제한”=아직까지도 여전히 ‘용모’를 채용시험의 응시요건으로 삼는 곳이 많다. 지난해 인권위가 내놓은 ‘차별 관련 법령 실태 조사’에 따르면 경찰과 선거관리위원회를 포함한 공공기관 10여곳이 채용규정에 신체적인 요건을 평가항목으로 둔 것으로 나타났다.
인권위 관계자는 “용모 규정은 그 자체만으로 인권위법과 남녀고용평등법 위반”이라며 “직무와 별 상관도 없는 신체조건을 내세워 장애인 등에 대한 간접 차별의 폐해가 크다”고 말했다.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나이 차별’도 마찬가지. 국회법 제112조의 ‘국회에서 실시하는 각종 선거에서 득표수가 같을 때는 연장자를 당선자로 한다’는 규정은 적성이나 실력과는 아무 상관없는 나이를 조건으로 한 ‘우대적 나이 차별’에 해당한다. 반면 ‘공무원 임용 및 시험 시행규칙’의 나이 제한이나 최저임금법에 미성년자는 법정 최저임금액을 밑도는 임금을 줄 수 있도록 한 규정 등도 나이 차별의 대표적인 경우.
이 밖에 숱한 서류에서 가족 관계나 혼인 여부의 기재를 요구하는 것과 채용심사에서 출신지역이나 종교, 병력(病歷) 등을 밝히도록 요구하는 것 등도 차별적인 요소가 농후하다.
▽징벌적 권한이 있는 차별금지법 만들어야=이처럼 사회 전반에 만연된 차별을 막기 위해선 단순히 법령 하나를 고치는 것만으로는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법령 자체가 차별 요소를 가질 경우 이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종합적인 차별금지법의 마련이 시급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선진국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 같은 통합적인 법체계 마련의 필요성에 공감했다. 미국의 경우 1964년에 ‘공민권법(Civil Rights Act)’을 제정해 인종 피부색 성별 및 출신 국가를 근거로 한 모든 고용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캐나다의 ‘인권법’이나 호주의 ‘차별금지법’ 등도 이에 해당한다.
현재 인권위가 추진 중인 차별금지법도 이런 인식에서 출발한 것. 성별 나이 용모 사상 등 18가지로 차별 분야를 나눠 차별의 정의는 물론 금지 대상의 범위,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의무, 기업 사용자의 책임까지 포괄적이고 구체적으로 담을 예정이다.
인권위 김창국(金昌國) 위원장은 “시정명령을 불이행할 경우 강력한 징벌적 조항을 담은 차별금지법안을 마련해 현재 정부 관계기관과 조율 중이다”면서 “이를 담당할 차별시정위원회(가칭)가 설치돼 적극적인 제재를 가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양환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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